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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Aug 17. 2018

에베레스트(7)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5월 21일

제3캠프 → 제4캠프 → 정상(8,848m)


최근 며칠은 에베레스트 등반의 마지막 중요 일정이다.

그래더 외국팀도 동시에 많이 움직이고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기에 모두들 사활을 걸고 있는듯 하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채화를 이유로 강제로 허비하게 된 날들이 아깝다.

이젠 예비일도 없다.

딱 한 번의 기회!


설벽을 기어올라 옐로우밴드에 접어들자 밑에서 수없이 보며 생각했던 환경과 많이 다르다.

예상보다 더 복잡한 조건이다.


공기마스크를 물고 오르는 외국팀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팀 산소는 제4캠프에 갖다놨다.

죽든 살든 제4캠프까진 무산소로 가야한다.


온갖 용을 써가며 올라 로체 제4캠프에 도착했다.

물 한 모금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고소때문에 식욕도 없고, 그냥...무얼 먹는 행위 자체가 너무 힘들다.

또 무엇인가 먹으면 그나마 부족한 산소가 위장으로 갈테고, 그러면 머리는 더 무거워질 것이다.

체력이 되는 한 최소한의 음식으로 버틸 것이다.


도로지는 셰르파 특유의 걸음으로 30여 m 앞에 있다. 

이곳에서 30m면 10분을 따라잡아야 하는 아주 먼 거리다.

그나마 오늘을 강풍이 없어 다행이다.

공기가 희박한 몽롱함 속에 정신은 또렷하게 정상을 상상한다


제네바스퍼를 우회로 횡단하는 구간이 오늘의 마지막 코스다. 

검은 암질의 에베레스트 돌 표면을 직접 느껴야 하는 구간. 

눈이 쌓이지 않을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노출된 바위에 아이젠이 부딪쳐 빠각빠각 소리가 난다. 

그럴 때마다 스텝이 불안정해진다.

발이 꼬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통과해야 한다.

자칫 발이 엉키면 바로 큰 사고가 된다.

이런 길은 특히 내려갈 때 매우 위험하다.


검은 바위능선 허리를 휘~ 돌아 올라서니 나보다 이틀 앞서 등반을 시작한 한국팀 대원이 고통스럽게 휘청대며 하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상등정에 성공하고 내려간다는 그 대원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무사히, 조심히, 잘 내려가라고 당부했다.

나 역시 내일 이 시간이면 저 대원처럼 아래를 향하겠지 하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이날 운행 중 가장 힘든 옐로우밴드와 제네바스퍼 구간 앞, 묵직한 아날로그 카메라로.


이곳은 고도 8,000m, 공기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제4캠프를 때리는 바람은 악명 높은 사우스콜이다. 

이곳은 로체와 에베레스트 안부로, 네팔과 티벳을 가로지르는 비람의 골짜기다.

그래서 눈이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다.


도로지와 텐트를 간신히 설치하니 우선 안으로 들어가기 바쁘다. 

도로지도 무척 힘들었는지 그냥 누워 버린다. 


"그래 일단 누워 있자. 아무 할 것도 없는데."


쉬는게 일이다.

밤에 출발하려면 잠을 자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올까?

잠을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머리가 묵직하다.

이곳에서 처음 느낀 신체변화, 무엇인지 분명치 않지만 확실한 것은 모든 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몽롱한 정신상태는 이곳이 저승인지 이승인지도 모르게 한다.

나는 그나마 고소에 강한 체질이라 견딜만 한데도 그렇다.


텐트에는 우리 산소통 말고도 여분 2통이 있었다.

당초 같이 운행하기로 했던 기호가 합류하지 못해 남은 것이다.

그 여분을 출발하기 전 도로지와 한 통씩 물었다.

산소 없이 견딜만 했지만,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위해서다.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를까도 생각 했는데, 만약 사고가 나면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기에 마음을 접었다.


이틀동안 먹은 게 거의 없다. 

배가 고파도 모르겠다. 

오로지 등반에 대한 생각만 맴돌 뿐이다. 

사우스콜 바람은 참으로 대단하다. 

텐트 자락이 바람에 휘둘리는 소리가 엄청나다.

이러다 텐트가 송두리째 티벳으로 굴러떨어질까 걱정될 정도. 

나와 도로지는 바람이 닥치는 방향으로 몸을 붙여 텐트를 밀어부친다.

한동안 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고요가 찾아왔다. 

버너를 지펴 스프로 간단히 입가만 적시는 요기를 했다.

아마 체중이 6kg은 빠졌겠지.

2000년 초오유 원정 때도 10kg 넘게 빠졌었다.


등반은 중력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

각 원정대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한다.

립크림조차 필요한 만큼 나눠서 가지고 다닌다.

모든 것이 경량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 랜턴 배터리도 예비용은 포기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내겐 달라붙은 업보가 있다. 

7대륙 최고봉 원정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영상을 찍는 비디오카메라다.

이놈을 챙기느라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매번 있었다. 

초오유, 아콩카과, 매킨리, 킬리만자로 때는 소니 VX-2100라는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다녔다.

다행히 이번에는 경량 소형 비디오카메라, 그러나 아무리 가벼워도 이곳에서는 상당히 버거운 무게다. 

또 요놈의 배터리가 차가운 날씨에 방전되기에, 분리해서 가슴속 주머니에 담아야 하니 그 불편함이 상당하다.


오후 10시 30분, 출발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 최고점으로 향한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밤.

저 앞에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외국팀 렌턴이 움직인다.

도로지와 파이팅을 다짐하는 악수를 하고 출발한다. 

모든 것이 결정될 밤. 삶, 죽음, 성공, 실패의 갈림길이다. 제4캠프를 출발하며.


에베레스트의 밤은 고요하다. 

이곳 신들도 잠든 시간인가.

'빠각! 빠각!'

고요 속 아이젠 톱날이 박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산소마스크가 편한 것만은 아니다. 

종종 어느 순간 벗어 던져버리고 싶다. 

말라서 거친 목구멍으로 산소통 공기가 유입되면 비틀며 찢는 듯한 느낌이 온다.

마치 목구멍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같은데, 그럴 땐 마스크를 벗고 눈을 삼키면 한순간이나마 편안해진다.


얼마나 올랐을까, 고도가 얼마나 될까?

이대로 계속가면 정상이 나오긴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 걸음걸음마다 내게는 기록 갱신이 되고 있다.

 


5월 22일

제4캠프 → 정상(8,848m) → 제4캠프4 → 제3캠프


"도대체 얼마나 올라온거지?"


생각을 계속 반복 중인 내 앞을 덩치 큰 외국인이 갑작스레 가로막는다. 

거친 숨소리와 모양새가 위태로워보인다.

주변에서 셰르파 몇 명이 응급처치를 하는데, 모양새가 아마도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정상으로 가는 길 내내 덩치 큰 외국대원에게 가로막히니 속도가 더디다. 

비켜서는 양보는 바라지도 않는다.

제 몸 힘들다고 로프에 매달려 온몸을 의지해버리니 밑에 있는 내게 전해지는 줄의 팽팽함 때문에 정신이 번쩍든다.

이러다가 어디서 하켄이라도 빠지거나 낡은 줄이 터지면 나까지 굴비처럼 엮여 날아갈테지. 

이런 생각에 이르니 갑자기 기분이 섬뜩하다.

대책이라곤 가능한 그들과 다른 로프를 잡으려고 여기 로프 저기 로프 바꿔가며 올라가는 방법 뿐이다. 


고소에선 몸이 가벼운게 확실히 유리하다.

몇 시간을 올랐나? 저 앞에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능선과 맞닿은 하늘의 검은 실루엣으로 높이를 가늠어본다.


"한 8,600m쯤?"


산소 게이지를 보니 거의 바닥이다.

앞서 있던 도로지를 불러 세워 같이 새 산소통으로 교환했다.

빈 통은 여기 눈 속에 박아놨다가 내려갈 때 회수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도로지와 나는 제4캠프를 출발한 후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안 했다.

묵묵히 한 방향을 잘 가기만 한다면 그게 최선이니깐.

하지만 계속 몽롱하다. 

부족한 잠, 대기압, 지상의 30%에 불과한 산소량.

이런게 원인이겠지. 


정상으로 가는 길


캄캄하던 주변이 어느새 밝아온다.

올려보니 8,700m 남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쯤 되면 성공의 절반 쯤까지 왔다.

남봉 위로 하늘이 걸려 있다. 


아~!

이렇게 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함에 기가 눌린다.

이런 장관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하다.

뒤로는 티벳에서 장엄한 일출이 펼쳐지는 중.

그 빛을 받고 있는 드넓은 대지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

한 달 전부터 수없이 올려다보던 그 많은 수천 미터 봉우리들이 이제는 내 발 아래에 있지 않는가?

천하를 얻은 느낌같다.

이런 기분에 도취돼 죽음을 담보로 산을 오르는게지.

정상으로 가는 길을 가득 매운 해외 원정대.


캠코더를 꺼내 주변 경관을 여러 번 반복 촬영한다. 

손끝이 찌릿찌릿해지며 동상의 위험을 알림에도 촬영한다.

카메라로 사진도 찍는다.

영상과 사진 자료를 담기 위해 20분이나 멈췄다.


남봉에서 바라본 정상부는 칼날같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가장 어려운 크럭스지점 힐러리스텝도 정면에 보인다. 

저 힐러리스텝을 넘어 능선을 지나면 정상인 것이다.


위엄이 대단한 능선 양 옆은 끝을 알 수 없는 절벽.

왼편으로 떨어지면 네팔이고 반대쪽은 티벳이다.

산소 게이지를 확인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다.

능선에서도 이놈의 덩치 큰 외국인들이 문제다. 

힐러리스텝에 도착했지만 행렬이 정체돼 한없이 기다려야겠다.

이러다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것을 생각하니 마냥 기다릴 수 없다.

도로지에게 우회하자고 사인을 보냈다.

위험하지만 절벽 난간으로 붙었다.

매달리기도 힘든, 발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천 길 낭떠러지. 

그나마 로프가 깔려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이 고도에서 로프에 매달려 힘쓰는 것 자체가 바로 죽음으로 직결될 수 있다.

발 아래 까마득한 높이에 압도돼 다리가 덜덜떨린다.

있는 힘껏 꽉 움켜쥔 손에서 쥐가 날 정도다. 


정상으로 가는 관문 힐러히스텝


한바탕 죽을 힘을 다 해 마지막 크럭스인 힐러리스텝을 지났다.

그리곤 계속 올라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건조한 목구멍이 찢어지는 고통.

산소마스크를 벗고 큰 호흡을 하며 눈을 한 움쿰 먹는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눈처마가 끝날 때쯤 몇몇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정상이다. 

드디어 정상이다.

2008년 5월 22일 오전 10시.

나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딛고 있었다.

이곳에서 주저 않아 펑펑 울고 싶었다.

가슴과 머리가 울고 있는데 메마른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에서 찍은 세상. 사가르마타 정상. 구름포를 반쯤 둘러 쓴 로체와 여러 주봉이 우뚝 서있다
단 한 번 열려진 기회, 2평 남짓한 지구 꼭대기에서 로체를 배경으로


산소마스크를 벗고 주변을 둘러보며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도로지와 정상 인증샷도 찍었다. 

베이스캠프에 등정 성공을 알렸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30분 동안 이렇게 하려고 그동안 그토록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이다. 
내려가는 것이 아쉽다.
이제 이곳은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다.
이곳이 내 열정의 정점일 것이다.


도로지가 내려가자고 재촉한다. 

올라오는 길이 얼마나 추웠던지 산소마스크 끝에 10cm나 되는 입김 고드름이 달려있다.

외국대원이 사용하는 신형 마스크는 고드름이 없다.

구형을 사용하니 뜻밖에 이런 멋이 달리게 됐다.

구형 산소마스크에 입김이 얼어붙어 생긴 고드름


내려가는 길은 아무래도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스텝이 엉키면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체력이 바닥이면 다리가 풀려 더욱 위험하다.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것이지만 만만치 않다.

이미 풀려버린 다리는 휘청거리며 주저 앉고 싶어진다.

올라올 때 묻어둔 산소통을 회수하니 더 그렇다.

로프에 매달려서 내려가려고 했지만 이미 많은 덩치 외국인들이 달려 있다.

그들과 같이 벼랑 너머러 날아가버리긴 싫다.

올라올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로프를 고정하는 하켄이 팅~팅~ 거리며 금속성 굉음을 울린다.

로프에 걸린 하중의 긴장감을 목격하니 더욱 조심스럽다.


비몽사몽 걷다가 제4캠프에 도착했다. 

여기엔 음식이 없다.

제3캠프에서 밤을 보내기로 하고 제4캠프 짐을 수거해 나눠 짊어졌다.

이제 목구멍을 찌르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했던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질 무렵 제3캠프에 도착하니 마침 기호가 올라와 기다리고 있다. 

이곳까지 마중나와 준 기호가 너무 고마웠다.

이날 저녁식사는 기호가 끓여준 누룽지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침낭으로 들어가니 잠이 쏟아진다.

내일 아침까지 잘 잘 것 같았다.

 


5월 23일

제3캠프 → 제2캠프 → 제1캠프 → 베이스캠프


세상이 환해질 때까지 계속 잤다.

아직도 높은 고도지만 머리가 맑다.

참상쾌한 아침이다.


셋이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제2캠프에 내려가니 인호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등반의 끝을 기념하는 깊은 포옹을 했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동시에 오르는 등정을 불과 네 명이서 해냈다.


짐을 챙겨 곧장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경기연맹 대원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번 등반 중 우리 텐트와 가까워 항상 이웃처럼 지낸 팀이다.

특히 경기팀 용석이 형은 우리 팀에 부족한 소주를 여러번 조달해줘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팀은 위성전화가 없다. 

등정 성공소식을 알리기 위해 김재수 대장의 위성전화를 빌렸다.

한국에 있는 염태영 단장에게 가장 먼저 전화했다.

아마도 그동안 연락을 못 받아서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을테지.

신호가 흐르고 드디어 염 단장과 통화연결이 되자마자 나도 모르게 흥분된 목소리로  에베레스트와 로체 등정 성공을 알렸다.

염 단장 역시 흥분된 목소리로 이곳 상황과 대원 건강상태를 확인하며 성공을 축하했다.

이젠 집으로 전화할 차례다.

이곳에 와서 처음 통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혹시라도 사고 벨소리로 오인할까 두려웠다.

집 떠나기 전 가족에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얘기해둔 터였다.

아내와 통화했다.

사고 없이 성공했고, 다른 대원도 건강하게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대원 가족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또 한국산악회 전북지부와 남원 큰바위산악회에도 성공을 알렸다.


지난번에 관주가 내려가면서 축하주로 미리 올려준 발렌타인이 있었다.

쿡 덴지에게 남은 고기를 모두 삶고 볶으라고 했다.

이날 오후 거창한 축하파티를 열었다. 

커다란 주전자에 양주와 맥주를 쏟아 붙고 그동안의 고생, 그리고 오늘의 결과를 무용담 삼아 연거푸 들이켰다.

이렇게 마시면 내일 몸이 힘들게 뻔하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이제 등반은 없으니까.

우리 대원과 셰르파, 그리고 쿡까지 모두가 어깨동무를 하고 부르는 노래가 끝나질 않았다.

셰르파와 쿡에게 성공보너스를 두둑이 줘야지.

좋은 친구들이어서 더욱 정이 갔다.



5월 24일

베이스캠프


예상대로다. 

어제 마신 폭단주 때문에 다들 가관이다. 

덴지에게 북어국을 끓여 달라 부탁은 했는데, 이걸로 숙취가 해결될리 만무하다. 

아무리 베이스캠프라지만 산소가 아래의 절반이다.

술이 깨는 회복속도가 더딘데다 그 과정도 참 힘들다.

그냥 좋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  

베에스 캠프에 눈이  녹고 야크가 올라왔다.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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