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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호 May 28. 2021

학교장의 권한과 책임은 중시돼야 한다

학교에서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할 수 있을까?

과거에 학교를 다녔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5월이 되면 손님맞이 대청소를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에 모든 학교들은 연 2회의 교육청 장학지도를 받았는데 이를 대비하여 학생들은 직접 유리창을 닦기도 했다. 교육청에서는 5월의 계획단계 장학지도를 통해 지침에 따라 수립한 교육계획 자료와 교과목별 수업지도 계획서들을 점검했고, 11월엔 1년 동안의 교육활동 실적을 확인했다. 교사들은 장학지도에 대해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학교의 본질적인 과업인 수업보다 부차적인 행정사무를 더 중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비판이었다. 


2010년 9월부터 전국의 모든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장학지도가 폐지됐다. 교육청은 이전과 달리 학교가 필요할 경우에 한해 요청한 분야에 대해서만 자문 위주의 컨설팅을 할 수 있게 됐다. 교육청 명칭도 교육지원청으로 변경됐다. 교육청은 학교를 지도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장학지도가 사라지고 교육청 명칭에 지원이라는 용어가 추가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의 본질적인 과업인 학력향상을 위한 실천방안으로 정부에서 추진한 학교자율화 조치 결과다. 이와 관련해 어떻게 하면 학교가 학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학교효과 연구 결과들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학교장의 리더십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학교장의 수업지도성, 교직원과 학생들의 학력을 중시하는 학구적 풍토, 지역사회와 학부모의 학교에 대한 신뢰 등을 들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학교장의 학력향상을 위한 자율적인 관리 능력을 첫 번째로 꼽은 것이다.


학교장의 자율적인 학력향상 능력은 단위학교 자율경영제 또는 단위학교 책임경영제라는 정책의 핵심으로 강조되고 있다. 단위학교 책임경영제가 학교장의 역할 중시와 관계가 깊다는 것은 학교장 임용제도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법제화된 교장공모제를 통해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를 자율적으로 책임지고 경영할 교장을 초빙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공모형태의 하나인 내부형 방식으로 교장자격증이 없는 평교사일지라도 학교운영위원회가 그러한 능력을 인정해 선택하면 교육지원청에서는 교장으로 임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시행 초기에는 내부형 방식을 적극 확대하려 했지만 특정 교원단체 위주로 선정되는 문제가 나타나 현재는 적용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학력향상 목적을 위한 자율 경영 능력을 중시하기보다 구성원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인기위주 선정이 문제점으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최근 경인지역의 한 교육청에서 교육감 측근 간부가 특정 교원단체 소속 교사를 교장으로 선정하려고 면접 문제를 유출해 기소된 사건, 지난 2월 전남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1위로 추천된 교사를 교육지원청에서 탈락시켰다고 교원단체가 민원을 제기했던 사례에서 단위학교 책임경영제의 본래 취지가 교장공모제 실천과정에서 왜곡된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단위학교 자율경영 체제에 상당한 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장들을 만나본 몇몇 언론인들이나, 사적으로 학교장들과 대화를 나눴던 교육계 선후배들의 전언에 따르면 학교장들의 학력향상을 위한 리더십이 매우 약화됐다고 한다. 학교장의 적극적인 교육활동 추진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교사들이 많고, 학교장이 책임과 권한에 따라 특별한 시책을 강하게 추진하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해 곤란을 겪게 만든다고 한다. 적극적인 업무 추진과정에서 불거진 오해로 갑질 교장으로 낙인찍혀 인사 조치된 사례들을 보면서 “하마터면 나도 열심히 할 뻔했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다수의 학교장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권한은 교사들과 평등하게 N분의 1의 효력을 발휘하고, 책임은 100%를 져야 하기 때문에 학력향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일상적인 관리에 치중해버린다고 한다.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학력 격차 심화, 기본 문해력 약화 등의 학력 위기 상황에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걱정할 뿐이며, 괴롭지만 무관심한 척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법과 제도에 따라 학교에 부여된 공적 책임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민주적 조직을 추구하려다 가장 비효과적인 자유방임적 조직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며칠 전 한 교사단체는 교사들이 뽑은 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학교장의 갑질, 비민주적 행정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적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해버리는 것 같다. 조직에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조직의 목적 달성과 구성원의 동기유발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의 리더는 목적 달성에 대한 책임 때문에 법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려 하고, 구성원들은 그것보다는 만족스러운 조직 분위기에 더 관심을 갖는다. 조직의 리더로서의 학교장은 학교의 본질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의견을 들어 의사결정을 한다. 과업과 구성원의 특성을 고려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과제에 대해 구성원 간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어느 학교에서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힘들게 고민해야 하는 사람은 교장이고, 학교교육의 결과에 대해 가장 크게 책임지는 사람도 교장이어야 한다. 어떻든 단위학교 책임경영 체제에서 학교장들의 권한과 책임은 인정돼야 하고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그것이 학교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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