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Jin May 28. 2018

[메트로폴리탄_8]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by 모로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에게 살해당한다는 신탁을 받는다. 신탁의 실현을 두려워한 라이오스 왕은 갓난 아들의 발을 굵은 못으로 찔러 걷지 못하게 만들고는 산에 버린다. 그런데 한 양치기가 이 아기를 발견하고는 마침 자식이 없었던 코린토스의 왕에게 보내게 된다. 아기는 발이 부은 아이라는 뜻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오이디푸스 역시 자신이 친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는다는 신탁을 받는다.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를 친부모로 믿은 오이디푸스는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죄를 피하기 위해 정든 코린토스를 떠나고, 그렇게 비극으로 향하는 운명의 길에 접어든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by 구스타프 모로

코린토스를 떠난 오이디푸스가 방향을 잡은 곳은 하필 테베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참 길을 가던 도중 좁은 길에서 시종들을 대동하고 마차를 탄 노인을 만났는데 길이 워낙 좁다 보니 서로 비키라는 시비가 붙었고, 시비 끝에 오이디푸스는 노인을 지팡으로 때려죽여 버린다. 이 노인이 바로 테베의 왕이요 그의 친부인 라이오스였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정을 계속했다. 그렇게 테베에 도착해보니, 테베의 왕은 정체 모를 사나이에게 살해당한데다 스핑크스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여자의 얼굴, 독수리의 날개를 단 괴물로, 이 괴물은 사람들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풀지 못하면 잡아먹어버렸다. 스핑크스로 인해 나라가 피폐해지자 라이오스 왕 사후 테베를 다스리던 섭정은 “스핑크스를 처리하는 자에게 왕위와 왕비 이오카스테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이른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고, 그리고 실패했다. 오이디푸스가 비로소 정답 “인간”을 맞췄고 스핑크스는 골짜기에 몸을 던져 죽어 버렸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처치한 상으로 테베의 왕위와 왕비인 이오카스테를 차지했고 그렇게 그에게 내려진 신탁이 모두 실현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이었던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두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실명케 한 후 테베를 떠난다. 

이 작품은 바로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인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가 주고받는 눈빛에는 살의라기보다는 교태가 서려있다. 최신 파리 스타일로 땋아 올린 머리에 예쁘장한 얼굴을 한 스핑크스는 유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오이디푸스를 올려다보고 있고, 가늘고 고운 선의 중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오이디푸스는 한편으로는 그 눈빛을 받아주는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응수하고 있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유혹은 아마 속임수일 것이다. 스핑크스의 날카로운 앞발은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오이디푸스의 심장 근처를 노리고 있으며, 오이디푸스의 발치에는 먼저 도전해서 스핑크스의 유혹에 넘어가 먹이가 되어버린 희생자들의 신체 잔해들이 널려 있다. 

또 하나,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 속 여자 주인공들은 모두 남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이었음을 상기해보면 이 작품의 스핑크스 역시 어떤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건 그 뒤에 오이디푸스를 파멸로 이끌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로의 작품 속에서 여성은 대체로 영적인 세계에 사로잡힌 신비로운 존재, 악을 사랑하는 존재, 그리고 남자를 유혹하고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그려졌다. 반면 남성은 시인을 그리건 전사를 그리건 이 작품의 오이디푸스처럼 섬세하고 고운 선의 중성적인 미소년으로 그려졌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by 앵그르

모로의 작품에 앞서 완성된 앵그르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와 비교하면 앵그르의 작품 속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관계와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모로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에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앵그르의 작품에는 중앙에 오이디푸스가 배치되어 있고 스핑크스는 왼쪽 구석진 곳에 치우쳐져 있으며 심지어 그늘에 가려져 있다. 이는 스핑크스가 수세에 몰린 상황으로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에 답을 하고 난 다음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모로의 작품에서는 스핑크스가 더 시선을 끄는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보다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모로의 작품에서는 스핑크스가 이제 막 수수께끼를 냈고 오이디푸스는 아직 답을 하기 전 상황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팽팽한 대결의 순간이다. 더불어 분명 여성과 남성 사이의 긴장 가득한 응시가 오고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로는 수없이 많은 예비 드로잉을 그리면서 이 작품을 준비했다. 완벽주의자였던 모로는 작품의 구성을 위해 때로는 수십 년 씩 그리고 다시 그리면서 수정하고, 세부사항을 덧붙이곤 했다. 작품의 세부 구성을 위해 신화나 신학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고고학 등 다방면을 두루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는 작품의 현실성을 높이거나 고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료들을 재해석하여 그만의 신비로운 환상 세계로 묘사해 냈다. 동시대의 화가들이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 눈으로 보이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에 몰두했다. 그의 그림은 이후 ‘화가 내면의 주관적 묘사’를 중시하는 표현주의와 무의식에 탐닉했던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메트로폴리탄_7] 엘리자베스 패런 by 토머스 로렌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