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특별한 것이라는 편견
음악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분야일까? 어려서부터 일찍이 드러난 재능, 꾸준히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 줄 부모님의 탄탄한 경제력, 음대 학위를 취득한 이후 활동무대를 마련해줄 수 있는 남다른 인맥. 사실 이런 요소들은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발레, 연기, 태권도, 미술, 노래 같은 다른 예체능은 물론이거니와 오롯이 공부만 하는 학생도 다르지 않다.
학원에 상담 온 학부형 중에 ‘우리 애는 전공시킬 게 아니라서요’라는 말로 입을 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첫마디로 그런 말을 들으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전공시킬 게 아니니까 대충 가르쳐달라는 뜻인가? 혹시라도 재능이 발견돼서 전공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르니(그랬다간 어른되서 밥 벌어먹기 힘들 수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게 적당히?
궁금해진다. 다른 과목을 교습받을 때에도 그렇게 이야기하시나요? 영어학원 등록하면서 ‘미국인 될 거 아니니까’, 과학책 읽으면서 ‘아인슈타인 될 거 아니니까’ 하면서요? ‘전공시킬’ 게 아니라면 주요 과목도 아닌 음악을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지도. 그래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흥미롭게, 재밌게만 가르쳐달라는 의미인지도.
우리 애가 피아노를 배우다가 혹시나 운이 나빠서(?) 재능이 발견될 경우 ‘음대에 간다고 할까 봐 걱정’하는 학부형을 가끔 만날 때가 있다. 마음속에 가장 먼저 이 말이 떠오른다.
“시키고 싶다고 다 되는 거 아닙니다.”
‘음악이 얼마나 특별하고 숭고한 학문인데 당신같이 평범한 사람이 감히 하겠다는 거냐?’라는 뜻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학생이 성실하지 않아서다. 음악은 재능만큼(혹은 재능보다) 성실성이 중요한데, 학부형은 그걸 잘 모른다. 뭔가 타고나야 잘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타고난 재능’, ‘끼’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국 음악을 계속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노력과 열정이다.
학부모의 재력과 열성으로 뒷바라지해주는 경우, 좋은 음악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우,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는 좀 더 수월하고 빠르게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끊임없는 노력과 정진하는 태도이다(물론 어떤 통계는 학생이 학문을 이어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피아노를 배우는 목적이 뭔가? 피아노 학원에서 내세우는 그럴듯한 이유는 많다. 음악은 적기 교육이 중요합니다. 양손을 따로 움직이면 두뇌계발이 돼서 똑똑해져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계이름과 리코더 운지법을 떼고 가야죠. IQ만큼 중요한 감성지수 EQ를 높여줘야 해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배우는 목적은, 없다. 음악은 그냥 좋다. 피아노를 칠 줄 모를 때의 나보다, 칠 줄 아는 내가 좋다. 드라마를 보다가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게임 속 기운을 북돋아주는 신나는 음악,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 악보를 구해서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로 칠 수 있을 때, 그렇게 '재미 질' 수가 없다. 내 귀에 들려오는 영롱한 멜로디를 기억해 두었다가 피아노 앞에 앉아 뚱땅뚱땅, 흉내 내고 확인해 볼 때 느끼는 순수한 희열. 경험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가로 성공하기 위해서, 부와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 악기를 전공하고 싶다면 알아야 한다. 음악은 '가성비'가 나쁘다. 단기간에 안된다. 꾸준히 돈을 쓰고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 운동도 공부도 사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은 적당히 해서는 성공의 길이 열리지 않는 분야이다. 언어나 운동처럼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이 투입되어야만 중급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한 악기를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연주할 수 있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일생을 바쳐도 어렵지 않을까.
음악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배우는 음악, 어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전공하는 음악(수단)이 아니라,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어야 한다. 기쁨. 즐거움. 충만함. 삶을 버티게 하는 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때만이 음악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다.
성공이나 1등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 밥벌이는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나도 음악을 전공했고 후회하지 않는다. 학습이 느리고, 집은 가난하고, 부모님의 사회적 인맥은커녕 친구도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어찌어찌 음대 석사 졸업장을 따냈다. 평범한 사람도 더 평범한 나를 보면서 용기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음악은 특별한 재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