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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Aug 10. 2020

내가 '갭 이어'를 결정하게 된 이유

스페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기 #21 갭 이어의 시작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약 1년 반만인가?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일이라고 하면 바로 갭이어를 가지려고 한 것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내 갭 이어는 실패였다...

거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에는 항상 갭이 있는 거니까...

(이건 다음 편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거다. 이 편은 갭 이어를 결정하게 된 이유에 대한 거니까...)


해외 발령이 웬 말...?


내 갭 이어 계획은 2018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쯤 회사가 갑자기 홍콩 발령을 제안했었다. 이제 내 팀도 정리가 되고 다들 안정되어 회사 생활을 좀 편하게 할 수 있는 시기인가 했더니 갑자기 왠 홍콩?? 당황스러웠지만 마냥 당황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일단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홍콩이라... 이제 다시 아시아로 돌아갈 때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회사가 이런 제안을 하는 배경을 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터전을 바꾸는 일인데 한 순간에 맘 내키는 데로 답을 할 수 없으니까...

면담을 마치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본 결과 전체적인 조직 개편이 2019년에 계획되어 있다고 했다. 자세한 건 몰라도 지역화 조직 개편이라는 전략 때문에 더 이상 유럽에서 아시아를 담당할 수는 없을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해외 발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직무를 바꾸거나 아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었다. 나뿐 아니라 우리 팀 전체가...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어디서 일을 하던 일만 잘하면 되지 지역화가 웬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어이가 없기도 했다.


어쨌든 처음에는 홍콩을 가야겠다는 결정을 했었다. 왜냐하면 스페인에서 살만큼(?) 살았고, 홍콩이면 한국과도 가까우니 가족들도 더 자주 볼 수 있고, 비싼 홍콩의 물가가 조금 걱정이긴 했지만 현지 물가에 맞춰서 연봉 조정도 해 준다니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제안을 거절할 경우 다른 직무를 하면서 회사를 계속 다니거나 아니면 그만둬야 하는데 이만큼 좋은 직장을 또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하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기에 이즈음 해서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해...


하. 지. 만. 또 다른 면에서 문제가 되는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스페인 장기 거주권이었다. 그즈음 나는 스페인 장기 거주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생으로도 꽤 오래 있었고, 취업 비자를 받은 지도 좀 더 지나면 5년이기에 곧 유럽의 장기 거주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그동안 해 온 게 있는데 5년 장기 거주권을 버리고 떠날려니 아까웠다...  영주권이라는 개념이 없는 유럽 연합에서 장기 거주권이면 영주권과 별 차이가 없는데... 거기다 스페인 장기 거주권이지만 스페인 취업 비자와는 다르게 유럽 연합에서 통용이 되어서 다른 유럽에서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데 과연 이걸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약 80프로 결정한 홍콩행이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한 번 발목 잡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홍콩을 가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들도 물 밀듯이 밀려들었다. 


'홍콩이라는 곳을 내가 좋아하나?' 

'홍콩은 년의 휴가가 스페인보다 적던데... 매년 스페인 휴가를 즐기던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이미 스페인의 긴 휴가를 맛 본 나에게 휴가일의 차이는 아주 중요했다..ㅎㅎㅎ 스페인 휴가에 관한 건 이전의 글을 읽어보시길...)

'한국이 안 맞아서 떠나놓고 다시 한국과 같은 아시아로 돌아가는 게 과연 답일까?'

'이 만큼 했으면 좀 쉬면서 재 충전의 시간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들이 끝없이 들기 시작했다. 내 경험 상으로는 어떤 큰 결정을 할 때 이런 생각들이 든다는 것은 이미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긴 고민 끝에 다른 직무를 하던 회사를 그만두든 간에 어쨌든 홍콩으로 가는 것은 아닌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1차 결정을 하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보던 "갭 이어"라는 단어가 너무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참에 한 1년 잘 쉬고 재 충전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던 프리랜서를 준비해서 디지털 노마드를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이 드니까 세부 계획들이 하나, 둘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 다니는 회사도 웬만하면 재택근무를 허용했기에 디지털 노마드를 하지 못하는 회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길게 끌면 고민만 더 할 것 같아서 제안을 했던 인사팀에는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후 다른 스페인 내의 포지션에 대한 오퍼를 회사에서 제안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갭 이어"라는 유혹에 잠식된 후라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소문으로만 돌던 본격적인 조직 개편이 있던 2019년 봄에 회사를 나왔다. 나중에 회사를 나오는 과정과 퇴직금, 위로금(?) 뭐 이런 것들은 다른 글에서 더 자세하게 적어보겠다. 여기에 다 나열하기에는 너무 길기에...

실패했지만 나름 탄탄했던 나의 2019년 갭 이어 계획!

내 갭이어에 대한 계획은 그 전 해 가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기 때문에 제법 탄탄하게 세워져 있었다.

첫 번째는, 나오기로 결정한 건 나지만 표면적으로는 회사의 조직 개편으로 나오게 된 것이기에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1년간 재 충전을 한다는 것이 기본 뼈대였다. 일단 재정적인 것이 해결되어야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두 번째는 매달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보겠다는 것이 두 번째 계획이었다. 원래도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아직 세상을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한도 끝도 없이 많았기 때문에 이 참에 확실히 더 많이 다녀보고 싶었다.
세 번째는 내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자는 거였다.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긴 시간도 보내고, 오랜 친구들과 여행도 하고 등등
네 번째는 그동안 알고 지내던 에이전시들에게 연락을 차근차근 시작해서 프리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아 나가자는 것이었고, 
다섯 번째는 회사 다니느라 그리고 쉬고 싶다는 이유로 자주 올리지 못했던 브런치 글과 블로그를 마음 잡고 새로 시작해 보자는 거였다.


이 외에도 계획한 것을 꼽자면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하려고 한 것은 저 위의 5가지이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갭 이어 1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왔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또 한 번 배웠지만 그래도 나름 알찬 갭이어를 계획했고, 그걸 계획하는 동안만큼은 행복했기 때문에 비록 실패했지만 시도한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만족할 수 있었던 나의 갭 이어 시작기를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는 기념으로 풀어보았다. 나름 알차게 세부적으로 세웠던 나의 갭 이어가 실패한 이유는 다음 글에서......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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