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구름 양탄자를 탄 날
미니멀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버리는 것만큼은 꽤 과감히 실천하는 편이다.
밑줄 그어가며 읽은 책들을 수십권씩 대차게 버리고, 생각만큼 재미없어 사놓고 한 두페이지 읽은 책들을 쉽게 중고시장에 내놓는다.
취재처 세미나에서 사은품으로 받곤 했던 고가의 전자제품들도 필요치 않으면 주변인들에게 턱턱 선물했고, 계절에 맞춰 옷정리를 할 때마다 버리자고 하는 나와 안된다고 하는 엄마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는 당연한 관행이 되었다.
심지어 인간관계에서도 미련을 둬본 적이 거의 없다. 오래 만난 연인과 이별했을 때도 크게 슬프지 않았고, 그와의 추억을 성실히 기록한 온라인 사진첩의 ‘삭제’ 버튼을 클릭하기까지 전혀 망설여지지 않았다. 절친했던 친구와 연락이 뜸해져도 보고 싶다는 감정보다 ‘잘 지내고 있겠지’라는 근거 없는 짐작이 맘속에 가득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조건에 꽤 순종적이고,
되돌아봤자 소용없는 일이란 진리를 맹신하며,
내게 필요치 않으면 그 무엇이라도 쉽게 떠나보내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나다.
그런 내가 요즘, 이 청량한 계절에 자꾸 미련이 생긴다. 바람이 천천히 차가워졌으면 좋겠고, 공기의 온도가 한 쪽으로 치우치는 때가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쾌청한 하늘 아래서 산드란 바람결에 몸과 맘을 보송하게 말리는 시간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자연의 순리가 야속하다.
햇살도, 바람도, 온도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중용의 계절이 난 아깝다. 여름은 뒷 시간을 잘 부탁한다고, 가을은 앞 시간을 거쳐오느라 수고했다고 서로 인사하는 이 짧은 찰나의 계절이 난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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