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오매불망 기다리던 드라마가 시작했다.
'평행세계'라는 낯선 주제가 불안감을 줬지만 설사 이 주식이 망하는 주식이라도 나는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좌(이)민호 우도환’이라는 최애 조합을 놓칠 수 없기 때문에!
'네가 그러니 연애를 못하지. 현실에 저런 남자 없어.'
흠.. 어디서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너무 자주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힌 걸까? 드라마틱한 연애를 꿈꾸느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연애 이상주의자'로 보는 한심한 시선은 이제 익숙하다. 솔직히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실제로 나는 일상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이 일어나길 꿈꾼다. 다만 내가 꿈꾸는 순간이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해 사랑에 빠지는게 아닐 뿐이다.
최근 <멜로가 체질>을 다시 봤다. 이미 아는 내용, 익숙한 대사지만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새롭게 다가온 장면이 있었다.
3회에서 은정(전여빈 분)은 한 종편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대학생 시절 어쩌다 사이가 틀어진 친구 소민(이주빈 분)을 만난다. 상대방이 출연하는 줄 알았다면 둘 중 한 명은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소민이도 MC교체로 처음 프로그램에 참석한지라 서로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처럼 녹화 시간 내내 서로를 공격했고 지칠 무렵 녹화가 끝났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은정은 소민의 매니저 민석(김영준 분)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은정에게 녹화 시간 동안 자신한테 소중한 사람이 무안당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고 말한다. 텍스트로만 놓고 봐도 불편한 상황이다. 그도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은정에게 이런 말을 해야 했을까. 내가 은정이었다면 나도 무안했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은정은 그렇게 반응하는 대신 자신이 한 행동을 돌아본다. 은정이 성숙한 사람이라 그렇게 행동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민석의 조심스러우면서도 예의 있던 태도가 미친 영향이라 생각됐다.
민석은 “외람되지만”이라는 말로 대화를 청했고, 소민이가 백치미가 있는건 사실이지만 관심사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뿐 그녀도 똑똑하다며 인정과 위트를 섞어 말했다. 매니저인 그로서는 해야 하는 말이었다. 어려운 말이 겸손한 태도와 부드러운 형태를 거치자 은정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고, 녹화시간동안 주변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과 소민을 향한 오해 섞인 감정까지 다시 한번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후 은정이 '인간 소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찐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드라마틱한 순간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성숙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그 뒤 더 나아진 상황들 말이다. 표현이 서툰 나는 등장 인물들이 만드는 이런 상황이 한없이 부럽다. 내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의 팔 할이 대사에 있고, 대사를 손글씨로 옮겨 적게 된 것도 이런 드라마틱한 삶에 대한 바람 때문일지 모른다.
연애로 고민될 때는 <봄밤> (MBC, 2019)이나 <닥터스> (SBS, 2016), <괜찮아 사랑이야> (SBS, 2014)를 본다. 자신의 감정을 풀어가는 주인공들의 또박또박한 대사와 마주하는 정직한 시선을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시기마다 찾아오는 고민 앞에 <나의 아저씨> (tvN, 2018), <디어 마이 프렌즈) (tvN, 2016), <청춘시대1> (JTBC, 2016) 같은 드라마를 다시 본다. 최근에 본 <스토브리그> (SBS, 2019)도 직장인으로서 드라마틱한 순간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현실은 짜인 각본이 없기에 드라마처럼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지만, 진심이 전해지던 장면을 떠올리며 당신과 내가 사는 삶에 드라마틱한 순간이 일어나길,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