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바인스 Oct 05. 2020

리셋  플리즈(Reset pls.)

다른 차원에서 다른 안식을 얻다.

괴롭지만,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그때의 나는 일체의 사유와 의지도 갖고 있지 않은 그저,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 물수제비 돌멩이였다.

이리저리.
한 번, 두 번.
혹은 그보다 몇 번을 더.
다리가 아래층 난간에 부딪히고 다시 어깨와 허리가 어디쯤인가에 부딪히는 느낌.

그리고 낙하, 끝없는 낙하.
아무런 고통도 없이
이제 모든 게 자유로워지고 길고 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으로 낙하.

그리곤 정말 잠시 동안의 깊고 편안한 정적과 안식.


정말 잠시 동안...이었다.


- 환자분, 눈 뜨세요. 어서 눈 뜨세요.
라는 어느 생소한 간호사의 목소리와 함께 짧았던 나의 안식이 끝났음을 깨닫는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아니라면 나는 다시 내가 떠나려던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머니 그리고 문 밖으로 막 나가시려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고, 또...
다소 무미건조한 표정의 간호사와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우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환자복의 낯선 이들...
나의 안식을 위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닫는다.

다시 잠.
불편하고 어색한 잠에 빠진다.
좀 전까지의 깊은 정적은 기대할 수 없었다.

잠시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한 번의 응급수술과 두 번의 신경외과 수술을 했었다는 사실이 전혀 기억에 없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한밤 중이었고
어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 이 노무 새끼가 이게 다 무슨 일이고? 어?
- 니가 왜 이런 짓을 하냔 말이다. 어?

연신 내뱉으시는 원망의 말과는 달리 그저 살아있다는 게 감사했던 아들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연신 쓰다듬기만 하신다.
늘 그렇지만,
아들은 그렇게 또 한 전 어머니의 가슴에 깊고 큰 못을 박았다.

아버진, 그날 그렇게 문을 나서시고는
퇴원하는 날까지 병실로 찾아오지 않으셨다.

뭔가 우울하고 슬픈 시간이 마땅히 흘러야 할 한밤의 타이밍에,

풋,
허기가 진다.
어머니, 저 배고파요, 라는 헛소리가 제법 크게 병실에 울려 퍼졌다.

허기가 진다.

퇴원 후 직장을 그만두고,
삶을 위로하고 다독이던 모든 취미생활을 접었다.
안부를 염려하던 대부분의 지인들과 연락을 끊었고, 정신 사납다며 그 집엔 얼씬도 하지말라던 집을 내놓았다.
그리고 경주 시골집으로 낙향.

아무 것도 아니었던 삶에 남은,
그 다음의 시간이 기다리는 곳으로... 왔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흐르는 곳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상실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