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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Jul 05. 2021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좋아하고 난 다음에는

어리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어린이들도 감정이 있다.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순도 높은 사랑, 미움, 질투, 경쟁이 있다. 마지막 연애에서부터 수년이 흐르며 내 안의 연애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길어지지도 튼튼해지지도 않고 성장을 멈춘 팔다리와 몸뚱이가 노쇠해질 일만 남았다고 소리칠 때, 깊은 가슴 속 연애 샘물도 마르고 닳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문득 어린이들의 풋풋하고 간질거리는 마음을 엿듣고서 덩달아 감정이 촉촉해지는 순간이 있다. 하교 후 피아노 학원에 뛰어들어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연애를 시작할 무렵의 어떤 두근거림을 소환하기도 한다. 그때의 기분은 말발굽처럼 쩍쩍 갈라진 논두렁에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 쾌감과도 비슷하다.


“선생님! 대박사건이에요.”

“뭔데?"

“모모가 은별이한테 고백했어요!”

“모모가 누군데?”

“우리 반에 있어요. 같은 반인데요. 다른 애들 보는데서 갑자기 할 말 있다고 뒤로 불러내서요. 좋아한다고 말했대요!”


구름이가 학원으로 뛰어들어와 소리쳤다. 후르르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철퍼덕 앉아, 땀이 차오른 마스크를 벗으려다 앗차 하고, 대신 손부채로 얼굴을 휘휘 부친다. 은별이는 우리 원에 니는 3학년 여자아이이고, 모모는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는 사건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물어본다. 모모는 남자야, 여자야? 그럼 구름이도 편견없이 대답해준다. 우리  남자요!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고백한 거요. ! 완전 대박이예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어린이가 돌고래 소리처럼 '끼약'하는 고음을 내며 말을 이어가니, 나까지도  흥분이 전염되면서 덩달아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모르죠. 둘이 어떻게 되는지.”

“은별이는 뭐라고 대답했대? 사귀는 거야?”

“저야 모르죠.”


대박사건 운운하며 자기 일처럼 흥분하던 구름이가 돌연 무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중요한 건 마음을 전하는 거니까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모르게 심장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두근두근 쿵쿵 울렁거린다.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문장도 어린이의 입에서 나오면 잠언처럼 경건하게 들릴 때가 있다.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없고, 지식을 드러내려는 음흉함이 없는 말. 속내가 빤히 보이는 어른들의 대화는 피로감을 주지만, 속내를 숨길 필요가 없는 어린이와의 무해한 대화는 쉼없이 이어지는 레슨으로 몸이 지쳤을 때 한 입 먹으면 기운이 솟아나는, 달콤하고 예쁜 디저트 같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립다.”

“재미요? 재미로 좋아해요?”

“아니, 그건 아닌데.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떨리고 기분 좋잖아. 학교 가는 길이 즐겁고 그날 하루가 기대도 되고. 그런데 그럴 상대가 없어서 슬퍼.”


구름이는 내 말을 듣고 엄지와 검지로 브이자를 만들어 탐정처럼 턱에 대고 말한다. 아무나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로. 나도 그렇게 센스 넘치는 말을 하고 싶은데, 세상에서 제일 뻔한 말을 하고 만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거절당하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 마음만은 소중한 거야.”


내가 먼저 말해놓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작위적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정말 ‘선생님처럼’ 정직한 말을 해서 질리지 않았을까? 주절주절 늘어놓는 내 이야기를 듣던 구름이가 뭔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선생님, 결혼했어요?”


서른 중반 넘어서 들어본 숱한 '결혼 여부 질문’ 가운데 가장 예의를 갖춘 억양이다. ‘물어보기 좀 실례지만’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른들도 어린이들만큼만 예의를 갖추어 뭐든 조심스럽게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결혼 안 했어.”

“왜요?”

“결혼하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나서.”

“저는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차여서요, 이제는 고백 안 해요. 처음에 일곱 살 때였나. 두 번인가 고백했다가 차였고요. 1학년 때도 차이고, 2학년 때도 두 번 정도 차였고요. 3학년 들어와서는 아무한테도 고백 안 했어요.”

“우와, 그렇게 고백을 많이 해봤어? 마음에 드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거야?”

“항상 보면 좀 괜찮은 애들이 있더라고요.”

“그렇구나.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용기 내 고백해 봐. 많이 차이다 보면 점점 무감각해질 거야.”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구름이는 정말 슬픈 눈을 하고 난처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차여도 차여도 항상 힘들어요.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어느 날 내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거절당하고 와서 이렇게 말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황량한 절벽 가장자리에 서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슴속에 돌풍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며 네 망막에 비치는 내 표정을 살핀다. 너를, 혹은 너에게 겹쳐 보이는 나를 함부로 가엾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가족과 함께 쓰는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놓은, '내 일기 문서 파일'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었더니 부끄러운 내용의 첫 페이지가 미리보기로 보이고 있었던 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동공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비슷한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열 살과 서른일곱 살의 사랑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도. 예리한 날에 베인 것처럼 가슴이 하얗게 시려온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마음을 전하는 게 좋지.”

“그랬다가 걔랑 어색해지면 어떡해요?”

“그럴 수도 있지."

"그건 좀 그래요. 어색해질 바에 고백을 안 하는 게 나아요. 교실에서 계속 봐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그건 감수해야지.”

“사랑이 감옥이에요? 감시를 왜 해요?”


그 말에 나는 명치를 눌린 듯 컥, 숨을 토해내며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는다. ‘감수’라는 말을 모르는 열 살과 대화 중인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감’ 자가 들어간 단어라서 ‘감옥’이나 ‘감시’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어린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렇다, 감정은 감시할 수 없다. 날 받아주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니 감옥에 가둘 수 없는 것처럼.


어째서 어린이의 감정은 더 쉽고 가벼운 거라 생각했을까. 덜 진지하고, 즉흥적이고, 금방 변한다고 생각했을까. 이토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진심인 것을. 상대방을 잃고 싶지 않아서, 더는 자기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숨기는 편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을. 열 살 어린이에게도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잠 못 드는 밤이 있다. 어떤 말로 고백을 시작할까 시뮬레이션해보면서 곁눈질로 상대를 훔쳐보는 애틋함이 있다.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나 역시 뼈저리게 앓으며 지나온 시간들인데.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수년간 아이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열 살 어린이,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과는 깊은 마음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른으로서 어린이들을 ‘내려다보며’ 귀엽다고 여기면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어린이가 마주 보고 의자에 앉아서 서로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약간 미묘한 지점이 있다. 그게 열 살이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나이. 일차원적인 개그가 아닌 심오한 말장난을 이해하는 나이. 열 살이 되면 어린이 중에서도 조금 더 복잡한 어린이, 개성이 뚜렷한 어린이가 된다. 열 살이 된 어린이에게는 내가 어른이랍시고 다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대화하는 ‘배려’가 필요 없다. 그런 태도는 열 살을 기만하는 것이고 ‘애 취급’ 하는 것이니 피해야 한다. 여덟 살도 아홉 살도 열 살도 어린이지만, ‘완전한 10대’에 편입한 열 살은 조금 더 특별한 나이다. 5월 30일이었던 지난주 일요일이 열 번째 생일이었다고 말하며 ‘저는 이제 진정한 열 살이에요’라고 선언했던 효주처럼, 열 살은 사춘기 질풍노도의 씨앗이 움트는 ‘진정한 10대’의 시작인 것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곡으로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꼽을 수 있다. 전 세계 피아노 연습생들을 좌절에 빠뜨리는 초절기교 연습곡으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 그는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 음악감독이다. 곧은 이마가 보이도록 쓸어 넘긴 정돈되지 않은 단발머리, 도드라진 눈썹 뼈, 크고 움푹 파인 눈, 날렵한 콧날, 분명한 턱선은 아가씨는 물론 유부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미간 오른쪽에 치우쳐 돋은 작은 사마귀까지도 그의 이지적인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해 주었다. 세련된 외모와 출중한 연주 실력을 겸비한 피아니스트인 리스트가 연주여행을 다닐 때면 머무르는 곳마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으로 넘쳤다.


사교계가 주목하는 뜨거운 로맨스가 관습과 시대, 도시를 넘나들며 벌어지기도 했다. 1833년 리스트는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알게 되는데, 그녀가 가정이 있는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부인과 리스트는 동거를 시작하고 이후 이들 사이에 세 자녀가 태어나는데, 이 중 둘째 딸 코지마가 대 지휘자 한스 폰 뷜로와 이혼하고 바그너와 재혼한 사건은 유명하다. 시간이 흘러 리스트는 1844년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결별하게 되고, 관계가 깨어진 후에도 리스트는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러시아의 각 지방으로 왕성히 연주 여행을 다녔다.


1847년 리스트는 러시아 키예프에서 연주회를 가진 후 새로운 연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캐롤리나를 만난다. '공작부인'에서 알 수 있듯이 캐롤리나도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녀였지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이듬해부터 바이마르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리스트의 화려한 바이마르 시대가 시작된다. 1861년까지 그곳에 머무르며 활발한 작곡 활동을 펼치고 지휘자, 음악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한다. 살아있는 동안 부귀와 명예를 다 누렸던 리스트는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종교적인 이유로 교황청이 허락하지 않아 좌절하게 된다. 만년에는 돌연 종교에 귀의하여 로마의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된다. 그 시기에는 종교색이 짙은 작품들을 다수 발표하였으며, 바이마르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활발하게 작곡했는데 대표작으로는 비르투오소적인 피아노 작품과 교향시를 들 수 있다. 프란츠 슈베르트와 로베르트 슈만에게서 영향을 받은 가곡 작품도 드물게 존재하며, 그중 '고귀한 사랑(Hohe Liebe S.307)’, '행복한 죽음(Seliger Tod S.308)’,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S.298)’등 세 곡으로 이루어진 '테너 또는 소프라노 독창용 3개의 노래'가 잘 알려져 있다. 1849년에 이 세 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하여 '3개의 녹턴'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는데, 그중에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를 편곡한 '사랑의 꿈' 3번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도 3개의 녹턴 중에서 3번 '사랑의 꿈'이 가장 유명하고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Ab장조. 4분의 6박자. 포코 알레그로 콘 아페토(Poco Allegreo con affetto).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듯 따뜻하게 빛나는 아르페지오 위에 느리고 애잔한 선율이 쌓인다. 점점이 놓인 듯한 음들을 연결하면 곁에 머무르는 듯하다 자꾸만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포근한 구스다운 이불을 덮고 있는 듯한 평화로운 감정은, 때로는 오해가 얽히고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면서 한바탕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듯이 황폐해지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은 종종 환희로, 분노로, 고통으로 일그러져 어떤 감정인지 분간하기 힘들 때도 있다.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자지러질 듯 웃기도 하고, 때론 달아나고 때론 쫓아가는 사람이 되어 광기에 싸인 경주를 벌이기도 한다. 사랑의 꿈은 달콤한 솜사탕처럼 언제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것이다.


여기까지는 제목을 알고 음악을 들으면 느낄 수 있는 상투적인 감상들인데, 사실 원곡의 바탕이 된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Ferdinand Freiligrath)의 시는 이 같은 감상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사랑할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 옆에서 슬퍼할 시간이 찾아오리라.” 마치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을 그리며 후회하는 풍경이 떠오른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은사님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랑의 꿈'의 원곡은 사랑의 달콤함에 취한 이의 가슴 벅찬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영원한 동면에 들어간 지난 인연을 위한 추모곡이자 자명하게 기다리고 있는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의 떨리는 귓속말 같은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사랑하라는 전언, 시간과 육체가 기다려주지 않는 때가 곧 올 것이므로.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의 환상적인 동거 시절 탄생한 이 노래는, 사실 공작부인의 이혼과 사랑의 서약에도 끝내 부부의 연이 허락되지 않았던 미완성의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유하고 화려한 삶에서도 영원히 가질 수 없었던 부부라는 이름을 염원한 리스트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좋아하고 난 다음에는.

언제나 궁금했다. 좋아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 마음을 전한 다음에는.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기로 맹세하는 걸까. 내가 좋아했던 과거의 사람들에게 내가 원한 것도 그런 것이었을까.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같지 않다면, 거절당한 내 마음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도 모르는 마음 어딘가에 보관되는 것일까. 공기 중으로 증발하여 그대로 소멸하는 것일까.

 

내가 겪은 바로는 햇살에 쌓인 눈이 녹듯 흔적 없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날이 풀리고 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아지랑이가 어른거릴 때도 이별이 날린 타격에 쇠약해진 마음은 눈에 띄는 기침과 오한, 발열로 현현하여 오랫동안 육신을 괴롭혔던 것이다. 이별의 후유증은 없었던 것처럼 멀쩡해지기는 어려운 만성질환이 되어 계절과 온도가 바뀔 때마다, 일조량과 하늘의 높이가 달라질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찾아왔다. 순수한 사랑의 지혜를 얻기 위해 구름이에게 물어보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널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할 거야?”

“처음엔 힘들겠지만 빨리 잊어야겠죠. 다른 사람 알아봐야죠.”


거절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용기. 거절 따위로 손상되지 않는 자존심. 빠르게 털고 일어나 다른 사람을 찾는 낙천성.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무덤 옆에서 슬퍼할 날이 오기 전에. 좋아하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는 건 더욱 좋아하는 것, 다시 좋아하는 것뿐이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열 살 어린이의 사랑이란 서른일곱 살 어른의 것보다 성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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