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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Apr 06. 2023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신에게 건네는 다정함

3년만이다. 2020년 1~2월 뉴질랜드 여행을 마지막으로, 해외로 못 나간지 3년만. 코로나와 함께 한 3년 동안 자가 격리를 두 번, 코로나 백신 주사는 세 번, pcr은 열 번, 자가키트는 열 번 정도 했다. 하루에 한 장씩 쓰고 버렸으니, 마스크는 적어도 천 장을 썼다. 그러는 동안, 놀랍게도, 잘 버텼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알기에, 친구들은 ‘여행 못 나가서 답답하지?’ 하며 걱정해줬다. 답답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움직일 수 없게 발이 묶인 터라, 크게 힘들지 않았다. 정말 힘든 건, 자가격리다. 2주 동안 밖으로 한 발도 못 나가는 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그걸 두 번이나 하다니!)


2022년부터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백신 접종 증명서를 들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부러웠다. 그제서야 조바심이 났다.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찼다. 2022년 1월. 대학원 공부를 하는데 학교 행정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학습연구년제가 됐단다.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대학원이 끝나고 이틀 뒤, 비엔나로 떠나는 비행기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삼 년 동안 항공사 마일리지가 많이 쌓였던 터라, 마일리지를 썼다. 가려고 한 곳은 폴란드지만, 마일리지로는 바로 갈 수 없어서 비엔나로 끊었다. 비엔나는 9년 전에 다녀왔던 곳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클림트의 <키스>도 다시 보고 싶고, 시간이 없어서 못 봤던 에곤 쉴레 미술관에도 가고 싶었다.


2월 1일 인천공항. 오랜만에 공항에 오니 괜스레 울컥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내내 마스크를 썼다. 대한항공이라 한국 방역 지침을 단단히 지켰다. 밥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고 얼른 다시 썼다. 13시간 남짓한 비행 끝에 비엔나 공항에 내렸다. 숙소까지 어떻게 가는지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 꼼꼼하게 알아보고 미리 예약하는 편인데 이번 여행은 갑자기 떠나기도 했고, 삼 년동안 성격이 느긋해진 면이 있어서 숙소만 예약하고 떠났다. CAT라고 공항에서 비엔나 미떼 역까지 한 번에 가는 열차가 있어서 왕복 표를 샀다. 비엔나 미떼에서 내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 역 세 개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니 눈 앞에 바로 슈테판 성당이 나타났다. 사진을 찍으려면 한참을 뒤로 물러나야할 만큼 커다란 성당인지라 공간감이 남달랐다. 숙소는 성당 바로 옆이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동행과 함께 비엔나 커피로 알려진, ‘멜랑쥐’를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은 걸어서 벨베데레를 찾았다. 숙소에서 30분 남짓 걸었다. 구름이 많고 흐리더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벨베데레를 찾는 까닭은 단 하나.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서다. 9년 전에 그림 앞에 섰을 때 느꼈던 감정이 또렷하다. 손 끝이 찌릿찌릿했다. '원작 그림은 이런거구나.' 벼랑 끝에 꼭 끌어안은 연인. 남자는 여자의 볼에 입맞춤 하느라 뒤통수만 보인다. 여자의 머리는 뒤로 젖혀진 채 관람객과 마주한다. 눈을 감고 남자의 손을 잡은 얼굴이 참으로 평화롭다. 둘을 감싼 눈부신 금빛 담요와 클림트라면 떠오르는 잔 꽃 무늬들. 짙은 밤색 배경에 밤하늘의 별처럼 금색 물감을 흩뿌렸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림. 예전만큼 찌릿찌릿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좋았다. 그림 앞에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자리 잡았다. 유럽은 우리나라와 겨울방학이 달라서 아직 학기 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다. 조금 뒤로 물러나서 그림을 보는데, 문 옆에 있던 미술관 직원이 말을 걸었다.


"멋진 그림이죠."

"네, 저는 9년 전에 왔는데 다시 보니 반갑네요."

“오! 다시 온 걸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술관 직원들은 관람객들과는 달리 모두 마스크를 썼다.

"아직도 마스크를 쓰시네요."

"우리가 관람하는 사람에게 옮길 수는 없으니까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팬데믹 기간에 어떻게 지냈는지로 옮겨갔다. 얼마나 안 좋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비엔나도 다른 유럽처럼 처음에는 아예 ‘락다운’을 했단다. 몇 주 동안 집 밖으로 한 발도 못 나갔단다.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시간을 지나서 이렇게 다시 미술관 문을 열고, 저도 비엔나로 돌아올 수 있어서 기뻐요.”

“그러니까요.“


남은 여행 잘 하라는, 잘 지내시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해듣긴 했지만, 실제로 만나서 팬데믹 시절 이야기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언제나 궁금했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는지, 지난 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쩌면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은,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 모든 사람이 겪은 일이지만, 각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수 많은 이야기들이 그대로 묻혔다. 스리슬쩍, 지난 삼 년은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간 듯하다. 여행하는 내내,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그동안 잘 지냈나요? 어떻게 지냈나요?’ 하고.


이틀 뒤, 선생님과 함께 폴란드로 넘어갔다. 여섯시간이나 걸려서 선생님의 오빠가 사는 브로츠와프에 닿았다. 선생님은 나보다 3주 먼저 폴란드에 왔는데, 나와 함께 비엔나를 여행하느라 차를 가지고 국경을 넘어왔다. 선생님은 오랜 시간 운전을 해서 탈이 났는지 다음날 앓아누웠다. 혼자 크라쿠프와 브로츠와프를 둘러보고, 나흘 뒤에 베를린으로 떠났다. 새벽 5시 기차를 타서 10시에 베를린에 닿았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가까운 숙소에 짐을 놓고 바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찾아 나섰다. 20분 정도 걸으면 될 것 같아 걷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국회의사당 건물이 나타났다. 줄을 서 있길래 알아보니, 예약을 하고 국회의사당 위에 유리 구조물 위로 올라갈 수 있단다. 여름이 아니라서 다행히 바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브란덴부르크 문이 나타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독일 국민들이 몰려갔던 곳이다. 좋아하는 데이빗 보위가 동서독으로 나뉘어 있을 때, 평화,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공연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스물다섯개 나라를 다니며 조금은 무뎌졌던 심장이 벅차올랐다. 건물의 아름다움을 떠나서 역사적인 장소라는 까닭만으로 눈물이 났다. 마침 알 수 없는 행사를 해서 재미나게 봤다. 전통의상을 입은 어른들이 요란스럽게 방울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었다. 덩달아 신이 났다. 15분 정도 떨어진 노이에 바헤로 걸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조각가,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가 있는 건물이다. 텅 빈 건물에 자식을 잃은 어미가 웅크린 조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바로 위에 동그란 창이 있어 어두운 가운데 조각에만 빛이 쏟아진다. 바로 옆에 미술관이 모여 있는 ‘박물관의 섬’이라 둘러보고 다시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유리 구조물은 동그란 돔 모양인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길을 걸어 올라가며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보니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물이다. 내려가서 둘러보고 포츠담 광장까지 걸어갔다가 체크 포인트 찰리까지 보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새벽부터 움직인 날인데 무리해서 걸었다. 발이 아팠다. 숙소로 들어가려다 마실 물이 없어서 구글 지도를 보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걸었다. 지칠 대로 지쳐서 얼른 물 하나만 골라 계산대에 올렸다. 팔에 문신이 가득하고 피어싱을 한 남자 점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종차별이 제일 걱정되었다. 유럽, 더군다나 오스트리아나 독일은 인종차별이 심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지레짐작으로 무서운 사람으로 여기고 몸이 굳었다. 카드를 내밀었다. 안 된다. 현금을 꺼내려고 하니 ‘이런 일이 종종 있어요.’ 하면서 얼른 카드를 자기 옷에 문지르더니 다시 꽂는다. 값을 치른 물을 받아들고 ”Thank you.”하고 돌아서는데 “Have a nice day.”하고 웃는다. 순간, 굳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따뜻한 인사말 하나에 하루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덩달아 웃으며 “Have a nice day.” 인사를 건넸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란 말은 그 뒤로 여행을 돕는 마법같은 말이 되었다. 가게에 들어서며 그 나라 인사말을 하고, 나올 때는 꼭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했다. 정말로 그 사람이 좋은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 였을까. 인사말을 건네 사람들은 빠짐없이 환하게 웃으며 그 말을 되돌려 주었다. 어쩌면,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런 다정함을 기다려온 건 아닐까.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말, 마주치며 웃는 얼굴,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안부를 묻는 말들. 한국에 돌아와서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슬그머니 인사가 사라졌다. 왠지 겸연쩍어서다. 겸연쩍은 마음을 누르고, 인사를 건네야지. 다정함을 건네야지.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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