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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Apr 20. 2018

메킨리(4)
북미대륙 최고봉에 서다

- 세계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

5월29일 눈/바람 흐림

 제5 캠프5(고소캠프, 5,300m) →맥킨리 정상(6,1940m)→제5 캠프

베이스캠프 레인져에게 등반확인서를 확인받고 날씨정보를 얻었다. 이무렵 좋은 날씨가 없었다.


썩 좋은 날씨는 아니다.

하지만 바람이 그리 세지 않으니 해볼 만하다.

오늘 못 하면 내려가야 하고 그러면 또 기약 없이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직장에 한정된 휴가를 낸 상태라 시간 내에 등반을 마치고 돌아가 출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내심 난 알파인 방식 등반을 결심하고 옆 텐트의 루마니아팀 2명과 부산여성 원정대 1명, 그리고 나 4명이 정상공략에 나섰다.

경호는 컨디션이 호전 되지 않아 동참을 못했다.


우리보다 1시간 앞에 운행에 들어간 루마니아 팀을 쫓아 디날리패스를 오르니 말로만 듣던 진정한 북극권의 바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포기하고 뒤돌아 내려가고 싶다.

조금 전 부산여성 원정대원은 되돌아 섯다.

여성으로써 이곳까지 도전한 그 자체 만으로도 충분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노출된 코와 볼은 그 대가를 충분히 치러야 했다.

바람 피할 곳을 찾아보았으나 사방이 설원이라 바람 피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만 포기할까!

이곳에서 혼자라는 사실은 두려움을 넘어 사람을 무덤덤하게까지 만든다.

구름 바람에 시야확보가 점점 어려워진다.

저 앞에 두 사람의 형체가 반갑게 보인고 내게로 다가온다. 나보다 앞 섯던 루마니아 원정대 2명이다.

이들 또한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가는 중이며 나에게 같이 하산을 권유한다.

잠시 망설이던 찰나 그들은 내려가 버렸다.

데날리페스 상단.  여기부터 난 혼자가 됐다.


좀더 기다려 주었으면 나도 같이 내려갈 결정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여기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산이 된다.

아무도 없고 이곳 신과 나와 둘,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

십여분을 홀로 서서 많은 생각을 했다.

포기와 도전 만약 포기한다면 가장 애통한 것은 그토록 어렵게 준비한 과정이 수포가 되는 것.

지금 포기하고 돌아가면 다시 올 자신이 없었다.

체력은 아직 남아 있다!

난 도전을 선택했다.

날씨와 모든 것은 데날리 신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오르기 시작했지만, 처음엔 20발자국도 버거웠다.

착용한 크렘폰에 계속 수노우볼이 생겨 쉴새없이 털어내는 것도 힘들었다.

거친 호흡 속에 목에서 쉰소리가 들렸다.

겨우 풋볼힐에 오르니 기상이 더욱 안 좋다.


3m 앞도 안 보이는 화이트아웃에 갇혀버렸다.

표식기도 안보이고 북극권의 바람만 온통 주변을 덮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과 추위, 심각한 화이트아웃에 갇혀 운행이 중지됐다.

펭귄처럼 바람을 등지고 배낭을 깔고 앉아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렸다.


30분이 지났을까? 1시간이 지났을까?

쭈구려 않은 다리가 저려오고, 찬바람이 우모복을 뚫고 들어왔다.

기상상태가 좋아질 기미가 전혀 안 보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치명적인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문득 가장 먼져 가족이 생각났다.

오기 전날 올챙이 춤을 추던 딸과 초등학교 2학년 아들, 그리고 말 없는 배웅으로 날 보낸 아내, 직장동료, 날 믿어 준 모든 사람.

미안하고 서글픈 맘이 밀려왔다.

추위 속에서 문득 아들의 선물을 꼭 사야한다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무엇을 사오라고 했는데.

 

고상돈 선배와 나오미가 가까이 있는 곳이었다.

데날리 신은 날 이렇게 버릴까?

1시간이 더 흘렀을 때, 데날리 신이 날 가엽게 여겼나? 정성이 통했나?

내 주변의 눈보라와 가스가 바람에 마지막으로 밀려가는가 싶더니, 일순간 정수리로 햇살이 쏟아졌다.

복사열에 공기도 훈훈해졌다.

이 무슨 조화인가?

천행이었다.

그리고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다시 기상이 악화되면 그 땐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힘들어도 몸을 일으켜야 한다.

정상을 향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올라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가늠할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올라갔다.


얼마나 올랐을까?

10m 앞에 검은 점 2개가 보인다.

어느 외국 원정대가 등정을 완료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거리를 물어보니 소요시간 30분이라고 한다.

그들은 내가 기상악화에 발이 묶인 그 때  정상 직전에서 고립됐다가 구사일생으로 귀한한다고 했다.

내게 힘을 실어주는 말을 전하고는 아래로 향했다.


더욱 힘을 냈다.

드디어 정상이 보이는 전위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상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왼쪽 사면은 다소 완만했는데, 오른쪽은 거의 직각에 가까웠다.

이런 위험구간은 동료와 안자일렌(anseilen, 여러명이 서로 몸을 묶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하며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난 혼자였다.


다시 생각에 빠졌다.

되돌아갈까?


홀로 이곳을 지나다가 순간돌풍에 중심을 잃거나 클렘폰이 앞발에 결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수천 길 추락이다.

한참을 망설였다.

정상까지 거리는 200m정도.

다시 한 번 데날리 신에게 의지해야하나?


마음을 굳게 먹고 위험구간으로 들어섰다.

비탈사면에서 약간 내려서서 오른쪽 설사면에 아이스바일을 깊게 박으며 한걸음씩 신중하게 전진했다.

극도의 긴장으로 근육이 위축되고 전신의 감각은 오로지 발끝과 손끝에만 있었다.

순간의 실수는 곧 죽음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죽음.

박고, 걷고, 얼마나 반복했는지 희미해질 때 정상이 눈앞에 있었다.


2004년 5월 29일 오후 3시 30분, 드디어 북극권 데날리 정상에 올랐다.

비디오설치 후 20여장의 소소한 염원을 빨리 담아야 했다. 바람이 도달하기 전에..

감사하다.

모든 것에.

이 순간 이곳은 나 혼자다.

이곳에 서기 위해 지난 1년을 착실하게 준비했다.
짦은 시간 많은 생각을 했다.

정상 등정의 기쁨도 잠시, 하산을 위한 분주함이 시작됐다.

캠코더의 위치를 잡아 세우고 고마운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했다.

큰 바람이 다시 불기 전에 내려가야 했다.

내려서는 길이 더 위험하다.

산악사고 대부분이 하산길에 발생한다.


나이프릿지구간을 잘 넘고 나니 하행길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내려오는 거리만큼 다리에서 힘이 풀려나갔다.

갈수록 스텝이 꼬이더니 주저 않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데날리패스 하단에서 앞서 내려간 루마니아 원정대 두 명이 있었다.

고소캠프까지 못 가고 주저 앉은 것이다.

나도 기운이 없었지만, 이들을 두고 갈수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명은 설맹까지 덮쳤다.

눈 가에 눈물자국이 선하다.

부축하고 도우며 하산을 도왔다.

겨우 고소캠프 근처까지 내려오니 경호가 마중을 나왔다.

날씨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며, 정상까지 못 갔을 것이라 생각했다고한다.

걱정해준 것이 고마웠다.

두번다시 못올 곳이기에 영상물 확보에 많은 욕심을 냈다.


5월30일 눈/바람.흐림

캠프 5(고소캠프, 5,300m)→캠프 4(베이스캠프, 4,300m)


10시까지 늦은 잠을 잤다.

고소캠프를 내려와 베이스캠프로 복귀하는 발걸음이 가벼울줄 알았는데 뜻밖에 휘청거린다.

어제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모했나보다.

그나마 다행은 능선을 지날 때 바람이 약해져 수월하게 헤드월 상단에 도착한 것이다.

텐트까지 접어 짊어진 배낭의 크기나 무게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이 때문에 헤드월 경사면을 내려오는 구간에서 얼만나 많이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범벅된 땀, 허기진 배, 메마른 입, 너무 힘든 나머지 내려오는 동안 대화도 단절됐다.


베이스캠프를 빠져 나오는 운행길에 히든크레바스에 빠져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몸은 천근만근 이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편할수가 없었다.

이제 정리하고 내려갈 생각 뿐이다.

데날리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냈다.



데날리(메킨리) 등반 에필로그


데날리는 내가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을 계획한 산 가운데 가장 두려웠다.

에베레스트에 비하면 높이나 원정기간, 비용, 모든 부분에서 나았다.

하지만 북극권 추위, 지원 없는 등반, 게다가 고상돈 선배와 나오미의 죽음에 대한 심리적 부담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에베레스트의 전초로 가장 적합한 산이라 생각했다.

요건이 다 갖추어져 편안히 등반만 할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지만,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가장 명료한 원정이 됐다.


데날리를 내려올 때 오며 다음 행선지로 킬리만자로를 생각했다.

킬리만자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아프리카 최고봉이다.

만년설의 설산행이 없고 고소와 기본적인 체력만 갖추면 성공률은 아주 높은 산이다.

킬리만자로를 성공하고 에베레스트로 향한다면 1차 관문인 세계 5대륙 최고봉이 우선 달성된다.

난 당초 나오미처럼 세계 5대륙 최고봉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아콩카과 성공 이후 완전한 세계 7대륙을 목표로 수정했고, 그 첫 단계로 먼저 5대륙 최고봉 등정을 실현키로 했다.

이제 아이들 선물을 사줄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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