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본다"
별의 순간(Sternstunde 슈테른슈툰데)이란 용어가 있다. 미래에 운명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 행동 또는 사건에 대한 은유를 뜻한다. 이 용어는 점성술에서 차용되었는데 이는 인간의 출생 당시 별들의 위치가 본질적으로 삶의 진로를 결정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본다."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오스카가 말하는 '별'이 이 '별의 순간'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말로 바꾸면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이직을 하면서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공적으로 짜인 업무체계에서 일하다 그야말로 무한대의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는 환경으로의 이동. 업무자체도 정적에서 동적으로 범위는 더욱 크고 넓어졌다. 그만큼에 대한 보상도 따라오니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는 것은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했다. 업무 자체에 적응하는 것보다 시스템에, 완전히 바뀐 다른 인적, 물적 구성 요소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이다. 시스템과의 싸움 그리고 사투.
그러나 혹 후회를 하려고 하는 순간 뒤돌아 별의 순간을 떠올려 본다.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스카우트 제의를 수락함으로써 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리고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철저히 나의 몫이었다. 이직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비슷한 곳에 최종 면접까지는 합격한 상태였으므로 이 제안은 뜻밖이었고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무대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은 사실 보통의 각오가 의지만으로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안정을 택했다면 비슷한 곳에 가서 그동안 해왔던 대로 하는 것이 나았다. 큰 틀은 다를 수 있지만 세부적인 것은 거기서 거기니까.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러나 전혀 다른 곳으로 처음으로 생각지 못한 선택지를 받았을 때는... 음 당황했다.
그러나 결정했다. 과감히 옮겨갔다. 만약 이 제의를 거절하고 원래 붙었던 비슷한 곳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이전 직장에서 느꼈던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불만을 그대로 하고 있을 것 같다. 옮겼지만 옮긴 것 같지 않은. 불만과 고민을 그대로 가져가는 이동.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전의 고민과 우려사항은 말끔히 사라졌다. 대신 또 다른 걱정과 고민들이 스멀스멀 올라고 있긴 하다.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해결가능하고 또 해볼 만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는 빠듯하게 움직이는 만큼 재미있고 매일매일 새롭다. 이전이 철저하게 J의 환경에 놓여 있었다면 지금은 완벽한 P의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매일매일 예측할 수 없는데 그 안에서도 나만의 질서를 만들고 체계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P세계에서 J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이런 마음으로 적응하고 있다. 꼭 내가 P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가리라.
지나고 생각해 보니 인생의 여러 국면의 순간마다 기회 혹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진로에서부터 첫 직장, 목표했던 곳으로의 이직 등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이 '별의 순간'이 다 될 수는 없었다. 선택해서 오히려 후회하는 때도 있었고,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도 했다. 스스로 사지를 걸어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때는 모든 걸음걸음이 '별의 순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선택에 더욱 실망감만 커져갔다. 그러나 그런 순간 원망하기보다는 다음 별의 순간을 위해서 차곡차곡 쌓아놓고 체화시키는 연습을 했다. 다음 선택의 순간에는 보다 더 유리하기를, 보다 더 잘한 선택이기를 바라면서.. 물론 그러했는지 판가름이 나는 건 지금이 아니라 먼 훗날 죽기 직전이겠지만.
한편으론 별의 순간이 될지 아닐지를 내가 만들 수도 있다. 이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할 수 있는 역량을 총 동원하고 뭐든 다 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이 별의 순간이 아니었다면 어쩔 수 없다. 유감이고 서운함은 다소 크겠지만. 그리고 그것을 위해 했던 노력과 열정들은 또 다른 별의 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처음에는 '별의 순간'과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는 '별'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조금은 다른 것 같다. '별의 순간'은 결정적 순간 자체, 나중에 어떤 영향이 될지 모르지만 선택 그 자체를 뜻하고 오스카 와일드의 별은 '별의 순간' 자체를 알아보는 것, 그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임을 캐치하는 순간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별의 순간'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별' 자체를 모르고 지나가니 선택 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항상 나의 별은 어디 있을까 눈을 크게 뜨고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별의 순간이 아님에도 '내가 볼 때 별인 것 같은데 해 볼만한다'라고 뛰어 들어서 그것을 나의 별의 순간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생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의 별의 순간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별을 보는 눈을 기르고, 별인지 달인지 알아보는 식견도 필요할 것 같다. 다 같이 불만을 말하는 순간에도 그저 불평으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별이 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또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것 같다. 넘사벽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어렵다고 난 안된다고 포기하고, 이미 별의 순간은 다 지났다고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그 시간에 이미 '별'임을 알아채고, 별의 순간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자기만의 별을 차지하겠느냐 말이다. 당연히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