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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Sep 12. 2018

에베레스트(8)
직장 산악인의 자존심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의 기록

5월 25일

베이스캠프 → 남체


하행 카라반. 

야크로 운반하는 카고백을 정리했다.

대원들과 라마제단 앞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내려가는 길.

행복의 길이다. 

저녁무렵 남체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샤워를 해보는 건가. 

벗겨도 벗겨도 끝 없이 나오는 묵은 때.

에베레스트 등정 동안 생긴 때.   


5월 26일

남체 → 루클라


올라갈 때 8일 걸리던 카라반, 내려올 땐 이틀 만에 루클라에 도착했다. 

이제는 속세다. 모든 것을 덜어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 하다.


카트만두로 나가는 비행기만 연결된다면 당장이라도 뜨고 싶지만, 몬순으로 일기가 좋지 않아 정오에 한 두 대 뜨고나면 오질 않는다.

근 50일을 산속에 있다가 내려오니 설인이 문명을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

빨리 카트만두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글렀다.  

이제는 속세다. 많은 것을 덜어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 하다. 


5월 27일

루클라 → 카트만두


오후에 간신히 비행기에 올랐다. 

웅~ 하는 소리와 이륙하는 동체, 느낌이 좋다. 

대원 모두 새카만 피부에 콧수염이 풀풀 날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들어갈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축하 퍼포먼스가 기다리고 있다. 

꽃목걸이를 걸고 숙소인 안나푸르나 호텔로 향한다. 

수고한 대원의 심신을 풀기 위해 좋은 호텔을 선택했다. 


카트만두 시내에 들어서니 상황이 심상치 않다. 

네팔 국왕 하야를 두고 두 파로 나뉜 시민들의 거대한 집회, 그리고 쫓고 쫓기는 상황.

자살테러까지 발생해 분위기가 살벌하다.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높은 건물에서 대원들과 만찬을 하는 중에도 자살폭탄의 섬광과 폭발음이 들리고 진동까지 전해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로 역시 난리법석이다.

호델 경비도 삼엄하다. 

이 호텔도 왕족의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라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일은 속 편하게 빌라에베레스트로 숙소를 옮길참이다.   


5월 28일

카트만두


아침식사 후 예정대로 빌라에베레스트로 옮겼다.

오후에는 홀리여사 회사 직원을 만나 등반 성공을 기록하고 이곳 대사관 남상정 대사를 찾아가 인사했다.

등반 전부터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이중기 선생에게 이곳 대사관 김미란 씨를 소개받았다.

이곳에 도착해서 등반을 마치기까지 여러 도움을 받아 감사할 따름이다.  


5월 29∼6월 2일

카트만두


귀국 비행기 편이 여의치 않아 체류하며 시간을 보냈다.  



6월 3일∼4일

카트만두 → 인천 


한국을 떠난지 60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날,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운 가족, 고마운 분들과 만남의 시간. 

아들 진이, 최병선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회장과 산악회 동료들, 염봉섭 남원 큰바위산악회장 등을 만나 소소한 무사등정 귀국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염태영 단장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 오늘 귀국을 통보했고, 이곳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었다.

잊은 것일까?

전주행 버스를 타기 전 혹시나 하며 전화를 걸었다. 


"단장님 저 손영조입니다. 방금 귀국했습니다."


염태영 단장이 말하길 우리팀보다 앞서 도착한 다른 한국팀에게 손영조팀이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더니 결항으로 아마 내일이나 모래  온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이제 막 인천대교를 넘었는데, 바로 차를 돌릴테니 공항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40분쯤 지났을까?

환한 표정의 염태영 단장을 만날 수 있었다.

출발 전 안양에서 송별회를 할 때 '출발한 그대로 그 모습으로 되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는데, 지금 비록 깡마르고 새까만 모습이지만 변함없이 와줘 고맙다며 악수와 포옹을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설렁탕집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의 얘기와 근황을 주고받는데 또 다시 눈물이 핑~ 돈다. 

사실 염태영 단장은 우리팀의 책임진 단장 이전에 국립공원관리공단 감사이기도 하다.

이후 정권이 바뀌며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사퇴 압력이 있었음에도 에베레스트로 떠난 우리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리는 어디서 나오는지...

나와 대원들은 이 말을 듣고 숙연해졌다.

식사를 마치니 주머니에 사직서를 꺼내 보여준다.

이제 단장의 소임을 마쳤으니 이 길로 사표를 제출한다고 한다.

조만간 대원들과 저녁식사를 하자고 말하며 돌아서는 염태영 단장의 뒷모습을 보니 눈물이 흐른다.

이렇게 두 달 이상의 원정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나도 대원들도 이번 등반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염태영 단장의 환영을 받으며.

이렇게 두 달 이상의 원정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나도, 대원들도, 이번 등반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나는 이번 등반 성공으로 세계 5대륙 최고봉을 등정을 성공한 직장 산악인이 되었다.  


흠~ 이 향내음...


에베레스트를 오른다는 것, 무모한 것인가?

내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입사한 계기는 산이 좋아서였다. 

1995년 입사 당시 나는 동기들 앞에서 세계 각 대륙 최고봉에 우리 국립공원 깃발을 꽂고 그 위상을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그 생생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유명 산악인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꿈을 버리지 않고 나약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 에베레스트 등정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중 5대륙을 마쳤다.

이제 2개 대륙이 남은 상황에서 변함없이 나와의 약속을 이루길 바란다.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왜 이일을 시작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아마 2000년 히말라야 초오유(8,201m)에서 정상 등정에 실패한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들어앉아 자존심을 건드렸나보다.

30대 중반, 삶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필요했던 시기,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후회할 것 같은 조바심이 동기였는지도 모른다.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이 쉽지 않다는 것은 그 당시 막연한 느낌만으로도 분명했다.

직장인이자 가장으로서, 직장과 가족에 대한 부담과 미안함을 같이 안고 가야 하는 아마추어 산악인에게는 계획부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난 단순하게 생각했다. 

난관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매번 가장 큰 문제는 원정자금 마련이었다. 

알려지지 않는 아마추어 산악인이 이것을 해결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2001년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5,642m)를 시작으로 2003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59m), 2004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 2005년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까지는 앞만 바라보고 추진했다.

에베레스트 등정부터 큰 어려움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정작 등정보다 준비과정이 더 어려웠다.


원정대를 조직하고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정 비용을 마련하는 일. 

원정 비용은 개인부담 외에 어떻게 후원을 받느냐에 달려 있다. 

처음 염태영 단장의 지원을 계기로 김완주 전북지사, 최홍건 한국산악회장, 최병선 한국산악회 전북지부장, 유창희 전라북도의회 의원, 이장우 스포츠뱅크교역 사장, 그리고 농협중앙회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원정대를 꾸릴 수 있었다. 

더불어 산악인 선후배들, 지인들이 정성을 마련해주셨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출정식과 선후배님들의 배웅, 그리고 안양에 도착해 염태영 단장과 국립공원관리공단 20·40도보순례단, 국립공원관리공단 노조위원장의 격려가 가슴속에 따듯하게 전해졌다.

또 이장우 스포츠뱅크교역 사장, 안양푸른산악회, 방통대 산악부의 훈훈한 정을 가슴 속에 새겼다.


나와 대원들은 우리 현실을 잘 이해하고 각자 장점과 특기를 철저히 발휘했다.

우리만의 장점인 팀플레이를 존중하고 이끌어 내야 했다. 

이 결과 우리 원정대는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연이어 등정하며 아마추어 산악인 세계 5대륙 최고봉 등정 쾌거를 이뤘다.


이제 남은 2개의 대륙 최고봉 등정을 추진해야할 차례다. 

세게 7대륙 최고봉 등정이 완료되고 아마추어 산악인의 꿈이 완료되면 많은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꿈은 결코 상상이 아니다.

노력의 대가로, 도전과 고통 끝에 찾아온다.

수많은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희망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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