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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11. 2023

짝사랑만 17년째

천샤오시 사랑해♡

<치아문단순적소미호>라는 중국드라마가 있다. 넷플릭스에서 발견한 순정만화풍의 드라마인데 너무 재밌어서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여고생 천샤오시가 옆집 사는 우등생 동창 장천을 좋아하면서 겪게 되는 좌중우돌 하이틴로맨스 드라마인데 스토리가 범상치 않았다. 사실 클리셰가 좀 나열되고 남주인공은 츤데레+싸가지+똑똑한데 재수 없음+무지 잘생김의 콜라보로서 매우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남주인공은 반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선생님은 물론이고 반 친구들에게도 (특히 여학생에게) 신뢰를 받고 선망을 받는 존재로 나온다. 그 수많은 사랑을 구애하는 여학우들 속에서 주인공 쳔사오시는 꿋꿋하고 올곧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간다. 순애보도 이런 순애보가 없다. 장천은 천샤오시의 고백을 거절하다 못해 무시하고 면박을 주며 그녀의 사랑을 외면하기만 한다. 이 드라마에는 중반부로 흘러가기까지 장천이 천샤오시를 너무 안 좋아해서 언제까지 참고 봐야 하나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러나 캔디 같은 천샤오시는 굴하지 않고 장천에게 대시한다. 지치지 않고 마음을 고백하고 아침마다 장천 밥도 챙겨 주고 같이 등교하려고 자전거를 항시 대기하며 장천만을 기다린다. 이 정도 끈기면 명문대 입학은 당연지사라고 할 만큼 주위의 인정은 받지만 장천은 꿈쩍도 안 한다. 그러나 청춘로맨스가 그러하듯 오해가 쌓이고 서브 남주인 우보송이 천샤오시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장천을 견제하게 되면서 둘 사이에도 진전이 좀 생긴다. 장천이 했던 대사 중에 우보송에게 했던 말이 있다. 천샤오시는 항상 내 여자였어?라는 뉘앙스의 말이 있었는데 장천이 하니까 멋있더라. (잘생겼어, 와...) 


시간은 흘러 흘러 천샤오시와 장천이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하고 둘이 연인이 되고 알콩달콩 사랑하다가 또 오해가 생겨서 헤어지게 된다. 연인 간의 사랑은 참 사소한 갈등으로 자주 어긋나고 부서지는 듯하다. 자주 만나지 못해 서운함만 쌓여가다가 오해도 풀지 못한 채 이별을 선택하게 된다. 사실 이 관계는 천샤오시만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을 이어가려 애쓰는 듯하게 보였다. 데이트를 할 때도 사랑을 표현할 때도 장천은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다가 우연히 장천이 근무하는 병원에 천샤오시 아버지가 입원하게 되면서 둘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둘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사랑하게 되면서 장천도 이제는 사랑을 표현하고 천샤오시에게 더 다정하게 대한다. 관계의 개선이 되면서 천샤오시도 예전보다 더 안정되고 행복하게 변해간다. 그러다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다. 


중국드라마가 24부작이라고 하면 15부작까지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과 주인공의 서사가 계속 설명되고 배경과 주요 인물들의 관계성을 엄청 쌓는다. 그리고 나서 16부작부터 사랑에 주안점을 맞추면서 로맨스다!라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는 듯하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길다. 요새 한국드라마는 좀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사건 중심으로 뽜바박 하고 임팩트 있게 보여준다고 하면 중국드라마는 자잘한 에피소드를 이어가면서 얘 성격은 이렇고 사건을 통해서 이렇게 성장하고 차근차근 보여주는 느낌이다. 긴 호흡으로 시청자들이 서서히 스며들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것 같다. 이런 점이 약간 주인공들과 친밀해지는 효과를 주는 것 같다. 내 새끼들은 아니지만 키운 자식 같은 애틋함도 든다. 주인공이 뭔가 성공하고 성취하고 사랑이 연결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사실, 이 포스팅을 적은 이유가 나름의 위로를 얻기 위함이었는데, 이렇다 할 연애를 해본 적 없는 나로서 짝사랑도 참 많이 했었다. 제대로 된 고백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마음에 항상 그런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고백하는 게 이 사람에게 과연 기쁘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yes라고 답을 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나 자신이 별 볼일 없고 매력조차 없는 사람은 아닐까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짝사랑만 17년째 하는 사람을 보면서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드라마의 힘이라지만 지고지순하고 스토킹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 사람만 지독하게 따라다니는 주인공을 대단히 사랑스럽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물론 싫다는 사람 억지로 그러면 요샌 잡혀가니 적당히 하는 게 좋다. 사람이 사람을 오래 좋아한다는 것이 멍청한 행동만은 아니라 대단히 의미 있고 값진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천샤오시만 보더라도 장천을 위해 했던 일이 그렇다.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눈빛 하며 말이며 행동이며 숨길 수 없는 표정이며 그를 생각하며 그렸던 그림들, 편지들, 일기들이 그렇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일이다. 지질하고 구차하고 어리석고 비참하고 그런 것들만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왜 그렇게 멋져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만을 따라다녔는지 그래서 내 마음이 들키거나 거절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불안해만 했는지 그때의 내가 좀 안쓰러웠다. 그렇게 어깨 움츠리고 숨겨야만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고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다.


짝사랑을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온 마음을 다해 그 마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많이 좋아해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가슴앓이야 물론 하겠지만 둘이 만나 사랑을 하는 것도 정말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혼자서 좋아하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을 받든 못 받든 아름다운 사람이고 내 마음도 애써 감춰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면 드러나는 대로 그대로 마주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지고 다음 사랑을 만날 때는 더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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