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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바인스 Oct 18. 2020

빙벽

아무도 모르게

아이슬란드 남동부 스비나펠스요쿨 빙벽,
그 아래.
그 빙벽을 등에 지고 앉아있는 여자가 발견됩니다.

가누지 못한 고개와
차마 감지 못한 눈을 아래로 떨군 채.
눈물을 흘렸던가, 하얗게 서려있는 뺨과 턱에 그대로 얼어붙은 눈물자욱이 선명합니다.
여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적이지 않은 각으로 양쪽 무릎이 꺾여 있거 늘어진 왼쪽 어깨 역시 심하게 내려앉아있습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게 차갑게 식은 체온.
핏기 없이 얼어붙은 얼굴.

구조대원 요렌테는 여자가 기대앉아있는 빙벽을 올려다봅니다. 그녀가 실족한 높이가 5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빙벽의 끝.
그곳에서 작은 눈보라가 일어 얼음 알갱이가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힘든 높이였고
살아남기 힘든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녀는 온몸이 산산이 부서진 채 이렇게 며칠을 견디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그녀를 위해 묵념을 야할 것 같슺니다.

유심히 보 그녀의 오른손에 작고 하얀 종이가 있군요.
단단히 그러잡은 손.
그 손은 다행히 다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힘을 주어 그녀의 손에서 종이를 빼냅니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폅니다.

쪽지네요.


그 속에 구겨진 종이만큼 구겨진 글들이 쓰여있습니다.
무얼까요?
그녀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다해 써 내려간 말들.
요렌테는 문득 그 말들에 답을 해주고 싶어 졌습니다.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갑니다.


당신이 나를 구하러 다시 돌아와 준다면,
나는 기필코 지금 나에게 한 짓과
같은 방법으로 당신을 최선을 다해 죽일 거예요
부디, ...


순간,
좁은 빙벽의 틈을 타고 돌풍이 불어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작은 얼음 알갱이가 눈에 박힙니다.
무척 쓰리고 아픕니다.
그 탓에 그녀가 써 내려간 쪽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지 못했습니다.

통증에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눈을 겨우 뜬 요렌테는 아무도 모르게 쪽지를 주머니 속 깊은 곳에 넣어둡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 읽어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이제 슬슬 그녀를 발견했음을 대원들에게 알려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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