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살 때의 일이다. 그 날은 식목일이었다. 모처럼 맞은 휴일에 나는 엄마아빠와 대형 마트에 갔다. 장보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나는 혼자 마트 탐험에 나섰다. 마트 한 켠 줄지어 늘어선 계산대 중에는 비어있는 계산대도 있었다. 계산원도, 손님도 없는 그 계산대에는 손가락 두 개 정도 굵기의 낡은 쇠사슬만 어설프게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힘 없이 아래로 축 쳐져 있던 쇠사슬은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무릎 정도의 높이였을까. 이전에도 엄마와 온 마트에서 그 쇠사슬을 뛰어넘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그 날도 패기롭게 쇠사슬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쇠사슬에 발이 걸려 보기좋게 넘어졌다.
계산대 옆 안경점 직원이 와 괜찮냐고 물었다. 창피했다. 그러나 나는 열두 살이었다. 괜찮아요, 하하. 하면서 이를 드러내고 씩 웃는 나를 보며 직원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바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네 이빨 아니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하얀 가루들이 있었다. 잇따라 보여준 거울 속 나의 앞니는 반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제꺼 맞는것 같아요, 하하.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내 앞니는 보철에 의존했다. 기능을 상실했고 껍데기로만 존재했다. 앞니로 무언가를 세게 물거나 뜯으면 다음날 바로 대가를 치렀다. 보형물이 바로 떨어졌다. 내 앞니는 장식에 불과했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감정이 ‘불안’이라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미래에서 기인하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대비를 한다. 위험요소를 체크하고, 이미 누군가 검증한 길을 간다. 그리고 이십대의 나는 언제나 불안한 사람이었다. 열두 살의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매일 먹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먹어보지 않은 메뉴를 고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앞니는 내 불안의 유형물이었다. 길어야 4, 5년이라는 보형물의 수명이 지난 이후, 내 앞니는 그야말로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 됐다. 앞니가 떨어지면 겪어야 할 불편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면접을 앞두고, 입사를 앞두고 갑자기 앞니가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마음이 불안한 시기에는 앞니가 뚝 떨어져 버리는 악몽을 꿨다.
위험 요소를 체크하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은 내 미래가 온전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앞니처럼 어른이 되어가며 마주하는 인생의 변칙들은 나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 치 앞을 모르던 열 두 살의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건만 나는 여전히 한 치 앞도 모르겠다. 이제 사과 하나 마음껏 베어 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