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덕후

by 양보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손글씨 쓰는 양보”로 활동 중이다.


방송 중인 드라마를 보며 와 닿은 대사를 손글씨로 적어 올리고 있다. 벌써 5년 째다.

혼자서 막연히, 계정을 드라마 대사로 운영한 지 2년쯤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전 대학교 입학할 때 팔로우를 해서 올해 졸업한다는 인친의 DM을 받고서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는 걸 알았다. 계정 게시물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 보니 2015년부터 드라마 대사를 올리기 시작했더라.


처음에는 좋아하는 책 속 문장이나 노래 가사, 일상 사진을 올리다 “손글씨 쓰는 양보”라는 계정명으로 활동을 한지는 2년쯤 되었다. 그래서 내 기억이 DM을 보내준 인친과 달랐던 것 같다.


많고 많은 문장 중 왜 하필 드라마 대사였을까. 책을 읽고 문장을 손글씨로 작업해 올리는 북 계정(@book_ybo)도 있지만 드라마 대사 계정에 비하면 멈춰있는 듯 보인다. 책도 열심히 읽지만 아무래도 애정이 드라마에 더 많은 듯하다.


작년에 본 드라마가 23편이다. 완결된 작품 중 정주행을 한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33편의 드라마 대사를 손글씨로 작업했다. (2020년 9월을 기준으로 살펴보니 벌써 24편을 시청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일지 모르지만 작업에 할애한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상당한 시간을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데 사용했다.


보통 한 회차 드라마를 보며 서너 장면의 대사를 손글씨로 옮긴다. 짧게 대사를 주고받은 장면도 있지만 대개는 인스타그램이 하나의 게시물에 허용하는 최대 장수 10장을 꽉 채운다. 작업의 순서는 이렇다.


드라마를 보다 마음에 드는 대사가 나오면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보면서 해당 장면을 캡처한다. 그와 동시에 대사를 받아 적는다(넷플렉스 자막 만세!). 그러면 1차적인 준비 완료. 이후부터는 대사를 손글씨로 옮겨 적고 이에 맞는 장면을 불러와 배치하면 대사 하나가 완성된다. 보통 하나의 시퀀스에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평균이며 이보다 더 걸리거나 덜 걸리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나는 장면마다 느낀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 보면 드라마 속 이야기가 내 삶에 부딪혀 생각을 남긴다. 그 작업까지 포함하면 하나의 게시물이 완성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생활의 중심이 드라마와 작업으로 돌아간다 봐도 무리는 아니겠다.


삶의 모양이 단순하고 어디 돌아다니기를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이만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 다만 꾸준히 팔로우 수가 늘면서 지금은 어떠한 책임감과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고작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갖기엔 너무 과한 생각일까? 실제로 오랜 작업으로 손목에 무리가 와 병원까지 다니면서도 게시글을 올리는 나를 보며 유난이라고 말하는 가까운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스타그램 이라는 해쉬태그를 붙여도 되는지 결정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생각이 많은 편이다.


그렇기에 챙겨 보진 않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드라마를 볼 수 있어 좋다는 말이나, 다시 한번 장면이 준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게 작업해줘서 감사하다는 말, 부족한 코멘트를 보면서 공감하고 위로받았다는 반응을 볼 때면 그 마음이 과분하여 나는 열심을 내게 된다.


누군가는 공감과 위로를 위해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사회에 전달할 메시지가 있어 펜을 잡기도 한다지만 내겐 이런 이유 모두 거창하다. 대사를 손글씨로 작업해서 업로드하는 일도 그러면서 느낀 점을 기록하는 일 모두 소소하게 즐기는 취미이자 그 날, 그 순간 내게 와 닿은 마음을 잊지 말라고 내게 쓰는 이기적인 몸짓에 불과하다. 다만 오고 가며 남겨준 따뜻한 시선과 반응이 이기적인 행위가 가득한 이 공간을 이타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다행히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성격이라 매주 방송되는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작업하고 있다. 그렇게 4-5년의 시간이 쌓였다. 성실히 올라오는 게시글 때문인지 방송 관련 종사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모두 편히 들려 대사를 매개체로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소중하여 가능한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


이 책에는 근 일 년간 본 드라마를 중심으로 느꼈던 여러 생각을 담았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드라마 덕후로서 그려온 로망이기도 하다. 이를 꿈꿀 수 있게 부족한 글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며,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주신 그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아는 드라마라면 공감할 수 있겠고,

보지 않은 드라마라면 영업에 성공할 수 있길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