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가까워진다. 개인적으로나 조직 측면에서 계획과 성과를 분석해 보는 시기다. 계획이란 성취하고 싶은 최상의 수준을 설정한 것이기에 만족할 수준의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본래 어렵다. 불만족한 결과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 원인에 따른 대안들을 탐색한 후 합리적인 대책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개인이나 조직만이 발전할 수 있다. 국가의 주요 업무를 수행하면서 큰 규모의 공적 자금을 사용하는 기관들은 매년 국정감사를 받는다. 국정감사를 통해 공조직은 목적 달성을 위한 1년 단위 계획과 추진 성과를 어느 정도 일치시켰는지, 문제와 원인을 찾아 합리적인 대책을 세웠는지를 공개적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10월 중에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교육 분야는 사립유치원 비리가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대입제도와 관련하여 내신성적 및 수시전형의 공정성 문제, 국가교육위원회의 무책임 등도 현안으로 다뤄졌다. 초․중등교육의 본질적 목적인 지식 및 인성교육에 대해서도 다뤄졌지만 경남학생인권조례 외의 주제들은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교육계 출신 국회의원 한 분의 기초학력 실태에 대한 근본적인 질의도 일반인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는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기초․기본학력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에 대하여 일관되게 질의했다. 교육계 출신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두는 중요한 주제이기에 필자는 이에 관한 소수의 신문기사와 뉴스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BbuhFcCu7-Y, https://www.youtube.com/watch?v=tmHwie9NJtA)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국회 홈페이지에서 국정감사 회의록을 통해 질의와 답변 내용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누군가 필자에게 이에 관한 소감을 묻는다면 한마디로 줄여 ‘학교 지식교육이 너무 걱정된다.’고 답하고 싶다.
기초학력 부진학생 실태 요구에 대해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자료 부존재’, ‘자료 미취합’ 등의 사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거나 부실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기초학력 진단시스템은 시․도교육감이 자율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학력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고 답변했다. 서울교육청은 ‘자료 부존재’의 이유에 대해 ‘학교서열화 방지를 위해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강원교육청은 한 줄 세우기 정책은 대한민국의 교육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폐기되어야 하며, 서열화 정책으로 꼴찌 한다는 비판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학생들의 낮은 학력이 교육감의 학력에 대한 관심 부족이라는 지적에 대해 ‘학업성취도 수치는 아주 나쁘지만, 수도권 주요 대학이나 취업률은 상당히 상승하고 있다.’고 의외의 답변을 하기도 했다.
교육부장관은 국정감사 답변에서 ‘기초학력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당연한 책무이기에 교육감들과 협의하여 전국 시․도별 초․중․고 기초학력 부진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러한 실태를 바탕으로 기초학력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학력실태를 전국단위로나 시․도교육청별로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구체적인 실태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수립된 기초학력 지원체제라면 그 계획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 그리고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일부 교육감들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력을 파악할 수 있는 전국단위, 또는 시․도단위 일제평가가 새로 시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전국의 초․중․고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되었다. 학교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고 국가수준의 교육정책 수립 및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학업성취 수준 파악 및 추이분석을 통한 기초학력 향상 자원 근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추진되었다. 전집평가 시행 초기에 기초학력 미달 비율의 시․도별 서열이 발표되어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반대론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일제고사를 서열화 도구로만 여기는 진보교육단체의 평가 반대 요구와 지식교육을 암기교육으로만 여기는 창조경제 정부의 반지식주의 교육관에 따라 평가방법에 변화가 일어났다. 2013년엔 초등학생 6학년 대상의 국가수준 평가가 완전 폐지되었고, 2017년에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대상의 전국 평가가 전집에서 표집 방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폐지 또는 축소하는 과정은 교육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 등과 같은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글을 쓰면서 2010년 12월 1일 발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와 관련하여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평가담당자 간 업무메일로 받았던 교육부장관의 ‘긍정의 편지’(2010.12.03.) 내용을 찾아보았다. 평가로 확보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감소한 것을 확인하고, 그 성과를 내기 위해 수고한 선생님들께 감사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구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최근 교육 관련 구호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이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지난해 있었던 대통령 선거의 교육관련 공약이었고, 올해 시행된 교육감 선거에서 모든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내걸었던 대표 구호이었기 때문이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분석해 보니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2년 만에 절반으로 감소한 획기적인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우리 공교육의 성과이며, 특히 학생지도에 헌신하신 일선 선생님들의 성과입니다. 선생님들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이 학부모들께 알려진다는 사실 자체가 학교로 하여금 분발하게 만든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보공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과제도 생겼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작년에 비해 0.1% 밖에 줄지 않았습니다. 이는 새로운 정책수단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줄이는 것은 공정사회의 기본입니다.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정치적으로 특정 정부의 교육 성과에 대한 공과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개별 학생들의 교육, 특히 학습부진 학생들에 대한 교육책무성에서 시작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진보교육계의 요구와 정치권의 결정으로 폐지되거나 축소된 것이 무척 아쉽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대상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폐지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교육학자들도 많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김경희 등, 2013)는 초등단계의 학습결손은 중․고등학교에서의 학습부진으로 이어지는 누적성이 있으므로 초등학교에서의 기초학력 조기진단, 보정교육 투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점검 체제 부재로 인하여 학습결손의 누적이 심화되고 보정교육 지원이 약회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순천향대 남현우 교수의 연구(2015)에서도 초등학교 평가 폐지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기초학력 측정 기회를 놓쳐 국가수준에서 학력향상 지원 정책 수립이 곤란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남현우 교수의 연구보고서 마지막 페이지(55쪽)에 언급된 내용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전국 단위의 평가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업 성취 수준이 낮은 학교 또는 그런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교수-학습에 필요한 재정 및 장학 지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려는 당초의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정파적인 이익이나 특정인의 견해에 따라 평가 제도를 수시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기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함으로써 국가 신뢰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교육부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학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실태 파악을 하겠다고 답변했지만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현재의 정치적, 교육행정 구조에서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 주관으로 2015년 3월 5일 초등학생 진단평가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중단했던 사례가 그것이다. 진보 교원단체의 일제고사 부활 논쟁 및 격렬한 반대, 진보교육감들의 실시 불허,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의 행복교육에 대한 역주행 주장 등으로 평가를 실시하지 못했던 사례다.
국가수준과 시․도교육청 수준에서 학업성취도 평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학교수준, 그리고 교사수준에서 학력평가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학교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의 수업을 직접 담당하는 교사가 잘 가르쳐야 하고, 가까이에서는 동학년 교사들과 학교장의 협력 및 지원 활동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교육청과 교육부 수준에서 필요한 지원활동을 잘 수행해야 한다. 수업담당 교사 혼자서 학력을 책임질 수도 없고,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현재는 교사들에게,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모든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체제라고 여겨진다. 앞에서 논의한 일제고사 폐지가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시기부터 논의되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육과정 문서에 포함된 역량중심 교육의 영향으로 지식을 측정하는 지필평가는 폐지 또는 약화되었다. 2018년 현재 전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지필평가로 치러지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폐지되었고, 수행평가 또는 과정중심평가라는 교사별 수시평가 체제로 시행되고 있다.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평가가 일치되어야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교육관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결과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동학년 교사들, 학교장, 그리고 교육청과 교육부에서도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개별 담임교사 또는 수업 담당 교사만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을 알 수 있고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개별 교사에게 평가 권한과 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이 주어질 때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 교사에게 무한정의 도덕적 헌신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투철한 도덕성과 희생정신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모든 교사들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인간의 도덕성에 기대는 시스템은 효과적일 수 없다는 사실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교육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 개별 교사가 지도하기 어려울 때 협력하여 분석하고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 개별 교사가 또는 개별 학교가 교육활동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할 때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학교교육의 두 축은 지식교육과 인성함양이다. 지식만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역량들을 배양시켜 주어야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제시된 창의적 사고 역량, 공동체 역량 등 6가지 핵심역량들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식교육, 학력향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학교교육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앞에서 지식 영역에 대한 평가가 폐지되거나 약화된 것을 문제 삼는 이유는 그것이 학력저하를 가져왔다는 판단에서 그렇다.
우리 학생들의 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급격하게 추락했다. 우리나라는 핀란드 다음으로 일본과 경쟁하면서 2위 또는 3위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OECD 회원국 내의 순위로서 우리와 순위를 다투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 중국 상하이 등 비회원국들이 제외된 결과이다. 비회원국을 포함할 때도 우리의 순위는 2000년에 읽기 7위, 수학, 3위, 과학 1위로 상위 수준을 보인 후로 꾸준히 3위 또는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2년에 읽기 5위, 수학 5위, 과학 7위로 하락한 후 2015년 결과에서는 읽기 7위, 수학 7위, 과학 12위로 하락했다. 수학의 경우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대만, 일본, 중국에 이은 7위이며, 과학에선 베트남보다도 낮은 순위이다.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은 상위권 학생들의 하락 정도는 소폭이었으나 하위권 학생들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12월 6일 발표된 우리 교육부의 2015 PISA 결과 보도자료를 보면 최하위 1수준 학생들의 비율이 3년전 시행된 2012 PISA 결과와 비교해 국어는 7.6%에서 13.6%로, 수학은 9.1%에서 15.4%로, 과학은 6.7%에서 14.4%로 증가했다.
국제비교뿐만 아니라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학생 3%를 표집하여 실시한 2017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서도 학력 저하 현상이 확인되었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의 경우 고등학생은 국어가 3.2%에서 4.7%로, 수학이 5,3%에서 9.2%로 늘었다. 중학생은 국어가 2.0%에서 2.5%, 수학이 4.9%에서 6.9%로 증가했다. 그리고, 현장 교사들은 최근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지난 6월 19일 중․고등학생 3%를 표집하여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했다. 매년 11월 30일 예정일에 평가결과 발표가 있었는데 올해는 예외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지연 이유가 궁금하지만 알 수는 없다. 기초학력 부진학생들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일제평가를 실시하지 않고, 학력 부진학생 통계도 갖고 있지 않을 정도로 무책임한 상황에서도 헌신적인 개별 교사들의 노력으로 학력이 향상되었다는 분석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만약 학력이 하락하고 다수의 학생들이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로 결과가 나오면 어떨까. 그럴 경우라도 일제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학력 하락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증가했다는 핑계를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교육행정 측면에서 책임을 드러내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중․고등학교에 대해서도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하지 않을까 하고 괜한 걱정도 해본다. 평가가 없으면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김경희 등(2013), 초등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와 기초학력 보장 정책의 개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슈페이퍼 ORM 2013-57-11.
김경희(2017), 학업성취도 평가의 교육과정 질 관리 역할, 교육과정평가연구 제20권 제4호.
남현우 등(2015),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체제 재구조화 방안 연구. 2014년 교육부 정책연구과제 2014-20.
* 참고
본 글은 민간 교육연구기관인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격주로 발간되는 저널의 <공교육 희망-칼럼>으로 2018년 12월 6일 실린 칼럼입니다.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100843&page=0&pag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