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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May 02. 2023

<백 살이 되면>

삶을 잘 살아내기

학습연구년제를 하며 날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마음이 느긋해졌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해져서, 집 청소를 더 자주 하고, 강아지 산책을 하루 두 번 하기도 한다. 느긋해진 마음으로 지내다보니 어느새 5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조바심이 난다. 해마다 하는 말이지만, 세월 참 빠르다. 올해는 더 그렇게 느껴진다.


지난해 3월부터 심리상담을 받았다. 내가 꾼 꿈으로 받는 상담이다.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주마다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새 53회기. 한 번 정도 빠졌을까. 정말 죽기 살기로 받았다. 보통 첫 꿈이 앞으로 받을 상담에 대해 일러준다고 하는데 내 꿈은 너무 무서웠다. 높은 성벽 위에 주차한 차들이 밑으로 쏟아져 내려서, 사람을 덮쳐 많은 사람이 죽었다. 빠짐없이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회복서클 같은, 영화에 마약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자들이 둥그렇게 앉아 상처를 치유하는 모임에 나갔다. 둥그렇게 앉아서 기다리는데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내 뒤에 서서 

“이야기 나누면 괜찮아질 거에요.” 

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더니, 갑자기 머리카락을 들추고 톱으로 목을 잘랐다. 한 번에 잘리지 않아서 몇 번이나 톱으로 목을 켜서 소리를 엄청나게 질렀다. 목이 거의 다 떨어지고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첫 꿈으로 상담을 한 뒤, 교수님은

“피로 길을 닦는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받아봅시다.” 라고 말했다.

‘피로 길을 닦는다’ 니. 어찌나 무서운 말인지. 때로는 도망가고 싶었고, 때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무 힘이 들어서 깊은 한숨이 자주 나오기도 했다. 


어느덧 1년. 내가 달라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음이 사라졌다. 글에도 몇 번 썼듯이, 목 놓아 우는 울음을 자주 울었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몇 번이고 울었는데, 이제는 거의 울지 않는다. 풀어놓고 싶어서, 내어놓고 싶어서 그랬던거구나. 힘든 시간을 견딘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잘했어.


달라진 것이 또 있다. 사는 게 좋다. 전에도 좋아했지만, 지금은 더욱 좋다. 전에는 우울감이 찰랑찰랑, 목 밑까지 차오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더러했다. ‘허무하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어차피 다 죽는데.’ 기후위기를 무척 걱정하는 마음이 얹어지면서 더 우울했다. 이제는 아니다. 하루 하루 잘 살아가는 마음이 더 크다. 행복하다.


≪백 살이 되면≫(황인찬 글, 서수연 그림)은 이런 내 마음을 크게 울린 그림책이다. 색을 뺀 듯한 그림 위로 딱 한 줄. ‘백 살이 되면 좋겠다.’ 이어지는 문장은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다. 누가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내처 이불 속에 누웠다가, 빗소리를 듣다가, 그대로 나무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나무 밑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조용히 쉬고 계시면 좋겠다고, 달게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가족들이 웃으며 맞아줬으면 좋겠단다. 누군가 ‘잘 쉬었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주면 좋겠단다. 


누구나 죽고, 죽음은 두렵다. 죽음을 잠에 빗대어, 편안하게 쉬는 거라고 이르며, 잠에서 깨어나면 마치 우리가 살아낸 삶이 꿈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말하는 그림책. ‘피로 길을 닦아’ 얻어낸 새 삶이, 참으로 귀하다. 잘 살아내고, 좋은 꿈을 꾸었듯이, 기지개 켜고 일어나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바라고 또 바란다. (20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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