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제법 한참을 울렸던 것 같다.
문득 정신을 가다듬고 휴대폰을 든다.
정책임이다. 얼마 전 선임연구원 딱지를 떼어낸 성실한 동료.
아침부터 무슨 일로..
- 어, 왜?
- 어디쯤이세요?
- 어, 집. 왜?
정 책임의 당황스러움이 라인 건너편까지도 느껴진다.
- 그게, 저... 수석님. 오늘 조찬미팅이 있는 날인데요. 대표님도 와계시는데...
오전 9시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미 회사에 도착해 탕비실 커피도 한 잔 마셨을 시간.
일곱 시쯤 출근 준비를 끝내고는 두 시간을 그렇게 멍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나 보다.
대표님께 양해를 구하고
오늘 하루는 결근을 하기로 했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댔지만 딱히 믿어 주시는 품은 아니다. 요즘 예사롭지 않다는 말로 나의 의중을 떠보시는 대표님.
- 뭔 일인데, 그래? 하루면 해결돼?
예정도 없이 아침 일찍부터 팀 조찬미팅에 참석했다가 무산된 짜증이 묻어있는 목소리였지만 회사의 대표는 대표이다. 많아 보이는 할 말을 누르고 배려심 있게 다독인다.
- 며칠 더 쉬어 봐. 그래야 나을 것 같아 보여.
외투를 아무렇게나 벗어두고는 돌미를 찾았다.
돌미가 없다.
돌미는 어제 반려견 유치원에서 하룻밤을 재우겠다고 원장님께 연락을 받았다는 기억이 난다.
요즘 내가 이렇다.
산만하고 부주의하고 때론 넋을 두고 다닌다.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집 앞 마트에서,
혹은 어딘지도 모를 길을 걷다가...
문득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돌이켜보면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참담한 후회에 눈을 질끈 감으며 순간순간을 좌절하고 있다.
그런 후회가 눈 앞에 즈려밟히는 바람에
오늘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을 걷지 못한다.
숨을 쉬기 싫다.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셔야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먹기 싫다.
탄수화물을 섭취해서 혈액에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할 텐데, 그게 귀찮고 쓸데없다.
아내만 잃은 게 아니었다.
아내와의 삶이 담보했던 모든 가치를 함께 잃었다. 그 잃은 자리를 우울과 불면이 채우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름방울처럼 어느 곳에 마음을 가둬두지 못하고 있다.
쉬고 싶은데
내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