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아는 May 15. 2022

결핍에 대하여

나는 내가 있는데. 왜.

근래 가장 크게 싸우고 있는 존재는 외로움이라는 존재이다. 결핍. 외로움.

온수 속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들어가면 잠시 몸이 따가운 것처럼, 그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온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나를 따갑게 한다.

복작이는 사람들 속에 있다가 텅 빈 방 안에 들어가 불을 켰을 때, 어지러이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바라볼 때. 따뜻한 주말 오후에 눈을 떴을 때. 저녁에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문득, 그렇게 문득 찾아온다. 한없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어서. 화처럼 내려앉힐 수도 없고, 슬픔처럼 배설할 수도 없고, 행복함처럼 지워내고 싶지 않아 꾹꾹 눌러 담을 수도 없다. 거미줄처럼 내 마음의 곳곳에 눌어붙어있다. 이 애는 순간의 행복함을 극대화하고 빠르게 씻어내 버린다. 슬픔과 우울함을 감아낸다.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는 나로서 충분했는데, 외로움이라는 거미줄이 내 마음에 쳐지고 나면 나는 나를 외면하게 된다.

이 결핍을 빠르게 무언가로 채워내기 위해서. 달고 매운 것을 먹고, 잠을 자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릴스를 보고, 미친 듯이 약속을 잡고, 사람으로 채우고.

빠르게 채운만큼 빠르게 사그라든다. 특히 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만남으로 결핍을 채웠을 땐, 결핍의 구멍이 더 크게 도려내어진다.


외로움은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외로운 사람들, 나쁜 사람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엔 외로운 내가 잘 보이나 보다. 나도 그렇다. 외로운 사람은 이야기를 몇 번만 나누어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의 외로움은 그들에게 미끼처럼 작용한다. 그들이 미끼를 잡은 순간 나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유되는 물건이 된다.

이를 알면서도 정말 외로운 사람들은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가장 쉽게 채워지는 것은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이 떠나간 후에 그 구멍을 또 다른 사람으로 메우려 하고, 또 구멍은 더 커지고…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이다. 결핍의 구멍을 채우는 일은 대게 순간의 기쁨을 추구하는 일이기에 결과적으론 건강하지 못하다. 많이 먹어 살이 찌거나,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무기력하게 누워 있어 생산적이지 못한 하루들을 보내거나, 필요 없는 인연에 상처받거나, 외로움과 싸우다 내가 정말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거나. 나는 외면으로도, 내면으로도 망가지는 것이다.


사실은 다 외로움이라는 애 때문인데, 어딘가 문드러진 나 자신을 보며 비난의 화살은 나를 향한다.

네가 못나서 그런 거야, 네가 좀만 잘났어도, 네가 좀만 잘했어도, 넌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고 버림받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알았다. 외로움이라는 애와 싸우기 위해서는, 마음 이리저리 쳐진 거미줄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가 우선이라고. 반듯하게 살아가자고.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나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며 짓이기지 말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반듯한 하루를 시작하고,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작은 행복들을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향유하고, 잠을 잘 자고,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옷을 입으며 나를 꾸미고. 그렇게 나부터 사랑해주는 거다. 결핍을 채워내기 전에 나부터 나와 이야기를 하는 거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나의 외로움이 누군가의 미끼가 되진 않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