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사랑
한 세기 가까운 미국 아카데미 역사상 총 9번의 수상 취소사건이 있었다. 올해로 96번째 생일을 맞는 오스카 입장에서 볼 때 약 10년에 한 번씩 취소 사건이 발생한 셈인데, 지난 ‘22년 ‘킹 리차드’ 라는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윌 스미스가 난데없이 사회자의 뺨을 후려치며 대망의 10번째 취소 사건이 탄생하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일은 자신의 아카데미 회원자격을 자진 반납하는 선에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모 관계자에 따르면 영화계에서 폭행은 조금 흔하고 시시한 가십거리에 불과할 뿐 수상취소가 거론될 만큼 심각한 주제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앞선 9번의 사례는 대체 어느 정도의 사건을 터트렸기에 윌 스미스의 폭행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상취소의 선례를 남길 수 있었던 걸까.
대망의 첫 번째 수상취소 사건은 1929년 있었던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서커스’로 남우주연상 포함 총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찰리 채플린이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찰리에게 무슨 흠이 있었던 건 아니고 혼자서 상을 독차지 할 것 같으니 주최측에서 미리 손을 써 4개 부문 시상을 ‘특별상’ 이라는 항목으로 통폐합하는 바람에 찰리의 후보 지명이 자연 철회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찰리 이후 발생한 나머지 8번의 사건은 모두 특정인물이 아닌 작품에 관한 것이었고 그 중 3번은 음악, 나머지는 모두 각본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찰리처럼 후보지명만 철회할 뿐 실제 상까지 받은 작품을 무효로 돌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그 드문 사례가 아카데미 역사상 딱 2번 있었다. 하나는 ‘오드리 헵번’ 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킨 ‘로마의 휴일(1954)’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워낭소리’의 모티브가 될 법한 1957년작 ‘브레이브원’ 이라는 작품의 각본이었다.
당시 로마의 휴일은 ‘이안 멕켈란 헌터’, 브레이브원은 ‘로버트 리치’ 라는 사람이 각각 수상했다. 두 작품의 수상이 취소된 이유는, 싱겁게도 원작자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안 멕켈란은 로마의 휴일을 쓴 적이 없고 로버트 리치라는 사람은 실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더 가관인 건 두 작품의 원작자가 단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실제 두 작품을 모두 집필한 원작자의 이름은 ‘달튼 트럼보(Dalton Trumbo)’,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작가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렇다면 트럼보는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자신의 유명한 이름을 감추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필명으로 활동을 해야 했을까.
트럼보가 필명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었던 단 하나 결정적 이유는 그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지지하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트럼보가 한창 활동했던 시기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냉전 이데올로기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반미활동 조사위원회(HUAC)라는 조직까지 만들어 소련에 부역하는 반동분자 색출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하필 이런 때 트럼보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모아 공산당 가입을 선언했다. 할리우드 텐이라는 이름의 이들 조직은 단순히 정당 명부에 가입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활동 전단지까지 만들어 대대적으로 공산주의 이념을 홍보하고 다녔다. 당연히 트럼보와 그의 동지들은 정부의 주요 관리대상에 올랐고, 반미활동 위원회로부터 청문회 소집명령까지 받았다. 청문회장에서 트럼보는 위원장의 바보같은 질문에 불성실한 답변 태도로 일관하여 의회 모독죄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소한 뒤에도 주홍글씨가 붙은 그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보수언론은 연일 그에게 러시아 스파이 가면을 씌우고 다시 감옥에 처넣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트럼보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동네 삼류 영화사를 찾아 여러 필명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보통 비버리 힐즈에 사는 중년 남성이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소개하면 십중팔구 사람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인 걸 알면 사람들은 조금씩 왕래를 끊고 경찰서에 간첩신고를 한다. 당시 언론은 공산주의 세력을 러시아 스파이와 동일시했고 일반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온 ‘정보’ 를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트럼보의 공산주의는 소련 스파이처럼 국가 전복을 기도(企圖)하는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의 딸 니키가 본인도 공산주의자인지 묻는 질문에 트럼보는 이렇게 답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친구에게 누군가는 돈을 빌려주고 매주 이자를 받는다. 또 다른 녀석은 그 불쌍한 친구에게 공부 따위 집어 치우고 당장 밖에 나가 돈을 벌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묵묵히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내어주며 함께 나눠 먹는다. 네가 만약 후자에 속하거나, 후자에 속할 마음이 있다면 너 역시 공산주의자다”
트럼보의 공산주의는 열악한 노동환경의 근로자 편에서 그들의 기본인권을 지켜주려는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의로운 행동이지만, 당시 기득권의 시각에서 트럼보의 행위는 ‘빨갱이의 선동’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극우성향 인사들은 주요 언론을 통해 모든 종류의 노동운동을 공산세력의 내란 행위로 규정하였고, 수 많은 기업집단이 이에 화답하듯 지지성명까지 발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자신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려는 J.매카시 같은 인물이 나타나 스파이 색출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자신의 정적 제거 수단으로 ‘마녀사냥’ 프레임을 남용했다. 美 의회에서 한창 목소리 높던 매카시 의원에게 트럼보 같은 유명인사는 자신의 마녀사냥에 더 없이 좋은 제물이었다. 지금도 본래의 취지와 달리 누군가에게 거짓 프레임을 씌워 모욕하는 행위를 ‘매카시즘’ 이라 부른다.
매카시즘의 목적은 진실규명이 아니라 상대방 흠집내기다. 한 번 거짓 프레임에 씌인 사람은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본래 명예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모 연예인이 성추문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조사를 마친 뒤 최종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해서 그 연예인이 다시 본래의 이미지로 깔끔히 세탁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혐의 기사를 접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닌 뗀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 는 식의 색안경 논리를 벗지 않는다. 지인 부부를 시기한 여성이 그 댁 남편이 바람 피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하면 아내 되는 사람은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남편의 별 것 아닌 행동에서도 불륜의 징후를 본다. 설사 모든 것이 오해로 밝혀져도 ‘대체 어떻게 처신을 하고 다녔기에 그런 소문이 돌게 하느냐’ 는 핀잔 속에 ‘정말 여자가 없을까’ 하는 의심의 불씨가 남는다. 프레임은 지능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하고, 감성은 대중의 무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에 사후 무고를 증명하더라도 무의식의 흉터는 남는다.
특히 남녀 사이 프레임은 다른 유형의 굴레보다 질기고 잔상이 오래 남는 경향이 있다. 오래 전 진지한 만남을 이어오던 여성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서두에 자신은 결혼 날짜를 미리 정하고 싶은데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현실적으로 모아 놓은 돈이 없으니 당장 결혼을 서두를 형편은 못 된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여성은 내가 결혼 생각이 없는 거라며 단정 짓듯 말했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기에 성심껏 당장의 결혼이 난감한 이유를 설명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후 그녀는 ‘아니야, 넌 나와 결혼할 생각이 없어’ 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뜬금없는 결혼 이야기는 그녀의 친구들이 부추긴 것이었다. 내용인 즉슨, 조건을 떠나 자신의 결혼 제안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를 보면 본인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나는 그녀가 던진 프레임에 꼼짝 없이 갇힌 셈이고 그 프레임 속의 나는 결혼 생각이 일도 없는 사람으로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하등 없는 상대가 되고 만 것이다.
내가 나이 마흔 줄에 여전히 장가를 들지 못한 것은 이런 프레임의 공작에 지나치리 만치 이성적으로 대응한 탓이 크다. 여태 경험한 여성들은 서로 간에 미끼를 던져 놓고 제발 걸리지 말라고 기도하는 꼴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분명 그 미끼를 사전에 알고 확실히 피해 갈 수 있었지만, 무슨 심보인지 되려 미끼를 정면에서 물고 올무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 애를 썼다. 그 결과 나의 연애는 언제나 덫에 걸린 생쥐 마냥 제 풀에 지쳐 쓰러지는 허무한 이별이었다. 상대는 감성의 덫을 놓고 그 프레임에 걸리지 말라고 신호를 주는데, 나는 그런 상대의 의도를 알면서도 모른 척 이성의 발을 덫에 놓아 버리니 서로 올바른 소통이 이뤄질 리 없었다. 남녀 문제는 언제나 감성과 이성의 대립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점차 감성은 무뎌지고 이성의 끈만 팽팽하니 시간이 흐를 수록 여성이란 동물을 이해하기가 더욱 난감하다. 그러니 매번 여성의 매카시즘 공격에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 하고 진실만 부르짖다가 갖은 생채기만 남기고 버림 받는 처지를 면치 못 했다.
매카시즘은 분명 진위 여부와 관계 없이 상대 명예를 훼손하고 부당한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런 면에서 매카시즘 공격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 봐야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 곳은 한정적이다. 그렇다고 사실이 거짓으로 변모하지는 않는다. 잠시 먼지 같은 거짓 속에 묻혀 있을 뿐, 진리의 바람이 불면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한편 시류에 잘 편승하는 사람은 프레임의 덫에 걸릴 염려가 없다고 말한다. 보통 시류에 역행하는 사람이 모난 돌에 정 맞듯 거친 삶을 산다. 모 방송국에서 가수 송창식은 자신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했다. 세상이 바라는 기준에 맞춰 세련된 옷을 입는 것, 그것이 철 든 것이라면 자신은 절대 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도 가수 송창식은 제 멋대로 잘만 산다.
단 한 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 한 채 아카데미 각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트럼보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이데올로기 갈등은 줄어들고 그의 진가를 알아 본 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영화에 선뜻 출연의사를 밝히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미디어에 등장하자 극우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또 한 번 그를 러시아 스파이로 매도했지만 어디서도 그의 간첩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60년 그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스파르타쿠스’ 시사회에 대통령 존F케네디가 다녀 가면서 그의 간첩 의혹은 일단락되었다. 이어 진상조사를 통해 앞선 두 작품의 오스카상도 본래 주인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1993년 아카데미, 트럼보는 그토록 염원하던 시상대에 올라 ‘로마의 휴일’ 원작자로 자신의 이름 ‘달튼 트럼보’ 가 적힌 트로피를 받았다. 나이 88세의 트럼보는 자신의 마지막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은 수상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공포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 공포의 상처는 깊고, 누군가는 그 상처로 인해 목숨도 잃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 그 공포에 찬동했던 사람들 모두 이 곳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복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 자리는 그간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상처는 여전히 아리고 슬프지만, 그 만큼 이 상처는 우리가 지나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당당히 증명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