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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Jun 04. 2018

[메트로폴리탄_9] 무용 수업 by 에드가 드가

에드가 드가는 반골 기질 가득한 아웃사이더였다. 프랑스 주류 미술계인 살롱전의 권위에 도전했던 인상파 화가라는 점에서 아웃사이더였으며, 반짝이는 빛의 효과와 그 인상을 화폭에 담았던 다른 인상파 화가와 달리 실내에서 발레리나를 주로 그렸다는 점에서 또 한번 아웃사이더였다. 사실 그의 그림은 빛과 빛이 자아내는 분위기, 색채에 주목하는 인상파의 특징보다는 선, 데생을 중시하던 당시 주류 미술계의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총 8회에 걸쳐 개최된 인상파 전시회 중 7회나 참여하고도 스스로 인상파 화가라기보다는 사실주의자나 혹은 독립 화가로 불리길 원했던 드가는 ‘인상파’라고 특징지어지는 화풍의 작품 때문이라기보다는 관습과 권위에 도전하고 화가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를 지지하는 인상파의 정신을 공유하고 이끌었다는 점에서 인상파의 대표 화가이다.  

  
드가는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의 분위기가 흔히 그렇듯 드가 역시 아버지의 바람대로 미술이 아닌 법과대학에 진학했었다. 하지만 곧 포기하고 전업화가의 길로 돌아섰다. 사실 에드가 드가의 아버지, 오귀스트 드가 역시 음악과 미술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사람으로 드가가 어린 시절부터 부자는 함께 당대의 유명한 미술 수집가들을 방문하곤 했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화가의 길로 인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드가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다. 이후 드가는 파리 최고의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잠시 몸을 담기도 하고, 이탈리아로 자비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드가는 제도 교육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들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 그리고 앵그르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천재성을 닦아 나갔다. 


[무용 수업]

그렇게  화가의 길로 접어든 지 10년이 훌쩍 넘은 1870년대 초반부터 드가는 ‘움직임’이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부쩍 발레 그림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발레 작품은 총 600여 점이 넘는데, ‘무용 수업’은 그의 발레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그림은 당시 유명한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쥘 페로가 무용 수업을 진행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한 무용수가 쥘 페로 앞에서 애티튜드를 선보이고 있고, 다른 무용수들은 앉거나 서서 잡담을 나누거나 혹은 발레복을 매만지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이 그림은 일견 우아한 발레리나들을 묘사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상은 당시의 고된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고발하는 그림이다. 무용 수업은 고된 연습의 순간이며, 무용 교실은 기다림의 지루함이 만연한 현장이다. 게다가 당시의 무용수들은 오늘날의 예술가가 아니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노동 계급의 소녀들이었다. 이를 알려주는 장치는 화면 원경의 무용복을 입지 않은 여인들로, 이들은 무용수들의 어머니들이다. 이들은 어린 무용수들을 후원한다는 미명하에 소녀들을 유혹하는 부유한 남성들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혹은 반대로 그들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하기 위해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쥘 페로나 개별 무용수들보다 더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이다. 대담한 사선 구도와 공간 배치는 20명이 넘는 여인들이 연습실에 몰려 있음에도 북적거리는 인상을 덜어주면서 동시에 생동감과 긴장감을 부여한다. 왼쪽 아래에서 사선으로 무용수를 따라가던 시선은 거울 속에 비친 창문을 통해 연습실 밖 파리의 시내로 확장되면서 그림에 깊이를 더해준다. 화가의 시점도 당시의 관습과 달리 약간 높은 곳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느닷없이 끊긴 화면은 더욱 파격적이다. 캔버스 안에 완벽한 세상을 구현하는 이전 세대의 그림과 달리 이 그림 속 좌·우 끝의 인물들은 오늘날의 스냅사진처럼 잘려있다. 이처럼 창의적 구성, 독특한 시점, 비대칭적인 프레임과 갑작스럽게 잘리는 방식은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일본 채색 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이다. 이른 개항으로 서구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일본은 서구의 문물을 적극 도입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문화도 서구 세계에 급속히 퍼져 나갔고, 그중에서도 일본 채색 판화 우키요에는 인상파 이후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그림과 같은 제목의 비슷한 그림이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걸린 이 그림보다 조금 먼저 그리기 시작하여(1873년) 이 그림보다 조금 늦게 (1875~6년 사이) 완성된 것이다. 이처럼 화가들은 마음에 드는 구성의 작품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그리기도 하는데 같은 그림을 다시 그리면 어떻게 변화하는지 궁금하다면 ‘무용 수업’ 근처에 전시되는 발레 리허설을 눈여겨 보길 권한다. 발레 리허설(영어로는 The Rehearsal of the Ballet Onstage 와 The Rehearsal On Stage로 차이가 있다)은 무용 수업과 같은 해인 1874년에 그려진 2개의 작품으로 같은 듯 차이가 난다.


[같이 보면 좋아요]

왼쪽은 The Rehearsal of Ballet Onstage, 오른쪽은 The Rehearsal Onstage이다. 

같은 해에 그려지긴 했지만 분명 선후가 있다. 어떤 그림이 나중에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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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보여도 리듬감과 운동성이 더 살아나는 오른쪽 발레 리허설(The Rehearsal Onstage)이 나중에 그려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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