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모든 학교나 교육청은 매월 정기적으로 유익한 교육소식 책자인 ‘행복한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부에서 발간하는 ‘행복한 교육’에는 정부의 교육정책 정보, 교육청과 학교의 우수사례 그리고 선생님들의 모범적인 교육활동이 실려있다. 재직하는 동안 ‘행복한 교육’을 챙겨 읽으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발견하면 적용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행복한 교육에 한 번이라도 실릴 수 있다면 그 학교나 교육청은 얼마나 큰 영광이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2013년 11월 초에 ‘행복한 교육’ 담당 편집장으로부터 직접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았다. 편집장은 질문을 이메일로 먼저 보낼 것이며, 4일 후에 교육부 연구사, 사진실장과 함께 방문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12월호에 게재할 것이라고 했다.
받은 이메일에서 인터뷰 주제는 ‘함평교육청의 학력신장 지원정책과 교육장의 경영철학’이며, 교육청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교육장의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인터뷰 요청 질문 내용은 함평교육청에서 학력향상에 중점을 두게 된 배경, 학력향상 지원정책 실현 방안, 함평교육청 학력향상 지원 노력의 차별성과 경쟁력, 학력향상 정책 추진 시 경험한 애로사항, 학력향상 지원정책을 통한 현장의 변화 정도, 타 교육청에서 함평의 학력향상 지원정책을 벤치마킹할 경우 유의해야 할 사항으로 여섯 가지였다.
인터뷰 주제는 교육청의 특별한 학력향상 정책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교육청에서 학력향상 지원정책을 특별히 추진하지 않았던 만큼 답변 만들기가 쉽지 않게 여겨졌다. 아울러 왜 그러한 질문들을 가지고 인터뷰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 우리 교육청은 학력향상에만 중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현장의 반대와 같은 애로사항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다른 교육청에서 벤치마킹할 정도의 특별한 지원정책도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답변서를 미리 작성하지 못하고 몇 가지 학력향상 지원 관련 자료들만 정리하여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방문했던 편집장 일행은 왜 함평교육청을 대상으로 그리고 특별히 학력향상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알려줬다. 6월에 실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10월에 나왔는데 함평 학생들의 학력수준과 향상도가 전국 174개 시·군 단위 교육청 중에서 가장 높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담당부서(교육정보분석과, 현 교육기회 보장과)에서 편집위원회에 사례 취재를 의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육장 공모로 함평에 와서 임기 2년을 거의 마무리하는 시기였던 만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던 지역 학생들의 학력향상 성과를 객관적으로 확인받은 순간 기쁨이 무척 컸다. 그제야 학력향상의 비결이 국어사전 보급과 활용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이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편집장도 국어사전 보급과 활용에 관심을 보여 인터뷰 시간 대부분을 국어사전으로 채웠다.
함평교육청과 국어사전의 관계는 공모 단계에서 경영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공모 제출자료인 경영계획서를 작성하면서 학교알리미를 통해 함평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먼저 파악해 보았다. 중3 학생들의 경우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점차 어려워지는 단계형 과목인 영어나 수학 성적은 농어촌 학교의 특성상 전국 평균에 못 미쳤고, 전남의 타 시군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학력 부진의 누적 정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 기본적인 어휘력만 확보되면 이해할 수 있는 사회나 과학 성적도 마찬가지로 매우 낮았다. 구체적으로 사회나 과학에서 해당 학년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인 보통학력 이상의 학생 비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휘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국어나 사회, 과학은 물론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도 수업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학생들의 어휘력을 배양시키는 방안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함평 학생들의 학력분석에 따른 중점 추진 사업으로 ‘국어사전 활용을 통한 독해능력과 자기주도 학습능력 향상 방안’을 제시했고, 부임 후 국어사전 보급과 활용 지원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했다. 국어사전을 활용하는 수업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까지의 전체 학생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2,000여 권의 국어사전 구입비를 교육청 예산으로 편성했다.
국어사전을 단순히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보다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함께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기에 사전을 보급하기 전에 선생님들께서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학교장 대상 회의에서는 지역 학생들의 학력실태가 심각하게 우려할 수준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국어사전을 활용한 어휘력 향상을 통해 학력저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부임 인사차 각 학교를 방문할 때는 전체 선생님들에게 국어사전 보급 이유와 효과적인 활용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국어사전은 국어수업에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교과 수업에서 학습용어를 설명할 때, 그리고 가정에서 학생들이 혼자 공부할 때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전 활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국어사전 활용 노트를 초등용과 중등용으로 따로 개발하여 사전과 함께 보급했다. 아울러, 학부모와 교원들을 대상으로 국어사전 활용과 어휘력 지도에 관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연찬회도 개최했다.
국어사전 보급 첫해엔 초3부터 중3까지 7개 학년 2,000여 명이 대상이었기에 구입 예산 부담이 컸다. 그렇지만 다음 해부터는 초등학교 3학년 전체 250여 명에게만 보급하면 되기 때문에 예산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다. 아울러, 후임 교육장들의 의지에 따라 예산계획이 변동될 수 있기에 함평지역에 국어사전 보급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찾았다. 미국의 사전보급 운동인 '딕셔너리 프로젝트(Dictionary Project)'를 벤치마킹하여 인근 광주지역의 로터리 클럽과 매년 국어사전 60권씩 지원받는 협약을 맺었다. 덕분에 함평교육청은 한국판 딕셔너리 프로젝트의 발상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함평에서의 국어사전 보급 효과는 상당히 컸던 것 같다. 많은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 학생들과 사전을 활용하면서 학습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사전을 가지고 학교와 가정에서 항상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기자 한 분은 국어사전 보급 이후 초등학생 5학년 자녀의 어휘사용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3년 한글날엔 함평의 국어사전 보급 운동 소개와 사전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교실의 모습이 호남지역 TV 메인뉴스로 방영되었고, 지금도 유튜브로 쉽게 볼 수 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문화 가정의 외국 출신 어머니들에게도 국어사전을 보급하였고 사전활용 교육도 실시했다. 다문화 가정 학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자녀가 가져온 가정통신문을 이해하지 못하여 실수를 하면서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추진했던 것이다. 당시 함평다문화지원센터 담당자는 다른 모임에는 항상 지각하던 분들이 국어사전 교육을 받는 5일 동안에는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수업 전에 도착하였으며, 그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인터뷰 시간 내내 끈기 있게 나의 국어사전 예찬론을 들어주었던 편집장은 국어사전 활용의 효과를 확신하면서 전국적으로 그 필요성이 곧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분이 고민하여 만들었던 ‘행복한 교육’의 함평교육 리포트 제목은 ‘한 권의 사전이 함평교육을 바꾼다.’였다. 실제로 함평에서 2년의 짧은 기간 동안 만들었던 작은 교육성과, 그것은 작은 한 권의 책 ‘국어사전’에서 시작된 것이 맞다.
오늘 페이스북을 여는 순간 인터뷰 내용 속의 사진 하나가 <내 추억 보기>로 떴다. 교육부 전문 사진기자가 직접 찍어 준 ‘속뜻 국어사전’을 들고 있는 사진이다. 10년 전 사진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 덕분에 10년 전의 교직생활 일부를 정리해 본다. 함평에서 맺은 나와 국어사전과의 인연은 2017년부터 4년 동안 32회에 걸쳐 실천했던 903권의 국어사전 기부, 공저로 출판된 ‘국어사전 활용 교육’, 그리고 여러 번의 칼럼과 문해력 관련 특강으로 계속되었다. 앞으로도 교직과목 강의에서, 그리고 문해력 관련 책 쓰기에서 나의 국어사전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