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기나긴 학업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까? 중3이나 고3, 아니면 대학 4학년일까? 관련 학자들은 초등학교 3학년 시기라고 답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읽기 또는 독해능력 수준이 이후의 학교 공부와 사회생활의 성공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기의 읽기 능력이 중요하다는 근거는 다양하다. 초등학교 1-2학년 시기는 글자와 소리의 관계를 인식하여 단어를 읽고 발음하는 것을 배우는 ‘읽기 학습’(learn to read) 단계이다. 단어를 배우더라도 사람, 물건 등 대부분 일상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인 개념어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의미를 이해하는 ‘학습 읽기’(read to learn) 단계에 진입한다. 이때부터 배우고 확인해야 할 단어는 친척, 파충류 등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개념어나 추상적인 단어들이다.
1-2학년 시기엔 일상생활에 필요한 5,000개 정도의 단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교과서의 어휘수도 그 정도로 한정된다. 3학년 시기에는 사회와 과학 등 세분화된 교과를 배우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교과서 어휘수도 2학년까지 습득한 단어의 2배인 9,000여 개로 급증하고, 4학년 때는 12,000여 개 등으로 계속 증가한다. 이렇게 어휘 학습 면에서 부담이 큰 3학년 시기에 어휘력이 뒤처지면 4학년 때 학습 슬럼프(fourth-grade slump)에 빠지게 되고, 나아가 학습동기 저하는 물론 책을 읽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뉴욕시립대 사회학과 교수인 헤르난데즈는 2011년 미국교육학회 발표 논문에서 초등학교 3학년 시기가 이후의 학습 성패의 큰 흐름을 시작하는 변곡점(pivot point)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Double Jeopardy: How Third-Grade Reading Skills and Poverty Influence High School Graduation.”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읽기 능력인 독해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19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비율(16%)은 다른 읽기 능력 우수학생들이 탈락하는 비율(4%)의 4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창의력이나 인성교육이 중시되면서 지식교육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다. 책을 읽어도 뜻을 모르고 선생님의 교과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업 중에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교실의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그동안 세계 1-2위였던 우리의 15세 학생 학력수준이 2015년 평가 결과 읽기 7위, 수학 7위, 과학 12위로 추락하여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교육선진국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 사교육 증가, 계층 간 교육격차 심화 등 한국 교육의 위기 현상이 초등 3-4학년 시기의 어휘력 저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지나친 비약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작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에, 그리고 올해부터 3-4학년에 적용되고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언어교육과 국어사전 활용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구체적으로 초등 1-2학년 동안 27차시였던 한글교육을 62차시로 두배 확대하였다. 국어사전 활용 수업도 두배로 확대되었다. 지난해까지 초등 4학년 1학기 8단원‘국어사전과 함께’에서 9차시만 배웠던 것을 올해부터는 3학년 1학기 7단원‘반갑다, 국어사전’에서 8차시, 그리고 4학년 1학기 7단원‘사전은 내 친구’에서 9차시로 2년간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강화되었다.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초등 3학년 전후로 ‘읽기 학습’과 ‘학습 읽기’를 제대로 실시하려는 정부 수준의 정책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국어사전 활용에 대한 관심과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다. 수업 중에나 혼자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습관적으로 사전을 찾아 확인하고 이해하는 정도가 되어야 할 텐데 사전이 없다. 국어사전 학습 단원에서라도 사전을 확인해 보면서 공부해야 할 텐데 대부분 사전 없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1년 전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농어촌 초등학교를 찾아 국어사전 기부 활동을 하면서 그 원인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는 무상 의무교육 단계라 선생님들은 5만 원 정도 하는 국어사전을 구입하도록 안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안내해 주지 않으면 직접 서점에서 좋은 사전을 골라 자녀에게 선물하는 대도시의 부모들처럼 지원해줄 수 있는 농어촌 학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국어사전 활용 효과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은 계속해서 사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모르는 어휘를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에서 찾아 스스로 확인하면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의미도 모른 체 무조건 암기하거나 대강 틀린 의미로 인식하여 말실수를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는 것을 배워 알아가는 것이 공부다. 초등 3학년 때부터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일지라도 우리 모든 학생들이 잘 모르는 단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확인하면서 알아가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