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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Dec 12. 2021

100 달러 소파

유학생 일기 2

    시험기간인데 집중이 잘 안 되어서 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낡은 소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시험기간에 이래도 되는가 싶지만 시험기간에 하는 딴짓이 제일 재미있지 않은가. 이 소파는 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한 중고거래의 산물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호구 잡히고 구매한 소파이다.

우리 집 소파. 앞에 있는 탁상은 소파 판매자에게 공짜로 얻어왔다.

    나는 물건을 구매할 때 중고거래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고 딱히 중고거래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학교 4학년부터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나는 학교 앞 작은 분리형 원룸에서 자취를 했는데 여느 대학가 원룸이 그렇듯 내 방에는 책상, 의자, 침대, 옷장 등등 모든 필수적 가구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었다. 따라서 그동안 나에게 자취란 가구가 다 마련되어 있는 공간에 내 짐을 풀고 몸만 들어가 사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아파트를 구하려고 알아보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어진 아파트도 가구가 없는 게 기본값이었다. 가구가 갖춰진 방은 그렇지 않은 방보다 월세가 더 비싸거나, 아니면 아파트 회사에서 연결해 준 가구 회사에 월 렌트비를 내고 가구를 빌려야 했다.

    

    내가 계약한 아파트는 1b/1b 아파트로 거실과 방이 분리되어있고 화장실이 하나 있으며 가구는 없다. 아파트에 처음 입주한 날 집 안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기본적으로 갖춰진 냉장고와 쿡탑 등의 부엌 살림살이를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허허벌판에 나 혼자 휑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학교에서 다 같이 MT를 갔는데 그 큰 숙소에 나만 두고 다들 집에 가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거실은 나무 바닥이고 방은 카펫이 깔려있다. 카펫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 위에 이불 깔고 자기가 영 찜찜해서 거실 한 구석에 한국에서 들고 온 얇은 여름 이불 두 장을 반으로 접어서 겹쳐 쌓아 최대한 푹신하게 만든 후 그 안에 꼬물꼬물 들어가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누웠다. 깜깜한 거실 한구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가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가구를 내 돈으로 마련하기에는 재정적으로 출혈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중고로 구할 수 있는 가구는 최대한 중고로 구하는 수밖에.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아파트 주민 간의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 내 소파도 다른 아파트 입주민으로부터 구매한 것이다. 가장 필수적인 가구인 침대, 매트리스, 책상, 그리고 의자를 아마존에서 구매한 후 나에게는 하나의 욕구가 생겼다. 바로 거실에 소파를 들이고 싶다는 욕구였다. 잠시 쉬기에는 왜인지 모르게 불편한 책상 앞의 의자, 누우면 자꾸 잠만 자는 침대 말고 나에게 어딘가 잠시 앉아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분명 집인데 어딘가 집 같지 않은 집. 딱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소파였다. 그날로 나는 온갖 중고 거래 페이지들을 뒤져가며 가까운 곳에서 내가 옮길 수 있는 소파를 찾았다. 며칠 후, 아파트 주민 게시판에 사진 속의 소파를 100달러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막상 미국에서 중고거래를 한다니 떨려서 하루 정도 주변 사람들에게 소파에 대한 의견을 구해본 후 소파를 구매하기로 의견을 굳혔다. 판매자에게 구매의사를 밝히니 본인은 소파를 옮길 때 도와줄 수 없으니 친구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간이 잘 안 맞아서 결국 친구 한 명과 둘이서 옮기기로 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작은 줄로만 알았기에 둘이서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눈앞에서 마주한 소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고 무거웠다.. 둘이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지 겨우겨우 소파를 밀 수 있었다. 그리고 소파 의자 부분은 한쪽은 너무 쭈글쭈글해서 인조 가죽 부분이 부분 부분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어야 했다. 판매자 집에서 소파를 꺼내 둘이서 젖 먹던 힘을 다 해 복도에서 소파를 밀고 다시 그 소파를 세워서 엘리베이터에 옮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는 다시 눕히고, 그 후 소파를 엘리베이터에서 꺼내느라고 소파를 몇 번을 옆으로 굴렸다. 엘리베이터를 너무 오래 동안 사용하고 있어서 설상가상으로 엘리베이터 문은 자꾸만 닫혔다가 중간에 끼인 소파에 부딪혀 다시 열리기를 반복했다.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연신 헛웃음이 났다. 어떻게 소파를 밀어서 겨우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집에 소파를 밀어 넣을 수가 없어서 소파를 여러 가지 각도로 밀어보았다. 결국 집 안에 소파를 들이는 것에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나무로 된 아파트 현관문에 크게 스크래치가 났다. 스크래치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친구와 둘이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소파를 함께 옮겨 준 고마운 내 친구는 우리 집을 찾아올 때면 문에 난 스크래치를 보고 찾아온다.


    소파를 구매하고 며칠 후, 아파트 주민 게시판에는 내가 구매한 소파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는 소파들이 FREE 또는 $50 정도의 가격으로 올라왔다. 그 이후에도 올라온 소파 판매글들을 보면 내가 산 낡은 소파보다 비싼 소파들은 없다. 왜냐하면 짐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주로 판매를 하기 때문에 가구들을 아주 싼 값으로 내놓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줄줄이 올라오는 소파들을 보며 조금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이미 사버렸으니 행복하게 사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를 함께 옮겨 준 친구 디니(가명)는 생생 정보통 같은 친구로 여러 가지 생활 속의 지혜들을 많이 알고 있다. 또한, 특유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기분 좋게 흥정도 아주 잘한다. 그녀는 나에게 추후 중고거래를 할 때, 어차피 다 버리고 갈 물건들일 테니 가격을 조금 깎아보거나 혹시 더 팔거나 그냥 줄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소파 판매자에게 내가 이 아파트에 막 입주해서 가구가 없는데 혹시 추가로 팔 생각이 있는 물건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사진 속에 보이는 가벼운 철제 탁상을 받았다. 낡은 소파를 비싸게 팔아서 판매자를 조금 얄미워했던 것이 미안했다.


    중고거래도 흥정도 내가 한국에서만 지냈다면 겁이 많은 내 성격에 딱히 시도해본 적이 없을 일들이다. 그리고 친구와 말도 안 되는 소파를 둘이 옮기면서 깔깔댈 일도 없었을 것이다. 100달러짜리 낡은 소파는 집 수도가 고장 나 갈 곳이 없는 친구에게 며칠간 잠자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편히 쉬다가 갈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 되어주었다. 물론, 나에게도 공부하다가 지칠 때면 잠시 누워 휴식을 갖는 안락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침대에 누워있지 않으려고 구매했음에도 이상하게 소파에서도 앉기보다는 기대어 눕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낡은 소파와 또 어떤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작은 행복들이 함께하는 순간들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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