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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wole Mar 14. 2019

나의 아름다운 이웃

한 동네에 이십년째 사는 사람의 이야기1

한 동네에 오래 산다는 건 성가신 일이다. 길에서도, 카페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계속해서 아는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한 아파트에 20년이 넘게 살았다. 여섯 살 때 이사를 와서 대학을 졸업한 지금까지 한집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는 참 지독하게도 우리 가족보다 더 오래 산 사람들이 있다. 이게 얼마나 성가신 일이냐면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그분들은 내가 처음 이사 왔을 때를 먼저 떠올리시며 ‘아이고~ 언제 이렇게 많이 컸대!’로 시작하는 신상털이를 하신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삶의 궤도에 내가 꼭 맞춰 살았으면 이보다는 덜 성가셨을지 모른다. 어쩌다 보니 졸업이 좀 늦어졌고, 어쩌다 보니 아직 취업을 못해, 삶에는 속도란 게 없다지만 그래도 어쩌면 또래보다 조금은 뒤처진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나로서는 동네 어른들의 기대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다. 몇 살이지? 졸업은 했지? 취직은? 남자 친구는 없어? 이런 물음표의 기대들 말이다. 나는 이런 질문들을 한 적도 없고, 할 일도 없기에 홀로 받아내는 일방적인 질문들은 힘겹기만 하다.    


1995년에 지어진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정말... 정말 느리다....

모든 이웃이 마주치기 싫고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개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도 있다. 이를테면 19층 할아버지다. 작은 키에 깡마른 몸. 눈가에는 늘상 웃으며 지낸 세월을 보여주는 주름이 자리 잡은 19층 할아버지. 지금은 노인들만 가득한 아파트지만, 내가 어릴 적엔 우리 동네에 내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밥만 먹으면 뛰어나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자전거를 탔다. 내 자전거는 걸핏하면 체인이 빠졌다. 자전거 체인은 다시 걸면 되지만, 아홉 살 꼬맹이가 그런 걸 할 줄 알 리 없었다. 체인을 꼬물꼬물 만지작거려보지만, 늘상 허탕이었다. 그럴 때는 구세주가 필요했다. 19층 할아버지. 19층 할아버지는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는데 그래서인지 자전거를 잘 다루셨다. 숫기가 없어 할아버지에게 체인 걸어달라고 말도 못하고 검은 기름 범벅의 손으로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할아버지는 먼저 다가와 체인을 걸어 주셨다. 여섯 살 꼬맹이가 어른이 되는 풍경에는 이웃이 있었다.    

그때 뛰놀았던 롤러블레이드장.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의 이런 기억이 쌓여서인지 성인이 되어 타지 살이를 하며 가끔 본가에 들를 때도 19층 할아버지와 마주칠 때만큼은 항상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마주친 할아버지는 전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 엄마에게 할아버지 요즘 마르셨다는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몇달 전 할아버지가 혼자가 되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원래 몸 안 좋으셨잖아, 그래도 좀 좋아지시는 것 같더니 결국 돌아가셨지. 엄마는 담담히 말했다. 노인이 많이 사는 우리 아파트에서 돌아가신 노인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자라 어른이 됐듯, 시간은 그들도 비껴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죽음을 미처 몰랐다. 처음 이사 올 당시에는 많았던 이웃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새 하나씩 줄어가고 있었다.


차라리 정말 돈독한 이웃이었다면,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가까운 이웃이었다면. 아니 차라리 누군지도 몰랐다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웃에 대해 몰랐다면. 그랬다면 그들의 죽음을 뒤늦게 알고 홀로 씁쓸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름 모를 이의 조문은 수없이 갔건만, 정작 나는 이웃의 죽음과 상실에는 무심한 사람이 되고 만다.


못본새 더 마르고 주름살이 깊어진 19층 할아버지를 계기로 내 성장의 풍경에 있던 이웃들을 떠올려보았다. 19층 할아버지만큼이나 내 자전거 체인을 자주 걸어주셨던 경비할아버지. 마주칠때면 먼저 웃으며 말을 걸어주셨던 15층 아저씨. 숫기없던 꼬맹이에게 이웃 어른에게는 인사하는 거라고 일렀던 14층 할머니. 그리고 그 시절 함께 뛰놀았던 동네 아이들까지. 이름도 나이도 기억나지 않는. 이제는 얼굴마저 희미해진 내 어릴적 풍경의 사람들. 그들은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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