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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호 Oct 14. 2021

한글날과 깐부 이야기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은 주로 언어를 통해 이뤄진다. 언어는 오랫동안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되고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유된다. 사람들 간에 의미 전달을 정확하게 해 주면서 배우고 가르치기 쉬운 말과 글이 우수한 언어이다. 우리는 간단한 24개의 자음과 모음만으로 어떤 소리도 표현할 수 있는 우수한 한글을 가지고 있기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 덕분이다. 엊그제 우리는 575돌 한글날을 맞았다. 쉽고 편한 언어생활을 가능하게 해 준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며, 우수한 한글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유지시키는 일에 관심을 높이는 날이다.      


  신조어의 무리한 사용이 한글 발전 저해

  한글날을 보낼 때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글이 손상되고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하여 걱정을 한다. 먼저,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신조어나 줄임말, 과장된 재미를 이끌어내는 표현 등을 문제점으로 들 수 있다. 가령 ‘개멋있어’, ‘개노답’, ‘꿀잼’ 같은, 이제는 식상할 수준까지 된 신조어들이 원래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멋있어’, ‘그러면 안 된다’, ‘정말 재미있다’ 대신 사용되어 기본적으로 원뜻을 알기도 전에 변형된 뜻부터 먼저 알게 되는 경우다. 성인들이야 원래의 뜻을 알고 신조어가 나오게 된 상황을 이해하여 단순히 재미로 들을 수 있지만, 청소년들은 이런 신조어의 뜻을 실제로 정상적인 어휘로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성인들은 ‘당연하다’는 말이 ‘당근이지’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어릴 때부터 ‘당근이지’라는 말에만 익숙한 청소년들은 원래는 그게 ‘당연하다’였다는 것을 망각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요인에는 신조어 외에 표현의 단순화 문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헐’, ‘대박’ 등이다. 좋든 나쁘든 어떤 상황에나 이런 말로 간단히 정리를 해버린다. 상황을 생각하여 판단하고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어휘를 찾는 노력이 필요 없으니 어휘가 늘 수가 없어 문해력 저하를 가져온다. 또한 신조어나 줄임말 사용은 세대 간 실제적인 언어의 장벽을 만들고, 의사소통을 왜곡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한글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문법적 오류나 비속어 사용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은어나 연예인들이 재미로 사용하는 속어 등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국어에 서툰 캐나다 국적의 가수가 “모라고 했는지 1도 몰으갰습니다.”라고 흰 칠판에 쓴 글이 방영된 뒤 문법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1도’라는 단어가 성인들 사이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이나 연예인 외에 정치인들이 방송에서 자주 사용하는 ‘빼박’, ‘내로남불’ 등도 속어로서 문젯거리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사회지도층으로서 한글 발전에 보다 큰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기에 언어사용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깐부는 교양인이 사용하지 않아야 할 속어

  최근 한글날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0일 어느 대통령 후보가 SNS를 통해 사용한 단어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라고 한 말이다. 아직 ‘오징어 게임’ 드라마를 보지 못했던 필자는 라디오를 통해서 ‘깐부’라는 단어를 들었다. 처음엔 ‘간부’를 강조한 표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왜냐하면 대화 당사자들은 법조계의 고위간부 출신 정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글날에 즈음하여 한글과 한국어의 관계 그리고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나는 여러 종류의 국어사전에서 ‘깐부’라는 단어를 찾아보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것이 속어 표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선 해당 정치인의 한글 사용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깐부’는 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 등을 뜻하는 은어·속어다. 깜보, 깜부, 가보(갑오) 등 지역마다 발음이 약간씩 다르다. 어원으로는 일본어 ‘카부나카마(株仲間)’ 중 ‘카부(株)’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있다. 여기서 카부는 지분을 공유하는 동업자라는 뜻이다. 이 용어가 일제강점기 한국에 들어와 변형됐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서 소규모 음악 밴드를 뜻하는 단어인 ‘캄보(combo)’가 한국 내 미8군을 통해 민간에 퍼지면서 비슷한 발음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깐부’가 속어라는 것을 확인한 후 국어사전에서‘속어’를 찾아보니 ‘젊잔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이었고, 이어서 ‘상스럽다’를 찾아보니 ‘말이나 행동이 보기에 천하고 교양이 없다’라는 설명이 나왔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속어를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기에 미성년자들이 모방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오징어 게임’ 드라마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등 외국에서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깐부’는 단지 드라마의 예술적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 단어이며,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더욱이 청소년들이 사용할 정도로 유행하는 단어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소중한 한글을 아름답게 사용하지 못하는 천하고 교양 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날이 지난 지 일주일도 안된 시기에 본 칼럼에서 벌써 그 단어를 일곱 번이나 사용한 것이 창피하게 느껴진다.


* 본 칼럼은 전남매일신문 <전매칼럼> (2021-10-14. 목)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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