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리듬. 즐겁게 춤을 추다가도 규칙에 맞춰 흩어지고 다시 모인다. 선율은 질서 있게 움직이고 변주하며 살아 숨 쉰다. 리듬은 음악 속에도 있고, 책장을 넘기는 행동에도 살아 있다. 달릴 때도, 문제를 풀거나, 대화할 때도, 업무를 볼 때도 리듬이 있다. 무엇을 하건, 리듬을 타면 일이 잘 진척된다. 이렇듯 리듬이 있다는 건 흐름대로 잘 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남들보다 튀고 싶었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흐름보다 새 리듬을 원했다. 리듬에 대한 잘못된 집착은 번져갔다. 음률도, 질서도, 균형도, 조화도 다 팽개치고서, 오선지에 빼곡하게 그려진 음표를 보며 흡족해했다. 삶에 다양한 음표를 넣고, 꾹꾹 눌러 담았다. 악보가 완성되고, 건반 위에 손을 얹었지만, 몇 마디도 가지 못해 멈추었다. 그건 연주할 수 없는 악보였다.
오선지에 그려진 박자표는 4분의 4박자였다. 그렇다면, 모든 마디는 4박으로 가야 한다. 그건 약속이니까. 하지만 내가 연주해야 했던 악보의 한마디는 32박이었다. 나는 조용히 건반 위의 손을 거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쓴 글도 그랬다. 한 문장 안에 감정이 너무 많아,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벅차다는 평이 달렸다. 혹평을 받으면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내 삶은 박자를 초과한 음표 같았다. 모든 마디에 의미를 부여했다. 의미가 없는 건 하지 말아야지, 시간 낭비일 뿐이야. 자아실현도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해. 단 한 번의 마디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해. 좋은 결과에만 가치를 두었다.
내게 나쁜 결과란 설거지하고 버릴 물이었다. 이미 오염되어 정화조에 흘러가는 찌꺼기였다. 나는 뒤도 옆도 보지 않고, 악보 위에 음표만 바쁘게 그려 넣었다. 그렇게 스스로 신은 분홍신에 맞춰서 발이 부서줘라 춤을 췄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바빠지고 조급해졌다. 한번 박자를 놓치니 멜로디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움직일수록 발이 꼬이는 것 같았다.
그때쯤 — 신의 계시인지, 축복인지 모를 — 몸의 신호가 읽혔다. 발은 저절로 멈췄다. 인생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그러니, 과욕 부리지 말고, 음표들을 지워라. 마음의 소리는 조용히 파문을 그리며 내 안에 울렸다. 순응하기로 했다. 음표들은 불안에 싸여 잘 지워지지 않았다. 한평생 눌어붙어 함께 다녔더니 자아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삼십 대 중반까지 자가는 마련해야지, 결혼은 해야지, 애는 가져야지, 몇억은 벌어야지, 꿈은 이뤄야지. 저마다 타당한 논리로 음표들은 죽음을 거부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은 잊지 않았다.
나는 빈 종이 앞에서 연필을 쥐고, 무엇을 채우면 좋을까? 눈만 깜빡였다. 습관적으로 보기에 좋은 것들을 나열하다가 멈칫했다. 눈 깜짝할 새 악보는 화려해지고 있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오선지에 내 발목을 다시 묶고 있었다. 애써 풀어놓은 몸과 마음이 묶이고, 지금 순간의 리듬을 잃게 될 거란 예감이 나를 감쌌다. 이미 가본 길이었다. 나는 다시 종이를 비웠다.
예쁜 발자국만 남기려고 부단히 애썼던 삶이었다. 족적을 지우니 고요가 찾아왔다. 생활에 어찌 군더더기가 없을 수 있을까. 흘러간 것도, 채운 것도 모든 게 리듬이었다. 단순히 생계만을 위한 일도 있는 것이며 그 삶도 다 내 일부였다. 나는 박자표를 고치기로 했다. 리듬도 쉽게 바꿨다. 투박했지만 왠지 마음에 들었다. 오선지를 걷는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더 오래 걸을 수 있다는 자신도 생겼다.
한 마디에 여유를 두었다. 책을 읽다가 쉬고, 글을 쓰다가 사색을 즐기고, 돈을 벌러 출근했다. 돈을 벌 때는 의미를 접어두었다. 글을 쓸 때는 돈 생각은 잊기로 했다. 하나에 한 가지씩,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너무 빽빽해지면 다른 마디로 옮겨 그렸다. 하루를 집중해서 보내니, 웃음도 잦아졌다.
최근에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식당 일은 대체로 분석적 사고보다는 동료들과 손발을 맞춰야 하는 일이 대다수다. 주문받고, 초밥을 팔고, 테이블 정리와 설거지, 음식 준비를 한다. 이젠 제법 동선을 줄여가며 리듬 있게 과업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실수도 한다. 하루는 초밥 세일 멘트를 외치다 말이 꼬였다. 순간 매니저님과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손님이 몰릴 때는 정신 없이 바쁘다. 이럴 때는 메뉴부터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 조리된 음식에 토핑을 올리고, 주문 순서에 따라 손님에게 드린다. 빈틈에는 설거지를 하고, 매대에 비워진 초밥을 채운다. 다음 메뉴도 쟁반에 올려 진동벨로 알리면 손님이 받아 간다.
내가 주방의 손을 덜어드리려고 하다 보면 어수선해지기만 했다. 한동안은 일머리가 없어서 몸이 고생이었다. 일을 묶음으로 하지 않고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니, 리듬도 엉망이고, 머릿속도 뒤죽박죽이었다. 빈 쟁반을 들고 멍하니 서 있다가 옆에서 들리는 ‘그거 말고, 주문받아요!’ 하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내가 멈칫멈칫할 때마다 내 시선에서 도움을 주시는 동료분들 덕분에 나만의 리듬을 찾을 수 있었다.
동료들의 손놀림은 주방의 박자 같았다. 일은 순서에 따라 처리했으며,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다녀간 자리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손님을 맞을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 리듬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히면서 따라가다 보니, 나도 하나의 리듬을 갖게 되었다.
하나의 건반, 두 개의 멜로디. 나는 내 멜로디를 연주했고, 건반 끝에서 선생님의 서브 노트가 나를 이끌었다. 까랑까랑 울렸던 음률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멈추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던 힘. 주방에도 리듬을 지휘하는 연주자들이 있었다.
식당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샤워하고, 요기를 한 후 바로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켠다. 비장하게 앉아서 불세출의 역작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글을 쓰진 않고, 지금은 글을 쓰는 시간이라는 마음을 갖고 그냥 쓴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불을 끈다. 눈을 감고 잠이 오길 기다리다가 미소가 지어진다. 몸은 고돼도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드니까. 그런 시간이 모이니, 꿈도 편해지고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워지지도 않았다.
지금은 안다. 꽉 채운 마디도 못 갖춘마디도 모두 삶의 흐름이란 걸. 수학자가 계산한 것처럼 딱 떨어지는 악보도 멋있지만, 설렁설렁 흐르는 느슨한 구성도 듣는 맛이 있다. 연주하다가 틀려도 손 한번 털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인생은 계속되고, 연주는 흐르니까. 음악이 끝나고 손을 뗀 후에야 내가 어떤 연주를 했는지 온전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손끝에 흐르는 전율이 그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