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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May 14. 2018

[메트로폴리탄_6] 마담 그랜드 by 르 브룅

메트로폴리탄을 관람하다가 투명한 피부, 발그스름하게 빛나는 볼, 반짝이는 붉은 입술, 구불구불 풍성한 머리를 한 아름다운 여성이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면 비제 르 브룅의 그림을 마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두드러지게 화사한 얼굴, 손으로 만지면 어떤 느낌이 날 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섬세한 옷감 표현과 우아한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그림에 빠져들게 한다.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비제 르 브룅은 18세기 전후의 시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여류 화가이다. 성차별의 벽을 넘어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아버지가 화가인 덕이었다. 파스텔 초상 화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는 거장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특히 루벤스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받으며 독학으로 성장했다. 미술상이었던 장 밥티스트 피에르 르 브룅과 결혼으로 모든 화파의 명작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그녀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사실 약혼녀가 따로 있었던 장 밥티스트 피에르 르 브룅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낚아채듯 결혼에 성공했으나, 후에 도박과 잘못된 투자로 비제 르 브룅을 곤궁한 처지로 몰고 가기도 했다. 

비제 르 브룅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1778년 23살 동갑내기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불려가 그녀의 초상을 그리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미 몇몇 대가들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리긴 했으나 어느 누구도 비제 르 브룅만큼 왕비를 아름답게 그려주지 않았다. 비제 르 브룅은 왕비의 자랑인 머릿결과 피부는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합스부르크 왕가 특유의 입매(이른바 주걱턱)는 곱게 그려냈다. 비제 르 브룅은 초상화 실력만큼이나 더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들의 마음을 읽는 데에도 섬세하고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셈이다. 


이후 비제 르 브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속 초상 화가로서 그녀의 후원에 힘입어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으로도 이름을 올리는 등 전도 유망한 길을 걸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후원이 독이 되어 잠시 파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에서의 망명 생활은 그림을 더욱 발전시키는 유학생활에 다름없었다. 이후에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을 돌며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더 큰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린 초상화만 총 662점에 이르는 수준이다.      


[ 마담 그랜드 ]

위의 그림은 마담 그랜드의 초상이다. 그랜드 부인의 시선 쪽에서부터 떨어지는 빛은 그랜드 부인의 투명하고 하얀 피부, 반짝이는 볼의 혈색, 붉은 입술, 그리고 어깨와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풍성한 머리 즉 빼어난 미모를 강조하고 있다. 실물보다 예쁘게 그리는 비제 르 브룅,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하여 그녀의 그림 속 인물들이 실물과 닮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듣는 르 브룅이지만 1783년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에는 실물과 매우 닮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하니 마담 그랜드는 화가의 재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던 듯하다. 여기에 더하여 보는 것만으로 그녀의 드레스는 만지면 어떤 질감인지, 움직일 때 어떤 소리가 날지 촉각과 청각이 한꺼번에 보는 이의 감각을 두드린다. 오늘날 화가에게 기술적 역량보다 철학적, 예술적 고찰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있다고는 하나 시각적 자극만으로 촉각과 청각을 두루 두드리는 과거 화가들의 역작 앞에 서면 고전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 그림의 모델인 마담 그랜드는 프랑스의 초대 수상을 지냈던 탈레랑의 정부였다가 후에 그의 부인이 되는 인물이다. 1762년 덴마크령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인 그랜드(Grand)를 만나 16세에 인도 캘커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즉 그랜드는 첫 번째 남편의 성이다.  하지만 마담 그랜드의 외도로 첫 번째 결혼생활은 짧게 종지부를 찍는다. 외도 상대였던 필립 프랑소와가 그녀를 영국 런던에 보낸 이후에는 더욱 거리낄 것이 없어진 마담 그랜드, 그녀는 이후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이 그림이 그려진 1783년에는 파리의 유명한 고급 매춘부가 되어, 마침 비제 르 브룅의 집 근처에 살고 있었다.  또한 모델은 눈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입술은 살짝 연 채로 손에 악보를 쥐고 있는데 이는 노래를 부르는 상황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마담 그랜드는 비록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 상식이 매우 부족하긴 했으나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마담 그랜드는 다른 유력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파리를 피해 런던으로 향했다가 로베스 피에르 실각 후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정부에 수감되었는데 탈레랑이 그녀를 석방하기 위해 애쓰면서 그의 정부가 되었다. 문제는 탈레랑이 프랑스의 외무상이라는 사실이었다. 마담 그랜드와 탈레랑의 부적절한 관계는 외무상의 임무 수행에 걸림돌이 되었다. 이에 나폴레옹은 탈레랑에게 그녀와 결혼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도록 압박하기에 이른다. 탈레랑은 결국 그녀와 결혼하기로 했고, 이때서야(1802년) 마담 그랜드는 비로소 법적으로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탈레랑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 후 둘 사이의 열정은 급격히 식었고, 결혼의 명목만 유지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았다.     


[ 같이 보면 좋아요 ]    

샤트르 백작부인

하얀 모슬린 드레스를 입은 샤트르 백작부인의 초상화이다. 르 브룅은 흰색 모슬린 드레스를 심플하면서도 변치 않는 아름다운 의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 역시 직접 가서 보면 모니터로 전해지지 않는 사실감이 따라온다. 분명 눈으로만 보고 있는데 만지면 어떤 촉감이 느껴질지, 어떤 소리가 느껴질지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며, 겹겹의 드레스를 이렇게 표현해 내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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