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Feb 18. 2024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이라 할지라도,

MBC금토 드라마 <밤에 피는 꽃(2023)>

꽃은 해를 보며, 해를 향해 피고 자란다. 햇살을 가득 머금은 꽃이 피어 있는 시간에 형광등 아래에서 일하느냐 아름다운 풍경을 보진 못하지만 꽃이 피어나는 건 한낮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밤에도 피는 꽃이 있지 않을까?  MBC금토드라마 <밤에 피는 꽃>의 제목은 이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과부다. 조선시대 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남편을 그리며 매일같이 곡을 하는 것뿐,  하얀 소복 말고는 입을 수 있는 옷이 없고 담장 밖으로도 나올 수 없다. 그러다 남은 평생을 남편의 무덤 곁에서 여막을 짓고 사는 여며 살이를 하거나,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 삶을 강요받았다. 제약된 삶을 사는 과부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과부인 여화(이하늬 분)는 조선에서 왕보다 큰 권력을 가졌다는 좌의정 석 씨 집안의 맏 며느리였으나, 의로운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둔 조여화이기도 하다. 여성의 위치가 낮았던 시절이었음에도 여화의 오라버니는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었고, 뛰어난 재능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자유로운 그녀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왕의 부름을 받아 궁에 입궐한 뒤 소식이 끊긴 오라버니는 그녀가 원치 않는 석 씨 집 안으로 시집가는 걸 막아주지 못했다. 더욱이 신랑은 그녀를 데리러 오는 길에 도적 떼에 죽어 연화는 혼례를 치르기도 전에 과부가 되고 말았다.


여화의 오라버니의 실종은 선대 왕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이는 드라마가 풀어가는 중심 이야기로,  <밤에 피는 꽃>은 추악하고 어두운 곳에서 밝혀지는 진실을 뜻한다. 동시에 낮에는 과부로 담장 안에 갇혀 시집살이와 남편을 그리는 것 외에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여화가 밤이 되면 복면을 쓰고 담장을 넘어 가난하고 억울한 이를 돕고 나쁜 놈을 응징하는 이중생활을 통해 무력한 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피어나는 꽃이 품고 있는 의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회에서 여화는 오라버니가 남긴 선대 왕의 죽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왕에게 전한다. 그리고 묻는다. “역모의 증좌를 찾은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왕은 역모를 꾸민 좌상을 제거하고 아바마마의 뜻대로 만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지만, 여화는 다시 한번 이렇게 되묻는다. “증좌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릴 생각이셨습니까? “ 여화는 조선에서 가장 하찮은 과부의 몸으로 지아비를 그리고 곡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과부로 죽어가는 것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매일매일 생각하며 복면을 쓰고 담을 넘었다. 오늘 죽더라도 무엇을 하지 않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이유가 없으니 어떻게든 살고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능력껏 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오라버니의 행방에 대해 알게 되고, 왕이 찾던 증거까지 찾게 된다.


 “전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백성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매일을 보내셨는지요?” 길어지는 밤을 탓하며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이들에게 여화의 마지막 물음은 불편하게 들릴 것 같다. 왕 역시 꽃이 필 낮만을 기다렸다. 밤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밤은 어쩌면 아무 상관없을지 모른다. 여화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낮이 더 어두운 밤이었을 수도 있다. 너무 뼈아픈 말이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여화는 자신에게 찾아온 밤을 원망하는 대신 담을 넘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왔고, 무력한 시간인 밤에 꽃을 심어 키어냈다. 왕은 그런 세월을 살아온 여화에게 좌상을 잡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일 말고, 백성을 위해 임금인 자신이 오늘 해야 할 일,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 그 당연한 것을 잊고 살아왔음을 부끄럽게 여긴다. 왕이 느끼는 부끄러움이 뭔지 알 것 같아, 덩달아 고개를 떨궜다.


어떠한 큰 목표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그 바람은 보기 좋은 대상이 아닌 이뤄내기 위해 매일의 삶을 단단히 쌓아야 한다. 설사 바라던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물으며 행동하며 살아온 성실한 시간이 인도한 곳에는 나다운 무언가가 놓여 있다. 이후 여화는 혼인에 거짓된 사정이 밝혀지면서 과부도, 석 씨 집안의 며느리도 아닌 온전한 조여화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낮과 밤이 다른 여화의 삶에서 가문에 종속되어 사는 낮보다 자신의 의지로 담을 넘어 행동하는 밤이 조여화에 가깝다. 그러니 <밤에 피는 꽃>은 조여화, 그 자체다.

드라마를 보며 이렇다 할 손글씨 작업도 하지 않고 봤다. 딱히 쓸 대사도 없었고, 무거운 대사를 주고받는 분위기의 드라마도 아니었다. 가볍게 즐기며 보았으나 그 끝에 이렇게 확실히 달 빛을 머금고 핀 아름다운 꽃을 보게 해 주었다. 더욱이 여화가 모든 일이 끝나 자유로워졌을 때 자신을 기다리겠다던 종사관 수호(이종원 분)에게 가는 것이 아닌, 조여화로서 어떻게 살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마지막까지 <밤에 피는 꽃>다웠다. 거기에 더해 개인적으로 종사관과의 러브 라인을 주로 ‘못다 한 이야기‘의 에필로그에서 풀어낸 것이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적절한 설렘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여자 여화’가 아닌 밤이라는 시련 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조여화‘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한 연출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재미있게 보고 사이다로 카타르시스도 느끼지만 마지막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라면, 조금 허탈해진다. 그런 면에서 액션과 코믹을 활용해 강약을 잘 살리고, 마지막에 묵직한 한 점을 남긴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은 참 알뜰살뜰한 드라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한 행복을 함께 찾아가는 어디쯤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