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크고 깊은 우주
종잡을 수 없는 여름의 문턱을 지나는 5월.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뿜어 내며 흥건히 옷을 적시나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로 온 몸이 얼어붙기도 한다. 이미 졸업 학점을 넉넉히 채운 나는 교생 실습을 마친 4학년 1학기 5월부터는 할 일이 없어져서, 피아노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방학 때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일할 학원을 찾고 면접을 보는 게 그리 떨리지는 않았다.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역시나 콩나무 시루처럼 빽빽한 아이들로 좁은 학원이 꽉 차 있었다. 짤랑 소리 나는 학원 문을 열자 아이들의 새까만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선생님! 누구 왔어요!"
"새로 온 선생님이에요? 대학생이죠?"
"선생님 또 바뀌나? 알바 면접 보러 왔죠?"
이런 사태가 있을 것을 단단히 대비했다고 생각했건만, 쏟아지는 어린이들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북적이는 아이들을 헤치며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원장님이 멀리서부터 걸어 나왔다.
"다들 조용! 진정하고 들어가서 연습해!"
"와, 도대체 선생님이 몇 번째 바뀌는 거예요!"
"시끄럿, 다들 들어가! 입은 조용. 이론 풀고 기다려!"
익숙한 광경이었다. 내일부터 이곳에서 시간당 수 십 명의 아이들과 씨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잠시 머리가 어질 하면서 피로감이 몰려왔다. 원장님은 작고 통통한 체격에 푸근한 인상이고, 성악가처럼 목소리가 크고 울림이 좋았다. 까부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줄 아는 베테랑 원장님 느낌이 났다. 거친 말투를 썼지만 인상이 좋으셨고, 나쁜 어른 같지는 않아서 일단 안심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이력서를 내밀었다. 원장님은 환하게 웃었다.
"학원 알바 면접이라고 이력서도 안 챙겨 오는 사람 많은데. 이렇게 깔끔하게 출력해서 봉투에 넣어온 사람, 선생님이 처음이에요. 내일부터 바로 일해줄 수 있어요?"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원장님이 덧붙였다.
"참, 그리고 일하실 곳은 여기가 아니에요."
원래 '1호점'격인 학원이 다른 곳에 있었다. 원장님은 그 1호점인 작은 교습소를 운영하시며 지금 아파트 대단지 내 상가 학원을 '2호점'처럼 냈는데, 여기가 소위 '대박'이 났다. 2호점에 학생들은 끊임없이 밀려들고, 원장님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1호점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틀은 1호점, 사흘은 2호점을 번갈아가며 수업했는데 2호점이 훨씬 잘 되다 보니 1호점은 자연스레 관리가 소홀해지며 아이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지금 그 1호점을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말하자면 '대리 원장'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1호점 학생은 적었다. 10명 남짓. 그것도 어떤 날은 띄엄띄엄 연락도 없이 대 여섯 명 정도가 오고 수업이 끝나거나, 어떤 날은 오후 내내 나 혼자 있다가 1시간 반 동안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기도 했다. 수업료를 받아봤자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에게 강사료까지 지급하고 나면 한 푼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원장님은 '첫 정'이 있는 곳이라 쉽게 정리를 못하겠다고 했다. 수업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언젠가는 다시 커질 것 같아서 손을 못 떼겠다고.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일하고 내가 기억하는 한 적지 않은 시급을 챙겨주셨다. 출퇴근 시간, 상담, 수업 방법, 청소 등 어느 것 하나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레슨 장소와 아이들을 전적으로 맡길 테니 마음대로 꾸려 나가 보라고.
"여기 피아노 교습소가 존재하고 있다, 망하지 않았다, 이런 인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원장님의 바람은 그것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부담되는 역할인데 그렇게 임무를 맡은 순간 '오호, 그렇다면 내가 여길 부흥시켜서 2호점보다 더 대박이 나게 만들어볼까?' 하는 열정이 활활 불타올랐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신도시로 빠져나가고 있는 낙후한 지역이라 크게 키워내지는 못했다. 내가 그만두는 날까지 10명 남짓한 아이들은 딱 2명 줄고, 새로 등록한 2명으로 채워지며 실패도 성공도 아닌 허무한 제자리걸음으로 끝을 맞이했다.
그 1호점 교습소에서 일했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아름답기만 한 추억이다. 교습소 풍경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비현실적이고, 아련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랜드 피아노는 없었지만 소리가 좋은 마호가니 콘솔형 피아노 한대가 홀이라고 할 수 있는 교습소 중앙 벽면에 나와 있었다. 피아노 연습실은 네 칸이었는데 너무 비좁지 않고 피아노 조율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교습소 중앙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원형 이론 테이블이 있었고 유치원생 아이들이 앉으면 알맞을 사이즈의 유아 의자가 4개 정도 있었다. 초등 고학년이든 취미 고등학생이든, 그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거미처럼 세워 접고 공벌레 모양으로 등을 둥글게 말고 이론 문제지를 풀었다.
학생들의 단골 멘트는 '저 밖에 없어요?'였다. 1호점 교습소는 늘 조용했기 때문에 거의 일대일 개인 레슨처럼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는 그게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고, 부담스러우면서도 질적인 레슨이 가능해서 역시 좋았다.
앞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몰려오고 나면, 한동안 텅 비는 시간이 생긴다. 이때 나머지 아이들이 와주면 일찍 퇴근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언제나 4시가 넘어야 오는 한 명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모든 레슨을 끝내고도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 5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미래'였다.
미래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여덟 살의 5월은 얼마나 눈부시고 신나겠는가. 그러나 미래의 얼굴은 늘 어두웠다. 다른 학원에 다녀오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4시가 넘어야 교습소 문을 열었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유치원으로 자기가 데리러 간다고 했다. 동생을 집에 보내 놓고 다시 피아노 학원에 오느라 늦는 거라고. 미래는 '2호점'을 운영하느라 바쁜 원장님이 특별히 부탁한 아이였다. '마칠 때 집까지 도보로 데려다주세요. 레슨은 일찍 끝내도 되니까요.' 솜털이 보송보송한 미래의 흰 피부는 뽀얗고 창백했지만 표정은 항상 회색으로 그늘져 있었다.
매일 5시쯤 교습소 문을 닫고 미래의 손을 잡고 함께 귀가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 미래 말고 모든 아이들이 이미 다 돌아가고 없는 시간, 종종 미래 손을 잡고 나가서 근처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 먹었다. 미래는 번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싫어요, 괜찮아요'같은 말로 정중히 사양했다. 아무리 봐도 그건 고문에 가까울 만큼 거짓이었는데도.
"미래야, 선생님이 오늘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은데, 같이 먹어주면 안 돼? 혼자 먹으면 쓸쓸하단 말이야."
"어른이 어린이한테 조르면 어떡해요?"
"물론 미래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나 혼자 먹어도 되지만, 같이 먹는 게 더 맛있잖아?"
그렇게 사정을 하면 미래는 못 이기는 척 같이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미래의 가정환경이 불우한 것 같아서, 가엾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다. 그냥 어린이들을 보면 뭘 사주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어른도 같이 뭘 먹으면서 친해지고, 마음이 가까워지니까. 미래는 '빠삐코'와 '스크류바'를 좋아했고("초코랑 딸기가 제일 좋아요."), 나는 '더위사냥'과 '메가톤바'를 즐겨 먹었다("어른들은 커피맛을 좋아하네요.").
미래의 집은 대학교 기숙사 반대 방향이어서, 미래를 데려다주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저녁 6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그 시간이 때론 아깝기도 했지만, 미래가 이상하게 마음이 쓰여서 나는 매일 성실하게 미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날도 미래와 마지막으로 수업을 하고, 교습소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낮동안 비가 쏟아졌다가 그쳐서 공기가 투명하고 차가웠다. 여름에 가까워질수록 길어진 해는 5시가 넘은 시각에도 쨍쨍했고, 미래는 오늘따라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음, 어, 하면서 뭔갈 자꾸 말하려다 입 속으로 삼켰다. 나는 어깨에 걸친 책가방 끈을 두 손으로 꽉 잡고 터덜 터덜 걷는 미래에게 물웅덩이를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덤프트럭이 미래와 나를 위협하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길 안쪽으로 미래를 비켜서게 했다. 덤프트럭 바퀴가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무참히 밟고 지나가면서 촤르륵, 내 바짓단을 더럽혔다. 아아. 낭패였다. 나는 트럭을 쫓아 달려가며 욕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미래가 옆에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명랑한 목소리로 '윽, 나쁜 트럭! 집에 가자마자 빨래를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선생님."
"응?"
"저, 아빠가 없어요."
미래가 말했다. 나는 한쪽 다리를 꺾고 바짓단을 툭툭 털며 절뚝거리다가, 자세를 고쳐 바로 섰다.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좋은 선생님이라면 이럴 때 뭐라고 말할까. 좋은 어른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여줘야 할까. 어떻게 대답해야 상처 주지 않을지, 세상에 태어나서 그토록 순발력을 쥐어짜 내 본 일이 없을 정도다.
"다른 나라에 일하러 가셨니?"
"아니요."
"그럼...... 혹시 하늘나라......"
"그런 게 아니라요.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아.
이 복잡한 감정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이혼'이라는 상처의 무게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겁지만, 십수 년 전 어린이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직접 듣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낯설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는 들어서는 안 되는 불경한 말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두렵게 뛰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혼이란 것이 특별히 대단한 비극이 아니며 부부 두 사람의 자발적인 합의로 선택한 관계의 종결이라는 점에서 자녀들이 너무 큰 상실감을 느끼지 않기만을 조심스럽게 바랐다.
"그랬구나. 이혼이 정확히 뭔지 아니?"
"네. 엄마 아빠가 맨날 싸워서요. 저도 그럴 바에 이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랬구나."
미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엄마 아빠가 맨날 싸워요. 이유는 돈 때문이에요. 나는 엄마를 따라가기로 했고 남동생은 아빠랑 살고 싶대요. 근데 아빠가 술을 많이 마셔서 동생을 키울 수 없다고 엄마가 말했어요. 아빠는 술 마시고 맨날 큰소리를 질러요. 그래서 아빠만 따로 살고 엄마랑 나랑 남동생 셋이 살아요. 가끔 할머니도 집에 오세요. 미래가 나직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
"제가 우주라고 한다면 그 속에 우리 아빠라는 별은 없어요."
"그렇구나."
"있다고 해도 몇 억 광년 떨어져 있어서 만날 수 없어요."
"......"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우두커니 듣기만 했다. 미래가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우주 안에 있는 사람이에요."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지금도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농담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반응하면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애쓰지 말라고 해야 할지. 겨우 여덟 살 어린이에게?
내가 이렇게 아무 위로의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가. 지혜도 통찰력도 공감능력도 부족한 어른인 게 부끄러웠다. 매일 밤 이어지는 부모님의 싸움 현장을 지켜보며,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는 아빠를 피해 동생과 함께 이불속에 몸을 숨기는 미래. 매일 싸울 바에야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잃어가는 미래. 고작 한 살 더 많을 뿐인데 일곱 살 동생을 챙기며 누나 노릇을 하느라 친구들과 마음껏 운동장에서 뛰어놀지도 못하는 여덟 살 미래.
"고맙다. 내 우주에도 미래가 있어. 미래라는 별이 있어."
"네."
과거, 현재, 미래 할 때 미래 말고, 너 미래 말이야. 이 말은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장난스러워질까 봐서. 그 후로 말없이 우주 속 블랙홀을 지긋이 응시하듯 땅을 보고 걷는 미래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2007년 5월, 스물세 살 나와 여덟 살 미래.
2021년 미래는 스물두 살. 그때의 내 나이쯤이 되었다. 미래는 좋은 어린이였고, 지금은 좋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크고 깊은 우주를 들여다보면서.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고, 상처도 그대로 그 속에 떠돌아다니도록 툭 던져놓은 채.
몇 억 광년 떨어진 별과는 화해했을까. 어찌 됐더라도 지금은 조금 더 환한 얼굴빛으로 씩씩하게 지내고 있길 바란다.
미래의 미래를 응원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