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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협군 May 06. 2021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시인의 삶이 묻어난 노래, 내가 따라 가야할 길

글을 읽는다. 하얀 종이 위에 누군가의 마음이 펼쳐져 있다. 글을 써내려가는 당시의 상황과 생각, 때로는 숨겨진 의지까지 느껴지곤 한다. 글쓴이는 알고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숨소리마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세 번이나 입학했던 시인,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글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순간의 기록을 넘어 인간의 마음, 감정, 때로는 자신도 알지 못했던 숨겨진 비밀이 기어 나오기도 한다. 결국 글이라는 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넘어 세상을 향한 자신의 외침이자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한 한 사람의 노력이라는 것. 비록 눈에 띄게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적지 않은 책을 펼쳐들고 적당히 많은(?) 책 서평을 남겼다. 장르도 가리지 않고 여러 책을 읽으며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기억의 조각들을 나열해왔다. 다행히 내 짧은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한 적은 없었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좋은 척 글을 써왔고 정말 아니다 싶을 때는 그냥 공개하는 것을 포기하곤 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면서도 한 번도 시도하지 못한 책이 있었다. 바로 시집이다. ‘시’에는 단어와 짧은 운율 속에 독자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함축되어있다. 일반적으로 ‘A’라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글을 쓰는 대부분 작가들이 A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문장으로 풀어놓는다. 그 글이 소설이든 아니든 결국 A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과 작가가 펼쳐놓은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작가는 어쩔 수 없이 A에 대한 모든 것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독자들은? 그저 이해하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한 편의 시에는 시인이 살아왔던 삶의 냄새가 구석구석 묻어있다.


다만 시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풀어놓자면 1,000자에 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인들은 그저 짤막한 몇 줄의 시로 압축시켜 놓는다. 마치 독자들에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아? 한 번 맞춰봐, 맞출 수 있다면”이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 적도 있다. 해서 몇 번이고 시집을 읽어보고 나 역시 언젠가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역시 책을 펼치기 전 마음을 다잡기 쉽지 않았다.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중간에 포기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시집을 들고 있는 손끝부터 온 몸으로 전해졌다.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라는 제목을 곱씹으며 연예에 관한 시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부딪혀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서툰 자신감으로 한 장씩 시집을 넘기기 시작했다.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를 만나기 전 시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시인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이번이 두 번째 시집이다. 앞서 오래전 ‘메추라기 사랑노래’라는 시집을 발표했고, 1981년 ‘분교마을의 봄’이라는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시집 10권 이상 분량의 시를 써왔지만 2021년이 되어서야 두 번째 시집이 발표된 것이라고 한다.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인의 작품 ‘분교마을의 봄’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의 저자 윤한로 시인의 모습을 책 표지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상당히 푸근하고 정겨운 옆집 동네 아저씨를 만나는 느낌이다. 30년간 안양예고에서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습도 떠올랐다. 시를 쓰는 국어 선생님과 함께 하는 수업은 어떤 느낌일까? 매수업 한 편의 시를 낭송하고 감상하는 듯한 기분일까?


이 시집의 제목 ‘그대’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본다. 우리 삶 속에서 마주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나를 둘러싼 인간, 사물, 또는 감정의 요소까지 ‘그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시집 제목을 지을 때 여러 작품 중 하나의 이름으로 짓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이 시집 속 동일한 제목의 작품은 따로 찾아볼 수 없다. 시집을 한 장씩 넘겨가며 시인이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고 생각했던 많은 감정들을 작품에 하나하나 담아두었다.


오랜 시간 아버지로 살아온 시인의 아쉬움을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짧은 몇 편의 시를 통해 작가의 모습, 생각, 감정, 내면의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다. 시인은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세상에 내비친 사람들의 모습과 부조리를 가감없이 꾸짖었으며, 한 세상을 살아간 한 남자의 삶을 노래했다. 그 삶 안에는 자식을 바라보는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큰 사랑, 자신의 밑에서 수학하고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의 뿌듯함도 맛볼 수 있었다.


나도 이제 한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돼서 그런걸까? 아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짠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버지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겉으로 내색은 못하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신부의 길을 포기한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은 꾹 닫혀있던 내 마음 속의 감정의 둑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누구보다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인의 마음도 드러난다.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는 처음 한 번 읽고 반드시 뒤에 해설을 숙지한 뒤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처음에는 조금 어렵게 다가오던 여러 편의 시들이 그 의미를 되새겨 천천히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누군지 알 수 없고 멀게 느껴지던 시인의 마음이 조금씩 내 곁으로 다가와 시를 읽을 때마다 숨겨진 의미를 전해주는 느낌마저 든다.


책을 읽고 내 마음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장르와 상관없이. 특히나 ‘시집’은 마음 속 감수성이 부족한 내게는 더없이 어렵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번에 다가오지 않는 시는 여러 번 곱씹으며, 마지막 해설과 함께 다시 한 번 시집을 감상하며 이렇게 서평까지 남기게 되었다. 내 부족한 글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많은 작가님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특히 이 작품의 윤한로 작가님은 이미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서 수백 명의 작가들을 지도하고 길러내셨다. 비록 내가 몸 담았던 모교의 스승님은 아니지만, 멀리 보면 모든 학생들의 스승님이시며 한 편으로는 내가 따라 걸어가야 할 인생의 선배님이기도 하시다. 어리숙한 이 글로 작가님의 작품에 조금이나마 흠집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뜬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삶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시인이 걸어온 삶의 교훈들을 조금씩 주워 담아 걷고 싶다.


윤한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시인이 걸어온 삶의 흔적들은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길에 큰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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