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2024)>
파란색은 남주, 노란색은 여주.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탄 버스는 파란색, 수영장에서 입을 맞춘 뒤 남주가 타고 온 버스는 초록색. 초록색은 파랑과 노랑을 섞을 때 나오는 색이다. 떡밥이 난무하며 90년대 감성에 인간포카리들이 등장하는 tvN 월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덕분에 직장인들이 기피한다는 월요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임솔(김혜윤 분)이 최애인 이클립스의 보컬, 류선재(변우석 분)가 비극적인 선택을 한 현재를 바꾸기 위해 무려 15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다. 아직 4회밖에 방영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반전을 거듭하며, 과거와 현재가 혼란해지는 타임슬립 장르 특유의 흥미로움과 솔은 몰랐던 선재의 애절한 순애보 서사 터지면서 연일 화제몰이 중이다. 그러니 지금, 반전 넘치는 이 드라마에 대해 글을 쓰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브런치에 서둘러 글을 남기는 건, 이들을 통해 보여주는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싶어서다.
임솔은 선재가 죽던 날, 열아홉이었던 15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기 전이기도 하다. 임솔은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수영 선수였던 선재가 무리하게 시합에 나가는 일을 막아 어깨 근육이 망가지지 않게 할 수 있고, 계속해서 수영을 하게 되어 가수로 데뷔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악플에 시달리다 우울증으로 생을 달리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며,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도 막는, 두 사람 모두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하지만 선재에게 시합에 나가면 어깨 근육이 망가져서 영영 수영을 못 하게 된다고 말하면 시간이 멈췄다. 핸드폰에 문자로 적어서 보여줬지만 액정 속 글자가 사라져 있었고, 달력에 사고가 난 날을 표시하면 글자가 지워지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마치 천기누설을 막기라도 하는 듯,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거슬러 왔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선재의 곁에서 그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것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 임솔은 어째서 과거로 온 것일까? 과연 타임슬립은 신이 준 기회가 맞기는 한 걸까?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나의 간절함과 너의 안간힘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건 아니다.
임솔이 아는 선재의 과거는 어깨 수술 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배 시합에 나갔다, 회전근개가 파열되면서 수영 선수를 그만두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임솔이 과거로 온 지금, 선재는 대통령 배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딴다. 일어난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는 듯, 시합 후 연습에서 선재 어깨 근육은 결국 파열되고 만다. 선수 생활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선재를 보며 그녀가 느낀 절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와 같은 결과의 모양 때문에 그 결과를 만들어온 과정을 놓치면서 생겼다. 결과가 같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임솔이 아는 과거에 선재에게는 금메달이 없었으나 지금은 있다. 그때 선재 곁에 임솔이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과거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이 보여도 임솔이 아는 과거와 다른, 달라진 구석이 이처럼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선재는 불가능한 상황을 바꿔 선수 생활을 하게 되는 가능성을 만들 수 있고,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해도 임솔이 아는 과거처럼 이 사건이 그에게 상처로 남지 않을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미래다. 자꾸만 지워지는 사고 날짜에 적은 글씨나, 미래를 말하면 시간이 멈춰버리는 이상한 현상은 신의 횡포가 아닌, 지금의 임솔과 선재에게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해 단정 짓듯 말하지 않게 하려는 신의 배려는 아니었을까? 미래를 향한 걱정과 불안에 사로 잡혀 오늘을 살아감으로 만들어지는 미래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놓치지 말라는 듯, 과거 임솔의 집에 일어났던 화재는 반복되지 않았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실제로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니 설사 선재가 수영 선수를 그만두고 가수가 된다 해도, 그 끝도 그러할 거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임솔은 과거로 왔다 다시 현재로 돌아가게 된다. 어떤 이유로 현재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과거에서 2달 가까이 시간을 보낼 동안 2023년 현재의 시간은 1분도 흐르지 않았다. 선재가 죽었다는 뉴스 보도는 똑같이 흐르고 있었고, 자신의 두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뀐 게 없는 듯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갔을 때 선재와 찍은 사진이 죽은 선재의 집에서 나왔다. 임솔이 아는 한, 그녀가 과거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선재와 솔의 사이에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다시 돌아온 현재에 달라져 있는 장면을 만들어 냈다. 그사이 어떤 이야기가 쌓였을까? 그 이야기를 만든, 매일, 매일은 어떤 색들로 채워졌을까?
드라마 인물 소개 중 임솔이 소개문구에 이런 질문이 적혀있다. “기적처럼 주어진 시간 동안 과연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임솔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게 되면서 과거로 가는 방법을 깨닫는다. 선재의 팬이었던 임솔이 구매한 선재가 착용했다던 손목시계가 타임머신 역할을 했다. 고장 난 줄 알았던 시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오자 3시에서 2시로 시간이 바뀌어 있었다. 임솔은 자신이 과거로 올 수 있는 기회가 2번 남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자신이 잠시 현재에 가 있는 사이 보름가량 흐른 과거에서 틀어져버린 선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를 쓴다. 자칫 이중인격자로 보일 수도 있는 기막힌 상황조차 솔이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임솔에게는 선재와 함께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해졌다.
‘주어진 시간’의 ‘기적’은 임솔에게만 주어진 기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시간이란 이렇다. 눈 한번 깜빡이는 찰나에도 ‘오늘’은 서둘러 ‘어제’가 되고, 나를 순식간에 '내일'로 보낸다. 모두 한정된 '주어진 시간'을 산다. '오늘'을 충실히 산다는 건 그렇기에 '과거'와 '미래' 모두를 향한 일이자, 기적처럼 운명을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임솔은 과거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를 선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모양으로든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서로를 구하고 지키기 위해 매 순간 아낌없이 달려가고 있는 임솔과 선재이기에, 이들이 만들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나란 사람은 걱정과 염려를 숨 쉬듯 하는 성향인데, 미래를 바꾸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속에 좌절한 솔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나 미래를 향한 희망과 가능성들에 생각하고 있다. 속단하기 이르다. 두 사람의 미래도, 나의 내일도. 그저 오늘을 힘 있게 살뿐, 희망을 갖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