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중에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은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기초․기본학력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기초·기본학력 확보를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에 대하여 일관되게 질의했다. (관련 뉴스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buhFcCu7-Y, https://www.youtube.com/watch?v=tmHwie9NJtA) 참고). 국회 국정감사 회의록의 질의와 답변 내용을 확인해 본다면 누구나 ‘학교 지식교육이 너무 걱정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초학력 부진학생 실태 요구에 대해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자료 부존재’, ‘자료 미취합’ 등의 사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거나 부실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기초학력 진단시스템은 시․도교육감이 자율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학력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고 답변했다. 서울교육청은 ‘자료 부존재’의 이유에 대해 ‘학교 서열화 방지를 위해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강원교육청은 한 줄 세우기 정책은 대한민국의 교육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폐기되어야 하며, 서열화 정책으로 꼴찌 한다는 비판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학생들의 낮은 학력이 교육감의 학력에 대한 관심 부족이라는 지적에 대해 ‘학업성취도 수치는 아주 나쁘지만, 수도권 주요 대학이나 취업률은 상당히 상승하고 있다.’고 의외의 답변을 하기도 했다.
교육부장관은 국정감사 답변에서 ‘기초학력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당연한 책무이기에 교육감들과 협의하여 전국 시․도별 초․중․고 기초학력 부진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러한 실태를 바탕으로 기초학력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학력 실태를 전국단위로나 시․도교육청별로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구체적인 실태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수립된 기초학력 지원체제라면 그 계획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 그리고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일부 교육감들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력을 파악할 수 있는 전국단위, 또는 시․도단위 일제평가가 새로 시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전국의 초․중․고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되었다. 학교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고 국가수준의 교육정책 수립 및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학업성취 수준 파악 및 추이 분석을 통한 기초학력 향상 자원 근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추진되었다. 전집평가 시행 초기에 기초학력 미달 비율의 시․도별 서열이 발표되어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반대론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일제고사를 서열화 도구로만 여기는 진보교육단체의 평가 반대 요구와 지식교육을 암기교육으로만 여기는 창조경제 정부의 반지식주의 교육관에 따라 평가방법에 변화가 일어났다. 2013년엔 초등학생 6학년 대상의 국가수준 평가가 완전 폐지되었고, 2017년에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대상의 전국 평가가 전집에서 표집 방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폐지 또는 축소하는 과정은 교육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 등과 같은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특정 정부의 교육 성과에 대한 공과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개별 학생들의 교육, 특히 학습부진 학생들에 대한 교육책무성에서 시작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진보교육계의 요구와 정치권의 결정으로 폐지되거나 축소된 것이 무척 아쉽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대상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폐지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교육학자들도 많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김경희 등, 2013)는 초등단계의 학습결손은 중․고등학교에서의 학습부진으로 이어지는 누적성이 있으므로 초등학교에서의 기초학력 조기진단, 보정교육 투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점검 체제 부재로 인하여 학습결손의 누적이 심화되고 보정교육 지원이 약회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순천향대 남현우 교수의 연구(2015)에서도 초등학교 평가 폐지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기초학력 측정 기회를 놓쳐 국가수준에서 학력향상 지원 정책 수립이 곤란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남현우 교수의 연구보고서 마지막 페이지(55쪽)에 언급된 내용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전국 단위의 평가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업 성취 수준이 낮은 학교 또는 그런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교수-학습에 필요한 재정 및 장학 지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려는 당초의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정파적인 이익이나 특정인의 견해에 따라 평가 제도를 수시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기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함으로써 국가 신뢰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교육부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학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실태 파악을 하겠다고 답변했지만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현재의 정치적, 교육행정 구조에서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 주관으로 2015년 3월 5일 초등학생 진단평가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중단했던 사례가 그것이다. 진보교원단체의 일제고사 부활 논쟁 및 격렬한 반대, 진보교육감들의 실시 불허,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의 행복교육에 대한 역주행 주장 등으로 평가를 실시하지 못했던 사례다.
2018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는 결과 발표 날짜를 몇 번이나 연기하면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 대폭 증가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성적 하락의 심각성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 등에서 대서특필했고,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국어, 수학, 영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으로 기초적인 의사소통능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학생이다. 한국 교육에서 ‘기초학력의 정의’, ‘측정기준’, ‘측정과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작년 11월 29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9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도 암울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나 기초학력 미달과 기초학력 수준을 합친 보통학력 미만 학생들이 많아졌는데 학력 저하의 심각성은 전년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다. 2017년, 측정방식을 표집으로 전환한 이후에 2018년에는 국어, 수학, 영어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100점 만점에 20점 미만자)이 크게 증가했고, 학력 저하가 두드러졌는데 2019년에도 그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어 교과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유의미하게 줄었지만 국어와 수학에서는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학교 수학은 전수조사였던 2008년을 제외하고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고등학교에서도 보통학력 미만은 여전히 증가했다.
교육부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과 보통학력 이상으로 나눠 분석했지만 기초학력 미달의 윗 구간인 ‘기초학력(20∼50점)’에 속한 학생들도 적절한 성취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 즉 기초학력 수준의 학생들도 각 교과의 핵심개념을 이해하고, 그 지식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학교교육이 제도교육으로 그 취지를 살리고 학생 스스로 삶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거나 타자와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최소한 국어, 수학, 영어 각 교과에서 100점 중에 50점을 초과하는 ‘보통학력 이상’ 수준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 2015∼2019년 고등학교급 결과 분석에 특수목적고 제외
<표 2>에서 보듯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과의 핵심개념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기초학력 수준, 부분적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여전히 증가하는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는 대도시나 읍면을 가리지 않고 2018년에 비해 국어는 4.9%와 3.9%, 수학은 5.2%와 3.3%, 영어는 대도시에서 3.6%씩 크게 증가했다.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에서 국어, 수학, 영어의 학력저하는 증가 추세이며, 중학교에서도 주목할만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 학생들의 학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실이고 학교현장에서는 기본학력 저하, 특히 어휘력 부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반대가 심하다. 엊그제 보도된 뉴스의 제목 ‘다시 불붙는 기초학력 논란 : 전교조 ’법안 폐기해야‘ vs 교총 ’기초학력보장법 필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부 단체에서는 학력 하락 통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http://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479). 이렇듯 교육행정기관이나 교사단체,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까지도 학력 저하의 심각성을 느끼거나 부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상식적인 인식을 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부러워한다는 보도 등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미국이나 영국 등 사회경제적 선진국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학력저하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학력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만약 틀리다면 진단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원인 파악을 틀리게 되고, 원인을 잘못 파악하면 처방도 잘못될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의 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급격하게 추락했다. 우리나라는 핀란드 다음으로 일본과 경쟁하면서 2위 또는 3위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37개 OECD 회원국 내의 순위로서 우리와 순위를 다투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 중국 상하이 등 비회원국들이 제외된 결과이다. 비회원국을 포함한 전체 79개 국가 중에서도 우리의 순위는 2000년에 읽기 7위, 수학, 3위, 과학 1위로 상위 수준을 보인 후로 꾸준히 3위 또는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2년에 읽기 5위, 수학 5위, 과학 7위로 하락한 후 2015년 결과에서는 읽기 7위, 수학 7위, 과학 11위로 대폭 하락했다. 2018년 PISA 결과(교육부 보도자료, 2019.12.04.)는 대폭 하락했던 직전 결과와 유사한 수준으로 읽기 9위, 수학 7위, 과학 7위이다. 순위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표 4>에 제시된 읽기 결과에서 나타난 평균성적이다. 우리는 선두그룹에서 탈락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514점)도 우리가 그렇게도 무시했던 미국(505점)이나 영국(504점)과 비슷한 학력수준이 되고 말았다.
더욱더 문제가 심각한 것은 하위권 학생들이 대폭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은 전체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성적이 하락하는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5 PISA 결과를 보면 최하위 1수준 학생들의 비율이 2012 PISA 결과와 비교해 국어는 7.6%에서 13.6%로, 수학은 9.1%에서 15.4%로, 과학은 6.7%에서 14.4%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8년 결과에서 읽기는 15.1%로 직전에 비해 1.5% 증가, 수학은 15.0%로 0.4% 감소, 과학은 14.2%로 0.2% 감소하였다. 아래의 그래프는 OECD에서 제시한 자료들(PISA 2018 통찰과 해석 Insights and Interpretations, Korea-Contry Note-PISA 2018 Results)이며, 우리나라의 영역별 평균 성적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단순 하락 추세(steadily negative)가 아니라 하락 정도가 심화되고 있는 추세(incleasingly negative)로 심각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독해, 수학, 과학 세 영역에서 학락 정도가 심화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https://www.oecd.org/pisa/PISA%202018%20Insights%20and%20Interpretations%20FINAL%20PDF.pd f
http://www.oecd.org/pisa/publications/PISA2018_CN_KOR.pdf
이에 대해 교육부 보도자료는 ‘대한민국, PISA 2018 모든 영역에서 상위 성취수준 유지’, ‘PISA 2015 대비 영역별 하위 성취수준 비율은 수학, 과학에서 감소’ 등으로 긍정적인 평가만을 제시하고 있다. 보도자료의 시사점 정리에서도 우리나라 성취 수준은 참여국 중 최상위권임을 재강조하면서 다른 최상위 국가들의 교육정책 변화 및 국제적인 교육 동향을 분석하여 우리나라의 교육정책 추진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PISA 결과를 토대로 학생 중심의 교수·학습방법 및 평가의 개선, 학생들의 행복한 학교생활 지원 방안, 역량중심의 창의·융합형 미래인재 육성 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PISA 시험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외부 기관에 의한 평가로서 국제적인 학업성취도 서열을 제시하고 있지만 참여국들이 국제비교를 통해 자국의 교육정책을 점검하고, 외국의 우수한 사례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서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10여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성취도 하락 추이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성취도 하락에 따라 기존의 교육정책들을 점검하여 개선하기보다는 현재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들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PISA 시험은 교육 프로그램의 추진 과정에서 진단과 확인을 위한 형성평가가 아니라 일정 기간 프로그램을 운영한 후 효과에 따라 해당 프로그램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수정 또는 폐기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총괄평가의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평가 결과에 만족한다면 현재의 교육정책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며, 불만족한다면 현재의 정책을 수정 또는 폐기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동일한 평가 결과에 대해서 지향하는 교육 관점에 따라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최근의 PISA 순위와 평균 성적의 하락 추이를 ‘학력저하 재난’으로 표현할 정도로 위기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학력제고를 위해 일부 시·도가 반발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전체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폐지 또는 표집으로 실시되고 있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복원하여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가 71개국 중 65위의 최하위 수준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위기현상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일부 언론이나 교직단체는 학업성취도는 최상위권이며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는 가장 많이 상승했다고 교육부와 동일한 분석을 하고 있다. 심지어 특정 교원단체는 이러한 긍정적인 성과가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이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교육정책을 만들고 실행을 주관하며 평가를 통해 환류하는 곳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다. 자체평가로는 객관적인 분석이나 신뢰받을 수 있는 대책 수립이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인 전문 평가기관의 객관적인 자료를 활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부, 그리고 진보교육이 주도하는 시·도교육청들은 최근 10여 년간의 PISA 성적 결과 추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있으며, 학업성취도 하락을 인정하거나 이에 책임지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평가 결과 환류를 통해 교육정책을 개선하고 실행방법을 수정하기보다는 현재의 정책을 성공적인 것으로 여겨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 교육이 세계 7위 또는 9위로서 실제적으로 최상위 그룹에서 제외된 현재는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 1위 중국(베이징, 상하이, 장쑤성, 저장성)이나 2위 싱가포르의 우수사례에 관심이 없다. 중국과 싱가포르가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해도 그곳의 치열한 고교입시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 2위 또는 3위로 실제적인 최상위 수준이었을 때는 1위 국가인 핀란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었다. 현재 혁신적인 시·도교육청 정책들의 대부분이 핀란드에서 도입되거나 핀란드 사례를 통해 정당화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핀란드에서 배운 것은 핀란드의 성적 향상을 가져왔던 정책이 아니라 성적 하락을 가져왔던 정책들이었다. 앞의 첫 번째 그림의 두 번째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핀란드는 우리가 한창 배우러 갔던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성적이 하락하고 있다. 핀란드가 교육 성공 국가로 인정받은 계기가 된 2000년과 2003년 PISA 결과는 이를 만든 그 이전의 전통적인 교사 주도 교육 덕택이었으며, 마침 그때 역량 중심의 교육개혁이 이뤄져 우리가 열심히 배웠다. 참고로 핀란드의 2018년 PISA 결과에서 읽기 7위, 수학 16위, 과학 6위까지 추락한 것은 교사주도의 수업 등 전통적인 교육문화에서 학생 주도의 수업 방식으로 바뀐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어떻든 교육은 쉽지 않다. 교육이 아무리 어려워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여 계획과 실행단계에 환류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식과 인성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곳이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좋은 습관을 기르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어려운 과제도 해결해야 하고 부담이 큰 교칙도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은 공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학교 생활에 불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여 학교가 학생 개개인들이 하고 싶은 활동에만 참여시킬 수는 없다. 학생들은 공부하기 위해, 더 잘 배우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인성과 자질을 키우고 싶어서 학교에 오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상담을 통해 그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공부 스트레스를 받는다기보다는 공부는 하고 싶지만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는 수업내용 때문에 공부 재미를 느낄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것을 재미있게 배우도록 도울 수 있을까?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은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생 간의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이뤄진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과와 관련된 내용을 전달하며 반응과 행동을 이끌어내서 학습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며, 학생들은 언어적 반응을 통해 개념을 습득하고 인지를 발달시키게 된다. 따라서 교사, 교과서, 학생 간의 의사소통과 언어 이해 정도가 교실수업의 성패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이 교과 관련 주요 개념이 아닌 기본적인 어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수업을 하기 어렵고 학업성취도도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즉, 교사들은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쉬운 어휘들의 경우 학생들이 당연히 알 것으로 전제하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이 그 뜻을 물어 당황하기도 하고 심지어 수업이 이미 지나가고 난 다음에야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실 상황에서 볼 때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이렇듯 기초 어휘력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교육과정이나 수업 방법에 관한 정책들은 지식보다는 역량을 가르쳐야 하고, 교사가 지도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프로젝트 형식의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현재의 학생들이 직업생활을 하게 될 미래사회를 대비하여 지식과 정보의 단순 축적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다.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지만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점차 증가하고, 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 수업용어 이해 부족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그 원인과 대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가. 학업성취 관련 요인
수업의 3요소는 주체인 교사, 객체인 학생, 매개체인 교과서로 구분된다. 오늘날 주체는 자기주도학습이 강조되면서 학생으로 바뀌었고, 매개체는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교과서를 탈피하고 있다. 또한 교사는 교수내용의 전달보다 학습을 설계하고 학생을 멘토링 하는 역할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교육현장에서 교사 주도의 수업과 학생의 참여에 의한 학습 그리고 교육과정 체계에 따라 개발된 교과서의 내용 전달이 학교교육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업의 3요소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학교교육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통해 교과서 내용을 잘 이해한다면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교육의 성취수준에 모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과서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비판이 많고, 수업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또한 교사들은 교육과정에 따라 소정의 수업시수로 소정의 교과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뒤쳐지는 학생을 위해 충분히 보충해 줄 시간이 없다.
학생들이 기본적인 어휘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하여 국어지식의 기본을 습득하는 단계인 초등학교에서 국어 기초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하며, 중․고교의 일반 교과 담당교사들은 국어교사들이 어휘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기본적인 학습용어 이해 부진 때문에 초등학교 교사와 중등학교 국어교사뿐만 아니라 가정교육으로 기초 어휘력을 배양시키지 못한 학부모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교육의 객체인 학생 측면에서의 선수학습 부진이다. 본래부터 우수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여기는 교사들의 견해는 이러한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학생 측면보다는 수업의 주체인 교사와 교육전문가들이 만든 매개체인 교과서 측면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더 교육적이다. 학교교육의 내부적인 요인들인 교과서 자체 또는 교사의 학습지도 방법에 있어서도 문제점이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즉, 교과서의 내용이나 사용된 용어들이 학생의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과 관련이 적을 경우 또는 교사-학생 간에 사용되는 용어에 있어서 수준의 차이가 클 경우, 대부분 언어를 통해 매개되는 지식교육의 효과는 기대보다 낮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나. 학습용어 이해 수준 분석
학생들의 어휘력 저하 문제가 가끔 보도되면서 우리의 국어교육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 일간신문에 보도되었던 ‘말이 안 되는 우리 국어실력’(조선일보, 2008.7.3) 기사는 이러한 걱정스러운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문외한(門外漢 : 어떤 일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을 ‘무뇌한’이라고 쓰기에 ‘대체 너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썼니?’라고 했더니, ‘무뇌아처럼 뇌가 없는 사람이란 거 아니에요’라고 되묻더란 이야기다.
교과관련 어휘의 이해 수준에 관한 연구에서도 학생들의 낮은 어휘력 문제가 학력 저하의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정우 외(2007)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의 사회교과서 일반사회 영역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 20개를 추출하여 학생들의 어휘 이해도를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어떤 단어를 자주 들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정우 외(2007)는 교과서를 펼쳐 든 학생이 등장하는 어휘의 상당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내용을 학습하기도 전에 학습의욕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을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였다.
정진우 외(2007)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과학(지구과학) 용어들이 대부분 한자나 영어로 기술되어 있어 학생들이 학습용어의 개념은 물론 용어 자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과학 학습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들은 ‘수소는 상온에서 기체이다’라는 문장을 제시했을 때 [상온]을 [평상시 온도]로 해석한 학생은 전체 응답자의 34.8%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높은 온도]라고 답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과학용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 한자의 음과 훈을 알려 주는 것도 한 가지 해결 방법으로 제시했다.
3년 전 주간조선(2016.04.25.)은 커버스토리로 ‘빈어증(貧語症)’을 다뤘다. 부제는 <어휘력 부족이 사고력 부족으로, 고교 교실서도 “관행이 무슨 뜻이에요?”>로 되어 있다.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해당 글의 전반부 일부를 그대로 싣는다.
서울의 한 자사고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는 40대 여교사 전 모 씨는 수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다. 영어가 아니라 국어가 문제다. ‘offset’의 뜻을 ‘상쇄하다’로 해석해줬더니, 학생 대부분이 ‘상쇄’의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전 씨는 ‘상쇄하다’의 뜻을 한참 동안 설명해야 했다. 같은 학교 국어교사도 비슷한 상황. 영어교사가 수업 진행의 애로점을 털어놓자 국어교사는 “‘주옥같은 글’에서 ‘주옥’의 뜻을 대부분 몰라서 한참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전 씨는 “사자성어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어휘를 몰라 난감할 때가 많다”며 “영어시간에 국어 단어의 뜻을 설명하느라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라고 했다.
일반고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서울 성북구의 A고등학교 영어교사의 말이다. “고3 영어 지문에는 깊이 있는 내용이 꽤 나온다. 생각하면서 영어 읽기를 해야 하는데, 생각하며 읽기는커녕 단어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 지문을 해석해줬는데도 이해를 못 하는 거다. ‘기인한다’ ‘본질적’ ‘관행’ ‘임의의’를 모르는 학생도 상당수다. 아이들이 거침없이 ‘그게 뭔 소리예요?’라고 물으면 숨이 턱 막힌다. 이런 기본적인 어휘를 모르니 수업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기 힘들다.”
서울 마포구 B고등학교의 과학교사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과학책에는 한자어가 많기 때문에 단어 설명에 애를 먹는다. 물질의 상태변화 하나만 해도 ‘승화’, ‘기화’, ‘액화’, ‘용해’, ‘용융’, ‘융해’등 한자어를 기본으로 하는 단어 투성이다.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하느라 학생들이 책을 잘 읽지 않은 데다 영어와 수학 공부에만 매달려 국어 공부를 소홀히 하다 보니 전 과목에 걸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학생들의 어휘력 부족은 당연히 학력부진, 특히 기초․기본 학력 부진과 직결된다. 더욱이 초등학교 때부터 어휘 수준을 점검하여 지속적으로 보완해 주지 않으면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보완해 주기 어렵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6학년 시기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2013년 완전 폐지되었고, 학교에서도 지필평가는 실시하지 않는다. 학력실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지필평가 없이 교사별 수시 수행평가로만 실시되기 때문에 학부모, 학교장, 그리고 시도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초등학생들의 학력실태 분석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학생들의 어휘력 부진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교바사) 산하의 21세기교육연구소는 사회 계층 간 교육불평등 과제를 교육적인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초등학생의 교과 어휘력 격차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결과 국어 교육에서 명시적인 어휘교육이 매우 미흡한 수준이며, 국책연구기관들의 어휘력 연구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현장 교사들은 학생들의 어휘력 부족에 따른 문제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결과를 몇 가지 들면, 수업을 대부분(80~100%) 이해하는 학생 비율이 20% 이하 정도라고 답한 교사의 비율이 64.6%나 되며, 학생들의 수업 이해와 어휘력의 관련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응답했다. 또한 학생의 발달 수준에 비추어 교과서 어휘 수준이 어려운 편이라는 응답 비율도 매우 높게 나타났다(이종태 외: 2018)
가. 교육과정 측면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
모든 교과의 교실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주로 언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국어과는 언어사용 능력을 신장에 기본 목표를 두고, 국어에 관한 기본적 지식을 가지게 하며, 문학의 이해와 감상능력을 길러 주는 교과이다. 이렇게 볼 때 국어 수업을 통해 국어사용 능력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면 수학이나 사회, 과학, 심지어 외국어 수업도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언어사용 능력은 크게 나누어 음성언어(말) 사용능력과 문자언어(글) 사용능력으로 구분된다. 음성언어 사용능력은 듣기와 말하기 능력이며, 문자언어 사용능력은 읽기와 쓰기 능력이다. 읽기 능력은 달리 표현하면 모든 과목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독서능력이다. 읽기 능력에서 독서라는 책을 읽는 행위보다 글의 이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단계가 있지만,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어휘에 대한 이해이다.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력을 지니고 있는 학생은 그만큼 읽기 학습에서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어휘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어휘 학습 방법을 지도하는 것은 학생들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어휘 학습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폭넓은 독서와 독서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사전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단어의 문맥적 의미가 사전적 의미와 차이가 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여기서 국어사전 활용은 어휘학습, 읽기 능력, 언어능력, 국어 능력, 모든 교과학습 능력으로 확대 연계될 수 있다. 사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지적 측면의 교육이 어렵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교육과정 상 국어사전 찾는 법을 익히고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의 어휘력을 향상시키는 교육활동은 주로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 수준에서 배우게 된다. 2009 개정 교육과정까지는 4학년 6월에 10차시에 걸쳐 국어사전 활용에 대해 학습하도록 했다. 최근 학생들의 어휘력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됨에 따라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3학년 때 10차시와 4학년 때 10차시로 기존에 비해 두배로 국어사전 활용교육을 확대했다(김승호, 2018b).
사전 찾기는 초․중․고 12년을 통틀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유일하게 나온다. 사전에는 낱말의 어원, 발음, 그 단어와 관련된 숙어, 속담, 반의어, 유의어 등 무수한 지식이 담겨 있어 스스로 어휘 학습을 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독서활동에서 기본적인 어휘의 의미나 개념의 이해보다는 맥락을 통한 이해, 사고력과 창의력 배양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사전을 활용한 어휘학습은 암기 위주 교육의 전형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국어사전을 개별적으로 소유한 학생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어휘에 관한 지도는 초등학교에서 중점적으로 지도되지만 중학교 이후에는 이에 관한 지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없다. 초등학교 문법 영역에서 낱말(단어)에 대한 학습을 기반으로 단어의 짜임, 품사의 개념과 특성, 어휘의 유형과 의미 관계에 대하여 학습하도록 하고 있다. 중학교 문법 영역에서는 초등학교와 달리 언어의 본질, 음운, 담화, 국어의 역사 등에 대해서 배워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등학교에 비해 어휘 교육에 대한 직접적인 학습 내용은 적을 수밖에 없다. 중학교 단계에서는 문법 영역뿐만 아니라 듣기․말하기, 읽기, 쓰기, 문학 영역에서도 어휘 교육에 대한 직접적인 관련 내용이 없다(전은주, 2012).
교육을 바로 세우는 사람들의 연구(이종태 외, 2018)도 결론 부분에서 한글 어휘 연구와 어휘 교육 강화를 위한 국가 수준의 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국어교육 차원에서 어휘 교육을 하나의 고유한 영역으로 설정할 정도로 강화해야 하며, 수업 중에 어휘지도를 별도로 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연구 결과에서 학생 간, 학교 간, 지역 간 어휘력 격차가 드러났으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그로 인한 교육 격차의 한 반영인 동시에 장차 그러한 불평등을 심화시킬 원초적 요인이기에 어휘력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교육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제안했다.(이종태 외, 2018).
나. 교사 측면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
교사들은 교과서나 자신이 수업 중에 사용하는 일반적인 학습용어들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해하리라는 전제 하에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학습용어의 상당한 부분을 학생들의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왜냐하면 교사들은 다년간의 사회경험과 전공분야의 공부를 통해서 의식수준이나 언어수준이 학생들에 비하여 아주 높은 수준이지만 이와 같은 사실을 수업 중에 무의식적으로 망각하기 쉽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중상 정도의 학교성적을 가졌고, 따라서 학습용어의 이해에 곤란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 교사들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배우던 기억을 되살려 상식적인 어휘를 모르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쉽다.
더욱이 교과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학습용어들 가운데는 그 형성과정부터 학생들의 실제 생활과 관련이 적은 전문용어이거나 외래어, 한자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들이 많아 교사들은 학습용어의 사용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교과 관련 학업성취도 향상과 어휘력에 관한 연구 결과들은 학생들이 교과의 주요 개념이나 원리를 배우지만 교과서의 학습내용을 구성하는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하면 교과학습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중등학교 교과 담당교사들은 모든 학생들이 일반적인 어휘력과 독해 수준을 확보하면서 자신이 담당하는 전공교과를 배운다고 가정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그렇다고 어휘력 배양이나 독해능력을 국어교사들에게만 의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휘력이 약한 학생들을 보면서 많은 교사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개탄해 마지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중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초등학교에서는 뭐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 상태로 어떻게 중학교 진학을 시킬 수 있어” 하면서 심각성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비난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교육부의 학력향상 시책 중 하나인 ‘모든 교사의 독서교사화(Every teacher is a reading teacher)'는 국어과 이외의 모든 교과담당 교사들도 자신의 전공 영역뿐만 아니라 일반 어휘 지도, 독해지도 등에 대해서도 관심과 지도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추진된 것이다(Lattimer, 2010). ’모든 교사의 독서교사화’ 시책이 대두된 배경이 우리의 현실과 유사하다는 점을 인식하여 중․고교 단계에서 모든 교과담당 교사들이 비난과 책임회피가 아닌 기본적인 일반 어휘나 교과 관련 개념 지도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학력 부진에 대한 책임의 대부분은 학생 자신과 부모가 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은 선수학습 미비, 학습의욕 저하, 가정의 관심과 교육열 미흡으로 직결된다. 여기서 가정의 학습지원 능력 부족의 문제를 학생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교사가 이를 인정하고 특별하게 보충해 주는 방법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 특히 농어촌 학생들이나 도시 저소득층 학생들의 경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거나, 부모가 충분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하여 학생이 비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특별한 지원이 더욱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일부 운영되고 있는 협력교사제를 확대하여 기본 어휘 지도에 중점을 두는 방안도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다. 한글과 국어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할 한자교육
세종대왕께서 똑똑한 사람은 한나절에, 좀 아둔한 사람도 10일이면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글자가 한글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 과학적인 글자가 한글이다. 한글 덕분에 대한민국은 문맹국에서 탈출해 교육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빠르게 그리고 수준 높게 발전했다고 확신한다. 한글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한글을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글 자체를 의사소통의 도구인 국어라고 할 수 없다. 한글은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영어의 알파벳(Alphabet)과 같다. 자음과 모음은 합쳐져서 하나의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이 모아져 단어로, 단어들이 모아져 문장과 문단으로 그리고 하나의 언어로 확장된다. 여기서 한글은 첫 번째 단계인 자음과 모음이 만든 하나의 글자를 뜻하며, 국어는 단어, 문장 그리고 문단을 포함한 완성된 글 전체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한글날(Korean Alphabet Day)과 같은 문자 발명 기념일은 다른 나라에 없는데, 알파벳 데이는 세계 도처에 있다. 미국의 경우 유치원 과정이나 초등학교 1학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A, B, C 등 알파벳을 완전히 깨우쳤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 학교 행사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의 교육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글을 완전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렇듯 한글을 안다는 것과 한국어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미국 외교관 양성 과정에서 한국어는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분류되고 있다(https://www.state.gov/m/fsi/sls/c78549.htm). 미국 국무부 소속 외교연구원(FSI : Foreign Service Institute)은 70년 동안 65개 언어 지도 연구를 통해 한국어와 함께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를 ‘가장 어려운 언어’(Super Hard Language)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한글은 가장 쉬운 글자지만, 한국어는 가장 어려운 언어라는 뜻이다. 소리글자인 한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한글로 만들어져 각각의 개념을 가진 한국어 단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어의 뜻을 알고, 단어가 모여서 만들어진 문장이나 글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읽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닌 새로운 개념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말의 70%, 수업용어의 90% 정도가 한자어에서 나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국어사전 활용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던 시기에 한자 활용이 더 중요한 과제로 검토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추진과정에서 한자교육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쉽다. 2014년 9월 새 교육과정 발표 때 교육부는 ‘한자 교육이 부족해 의미 소통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2018학년도에는 초등 3~4학년, 2019학년도에는 초등 5~6학년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2년 이상의 연구와 공청회 과정을 거쳐 2016년 12월엔 한자표기 방식까지 결정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러나 2017년 12월 교과서 한자 표기 정책은 조용히 폐지되고 말았다. 그 결과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애써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어휘를 설명하고 있다.
초등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248쪽에 각주 처리된 ‘암각화: 바위그림. 동굴의 벽면 따위에 칠하기, 새기기, 쪼기와 같은 방법으로 그린 그림’을 사례로 들 수 있다. 만약 교육부 보도자료에 제시했던 표기 방식이었다면 이것을 ‘암각화: 바위[巖, 바위 암]에 새긴 [刻, 새길 각] 그림[畵, 그림 화]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한자를 쓰는 것은 너무 어렵지만 이와 별개로 여기에서 ’ 암‘은 ’ 바위‘를 뜻한다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자의 의미를 확인하면서 배운 학생들은 암각화를 바위그림이라고 단순하게 암기할 필요 없이 속뜻을 쉽게 이해하면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암석, 암벽등산, 조각, 심각성 등 과거에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어휘들이 한자와 함께 연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교육을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실마리는 실머리에서 나온 말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을 의미한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교육과 인성 배양이다. 지식과 인성은 학교교육의 두 축이다. 어느 하나를 중요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한국교육의 문제는 지식교육을 경시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지식교육이 중요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경시할 뿐이다. 지식교육 경시는 우리 교육수준, 한국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나왔다. 물론 과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평가 결과는 우리의 학력수준은 동북아시아에서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도 이제 한국교육을 우수하다고 평가해 주지 않는다.
문제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다. 병도 진단을 제대로 해야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치료할 수 있다. 진단을 통해 문제가 무엇인지 규명하면 치료법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문제 공유 없이 비전(vision) 공유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교육의 가장 크고 본질적인 문제를 지식교육 측면에서 기초·기본학력 저하로 분석했다. 그리고 이 위기를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기초·기본학력 저하의 원인을 문해력, 즉 국어 어휘력에서 찾았다. 기본적인 어휘를 이해하지 못하여 책을 읽어도 뜻을 모르고, 선생님의 교과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업 중에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교실의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다. 대책의 하나로 국어사전 활용을 제안했다.
창의성이나 미래 역량 등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어휘 지도, 새로 나온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는 것과 같은 전통적인 교육방법을 논의한 것이 어색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교육 증가, 지역 간·계층 간 학력격차 심화 등 한국 교육의 위기 현상이 어휘력 저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지나친 비약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식 없이는 창의성도 없고,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문해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안전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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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자료는 배준영 국회의원에서 주최한 <학력 저하의 진단과 처방> 국회 토론회(2020.7.13.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제발표했던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