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처음으로 10km를 뛰었다. 처음 뛰었을 때 1km를 3, 4번 쉬어가며 간신히 뛰었기에 10km를 완주한 순간 조금 벅찼다. 처음 달린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다이어리에도, 인스타에도, 스토리에도 기록돼 있지 않았다. 달리기는 이사를 오면서 멈춰진 운동 루틴을 새롭게 이어갈 요가원을 찾기 전까지 임시로 선택한 운동이었다. 오늘 아니면 내일, 길어봤자 한 두 주 하고 말 운동이라 특별하게 인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달리기에 대한 기록은 3월부터 자주 등장한다. 핸드폰에 설치한 나이키런클럽 어플을 통해 기록을 측정해 나갔고, 인스타 스토리에 인증하며 스스로를 독려했으며, 다이어리에는 달리면서 느낀 점들을 적었다. 마침내 브런치에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상상을 적으면서 대회를 향한 마음을 가졌고, 이때부터는 꼼꼼히 달린 날과 거리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3km, 4km, 5km 한 달에 1km씩 늘려나갔지만, 무더워진 날씨 속에 기록은 3-5km 사이에서 나아지지 못했다. 과연 이런 상태로 10km를 뛸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주 3회 꾸준히 뛰었고, 날씨가 한풀 꺾인 10월의 어느 날 마침내 10km 완주에 성공했다.
고작 10Km 뛴 것 갖고 호들갑인가? 마라톤을 끝낸 것도 아닌데 너무 빨리 축배를 드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몇 차례 더 10km를 뛰게 된다면 무감해질 이 숫자에 대해, 처음 느낀 벅찬 감정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스스로를 의심하던 순간에도 움직이던 두 발이 마침내 원하는 곳에 닿게 한 경험을 오래 기억하길 바랐다. 그러다 문득, 다시 한번 처음 달린 날을 떠올려 봤다. 언제였는지 날짜는 물론, 힘들었다는 느낌 말고는,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느끼며 뛰었는지 이놈의 환장할 기억력은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고, 어느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록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평범한 그날이, 벅차오르는 성취의 경험을 탄생시킨 시작점이었다. 그동안 기록하지 않았던, 기억되어지지 않은 수많은 밋밋하고도 지루했던 지난 시간은 앞으로 있을 수많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과 의미 있는 기록의 첫 날인 셈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자 기억에도 없는 처음 달린 날이 10km를 완주한 날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내년 6월이면 입사 10년이 되고, 7월에는 브런치 작가가 된 지 10년이 된다. 드라마대사를 옮겨 적는 활동도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부터였으니까 인스타 활동도 10년이 되는 셈이다. 의미 있는 숫자지만, 어영부영 시간만 채웠다는 생각이 들어 10년이란 세월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나의 숨겨진 지난날이 어떤 반짝이는 순간을 가져올지 모르는 일이라며 나는 또다시, 철없이 희망을 품고야 만다. 그러면서 우선 나를 격려해주고 싶어졌다. 곧 있으면 10년을 채우기 때문이 아닌, 시작점을 착실히 만들어가고 있는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별다른 의미 없이 느껴져 흘려보낸, 기억되지 못한 순간의 나 또한 대견하다고 말이다.
기억되지 못한 순간의 나를 위해 격려하는 글을 꼭 남겨 놓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