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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un 01. 2023

엄마,결혼한 여자

"엄마, 엄마는 내 나이 때 한 달에 몇 번 정도 했노?"

"왜? 요즘에 고서방이랑 무슨 문제 있나?"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사이는 좋은데 조금씩 횟수가 줄어서 요즘엔 잘 안하게 되네. 부부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괜찮은 건가 싶어서."

"글쎄 기억이 잘 안 나긴 해도 느그 때면 아직 한창 때 아니가."

엄마와 나는 인적 없는 신익아파트 앞 도로를 걸으며 시장에 가고 있던 길이었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조금 작았다. 우리 사이엔 비밀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기엔 한두 가지 걸리는 사건이 있지만 대체로 엄마와는 대소사를 다 공유한다. 그러나 엄마에게 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 마냥 가볍게 말했지만 누가 들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은 '성'이란 화제의 은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 엄마 도대체 우리 키울 때 그렇게나 자주 할 수 있었나?”

30년 넘게 한 집에 살면서도 엄마 아빠의 성생활에 대해선 궁금치도 않았고 그래서 배려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문득 꿈 속 한 장면처럼 진짜였을까 싶은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평소 집에 혼자 남게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는데 그날 잠깐 혼자 있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 시계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리는 법이다. 무서움도 쫓을 겸 티비를 켠다고 한 것이 비디오를 켰던 모양이었다. 소리 없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신연령은 분명 못 되었다. 그렇기에 얼른 티비를 끌 생각도 않고 1~2분 정도 지켜보았다. 말도 없이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자 '이게 뭐지' 의아해하며 꺼버렸던 것 같다. 성에 관심도 없고 무지했던 내가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성관계 장면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춘기를 지나던 중학생 때였다. 그것이 포르노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 뒤였다. 엄마와 아빠가 포르노를 봤다고? 키스신만 나와도 갑자기 수다스러워지며 민망함을 겉으로 드러내고 마는 엄마가? 밖에서 손잡는 사람은 불륜이라고 생각하는 상남자 아빠가?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는 두 남녀로 보는 건 상상력을 풀가동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세 남매는 엄마 치마폭에 서로 파묻히려는 스타일이었다. 엄마는 공동소유, 공동분배의 원칙에 따라 두 딸들 중간에 누워 잠들었다. 중학생이 되어 각자의 방에서 잠들 때에도 부모님 방문을 지나 화장실을 거쳐야 내 방이 나왔다. 그러다 오십이 넘어가며 엄마는 허리가 아파 침대 생활을 고집했고 술 냄새 난다고 구박받던 아빠는 침대 아래에 요를 펴고 따로 지냈다. 파수꾼 같은 딸들이 엄마 품에서 벗어나자 손주들이 할머니 옆을 차지했다. 큰 손녀는 내가 결혼하여 방을 뺄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침대에서 자고 둘째 손자는 할아버지 옆에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 함께 잤다. 바통을 이어받은 10살 막내 손녀는 '할머니가 머리를 쓸어주면서 이야기를 해 주면 잠이 너무 잘 와' 라고 하면서 주말이면 꼭 할머니 옆에서 잠을 잔다.

 

"얼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나?"

길을 걷던 엄마는 며칠 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느그 아빠가 좀 보채드라고. 그래도 뭐 모른 채 하고 있었지, 몸도 안 좋은데다가 우짜노, 아이들 다 있는데......."

"우아, 아빠가 요즘에도 하자고 하나?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됬는데??"

나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이야기를 재촉했다.

"저번 주에 느그들 다 나가고 현아도 학원 간다고 나갔지. 이 때다 싶어가지고 둘이서 방문 닫고 누웠다 아이가. 근데 느그 아빠가 늙어서 그런가 이제 빨리 잘 안 된디. 둘이서 그러고 있는데 '띠띠띠띠"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 아니가!"

"어머어머어머!" 나는 호들갑스럽게 엄마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기라."

 

<사나운 애착>에서 비비언 고닉은 커너 부부의 관계 장면을 우연히 보고선 이렇게 말했다.

「커너 부부가 있다. 서로 미워하는 듯하지만 닫힌 문 안에서 성적 쾌락에 몸을 떠는 부부.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있다. 서로 지극히 사랑하지만 침대를 문도 없는 방에 놓고 순결하게 사는 부부.」

밖에서도 손 꼭 잡고 다니는 우리 부부는 잘 때도 손만 곱게 잡고 자는데 정말 부부 사이는 알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그녀는 그 단락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던가.

「나에게 입력된 사실은 커너 아줌마나 우리 엄마나 낭만적인 감정을 유난히 소중히 여겼고 두 사람 모두 결혼한 여자였다는 것뿐이었다.」

 

"우와, 엄마 아빠 대박이다. 요즘에 자주 투닥거려서 좀 걱정이었는데 완전 러브러브네."

엄마는 미소를 띠며 쑥스러워했다.

"아직 한창일 때다. 고서방 잘 챙겨라."는 잔소리는 한 귀로 흘리고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눈치 없는 범인'이 되어버린 이를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엄마가 결혼한 여자이고 낭만적인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날이었다. ‘결혼한 여자’로서 동지가 된 우리는 남편들 흉도 조금 보면서 신나게 시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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