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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Mar 26. 2018

[메트로폴리탄_1] 주교의 초상 by 엘 그레코

엘 그레코(1541~1614)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 출신으로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이다. 그는 그리스에서 화가 수업을 받고 이콘(Icon, 예배용 화상)화가로 지내다가 베네치아에서 잠시 유학한 후 로마를 거쳐 톨레도로 옮겨왔다. 마지막 정착지였던 스페인 톨레도에서 약 40년간 활동하며 얻은 별칭이 엘 그레코인데, 스페인식 관사 엘, 이탈리아어로 그리스인이라는 의미인 그레코가 섞였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그의 평생의 행적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별칭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 양식은 서양 미술계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거장은 각자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화풍을 확립하기 마련이지만 엘 그레코가 살았던 16세기에 그토록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차별화되는 화풍을 선보인 화가는 없었다. 그는 미술에서도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에 감정을 두드리는 이단아였고, 그의 작품들은 정확한 묘사와 과학적인 원근법의 전성기인 르네상스 시기에 느닷없이 등장한 현대 미술이었다.   

엘 그레코가 태어나고 미술을 시작한 그리스의 크레타는 사실 중세 이래로 새로운 미술이라고는 전혀 발전시키지 못했던 예술의 불모지였다. 미술에서 중세라고 하면 고대 비잔틴 양식, 즉 머리에 후광을 단 인물들이 원근법이 개발되기 이전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그림,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 속 비중에 따라 인물의 크기가 제각각인 그림, 현실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종교 성상화들의 시대이다. 크레타 시절의 엘 그레코 역시 그림을 볼 때 묘사가 정확한지 가려내는 훈련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배경이 그가 베네치아로 옮겨 왔을 때, 역동적 화면 구성의 대가인 틴토레토의 그림에 깊이 감명받게 된 원인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틴토레토의 작품들을 “완성되지 못한”스타일이라고 배격했다. 하지만 틴토레토에 감동한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대가들의 작품을 토대로 서유럽의 화풍을 익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긴장과 감정을 고무시키는 틴토레토식 구성과 더불어 인물을 길쭉하게 늘리는 매너리즘, 그리고 무엇보다 티치아노의 색채 표현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럼에도 원근과 비례를 중시하는 이탈리아에서는 엘 그레코의 개성 넘치는 그림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그는 다시 스페인의 똘레도로 향했다. 똘레도는 중세의 이념과 사고가 독실한 카톨릭 사회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독실한 카톨릭 지역이었다. 똘레도에서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그림에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묘사와 원근법을 요구하지 않았다. 종교적 열정이 넘치는 이곳에 자리 잡은 엘 그레코는 자연적인 형태와 색채를 과감하게 무시한 종교적 환상을 창조해 냈다. 
                         

[ 주교의 초상 ] 

의자에 곧추앉아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이 작품의 모델은 인정사정없는 종교 재판관이었던 돈 페르난도 니뇨 데 구에바라 주교이다. 이 그림은 개인이 위탁한 그림이 아니라 교회의 공식 초상화로, 주교직에 있는 성직자의 종교적 열정과 권위를 구현하기 위한 그림이다. (사실 델 구에바라는 자유로운 견해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차가운 인상이나 지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안경이 작품 속 주교의 인상을 더욱 차갑고 매섭게 보이게 하고 있다. 당시는 필요할 때만 코안경 정도를 쓰던 시대로, 초상화에 일부러 안경을 귀에 건 모습을 채택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새로운 문물을 적극 수용하는 델 구에바라 주교의 진취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증거로 보이기도 하고, 무자비하고 잔인한 종교 재판관으로서의 인상을 강조하는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엘 그레코는 평면적이고 상징적인 비잔틴 양식과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르네상스 양식이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양식을 체화하여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했다. 주관적인 감정에 충실한 그의 작품은 16세기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현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동시대 스페인 사람들은 사실 그의 그림에 대한 반감이 없었다. 그의 작업실은 항상 분주했고,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많은 조수들을 고용했다. 그가 서명한 작품들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정도로 인기였다. 그의 작품은 오히려 한 세대 뒤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가 미술 작품에 사진과 같은 정확한 묘사를 요구하지 않게 되면서 모든 현대 미술의 시초로 재평가 받게 되었다.  인상파 이후의 화가들이 찰나의 현실을 찍어내는 사진과 차별화를 위해 그토록 고군분투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가 걸었던 미술 여정은 압도적으로 선구적이었다. 눈을 사로잡는 형광색을 활용한 채색, 독특한 구성 속에 길쭉하고 뒤틀리게 표현되는 매너리즘 양식 등으로 특징되는 엘 그레코의 회화 양식은 이후 수많은 현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피카소의 청색 시대 인물들이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 같이 보면 좋아요 - 요한 묵시록의 다섯 번째 봉인 (The Vision of Saint John) ] 

이 작품은 요한 묵시록에서 어린 양이 성 요한을 불러 일곱 개의 봉인을 떼어 보여주는 내용 중 다섯 번째 봉인 부분을 묘사한 장면이다. 화면 왼쪽의 길쭉한 인물은 성 요한이며, 벌거벗은 사람들은 무덤에서 올라온 순교자들로 하늘의 천사가 이들에게 옷을 나눠주고 있다. 없어진 상단에는 다섯 번째 봉인을 여는 희생양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 요한과 순교자들은 지금 하나님에게 세상을 파괴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스페인 톨레도 성 요한 침례 병원의 제단화의 일부로 종교적 환상이라는 작품 주제의 측면과 인물을 길쭉하게 늘여 그리면서 독특한 형광색 채색이 돋보이는 기술적 측면 모두에서 엘그레코의 특징이 잘 나타난 그림이다. 하지만 자극적이고 추상적인 묘사로 당시에는 엘 그레코가 미쳤다는 평가까지 받기도 했다. 

현재는 매트로폴리탄에서 <주교의 초상>과 같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메트로폴리탄에는 <똘레도 풍경>,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성 제롬>등 엘 그레코의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워낙 개성이 넘치는 화풍이라 한번 보면 누구라도 쉽게 그의 그림을 알아볼 수 있어, 이후에는 전시실을 돌아보며 그의 그림들을 한눈에 척척 알아보는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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