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취득기 01.
퇴사하기 전에, 퇴사 후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은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당장 내가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없는데도, 면허를 따겠다고 마음먹었다.
첫번째 이유는 친구들의 ‘너 아직도 면허 없어?’에 새로운 답변을 하고 싶었다. ‘아니? 나 이제 면허 있어!’라고 답하고 싶었다. 내 가까운 친구들은 대부분 스무살에 면허를 땄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열 명 중 한 명만 운전할 정도로 장롱면허 비율이 높지만, 무튼 그 당시에 땄다. 우리 분명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는 언제 땄는지. 왜 나는 면허 학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도움이 되는 가족원이 되려는 마음이다. 어딜 가든 자동차를 타고 가면, 남편이 독박 운전을 한다. 나를 여기저기 태우고 다녀줘서 고맙지만 졸린 눈을 부릅뜨고 운전할 때면 안쓰럽다. 하지만 남편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에게 운전대를 넘겨줄까?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내가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잖아!’라는 나의 주장에 많은 친구들이 ‘제발 119를 불러.’라고 했다. 운전면허가 없는(얼레리꼴레리) 엄마와 장을 보러 가는 것도 상상해보았다.
세번째는 면허증 자랑 욕심이나 도의적인 게 아니라, 운전 자체가 하고싶어서다. 나는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잘 발달해 있다는 말이 다 끝나기 전에 고개를 다섯번은 끄덕일 수 있다. 그만큼 인정, 인정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길치지만 씩씩한 뚜벅이로 지낼 수 있었겠지. 배차가 길든, 짧든 주변에 지하철역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친정 근처에는 경의중앙선이 있는데, 파주부터 서울을 뚫고 지나가 경기도 양평군까지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양평에 내려서부터 문제다. 물맑은 양평의 계곡을 찾아가려면 운전을 해야 한다. 운전을 하면, 대중교통이 갈 수 있는 곳 그 이상을 좀 더 구석구석 가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제니 언니. 무섭고 멋있게 운전하는 여자였다. 왼쪽 다리를 운전석 시트위에 접어 올리고 한 손으로 핸들을 돌리는 모습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철없이 반했다. 나는 그 날 운전할 때 한쪽 발만 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언니는 운전을 20년 가까이했다. 20년 뒤의 나는 장롱면허 연수를 받으러 다녀왔다는 글을 쓰고 있을까봐 걱정이다.
위에 이유를 세가지나 적었지만, 면허학원에 가기까지 엄청난 내적갈등이 일어났다. 남편이 '가기 싫으면 정말 안가도 된다'고 할 정도로 침울해했으니, 대외적으로 보이는 내적갈등이었다.
학원 등록하겠다고 했는데, 안 갈수도 없고. 백만원 넘게 썼는데 면허 못 따면 챙피해서 어떡해? 남들 다 따는데 나라고 못 따겠어? 진짜 못 따면 어떡해? 도로에서 수업 받는데, 누가 ‘저런애는 도로에 나오면 안되지.’ 하고 날 치면 어떡해? 하는 말도 안되는 두려움에 떨었다. 퇴사를 이틀 앞두고 비오는 토요일 오후에 면허학원에 등록했다. (때는 5월초였다.) 너무 비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