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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9_4209

퍼플아티스트의 답문



  안녕하세요, 20210619_4209 님 :)

  오늘은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어요?




  마주 본 사람이 따라 웃을 만큼 해맑게 웃고, 근심은 있으나 '어느 집이나 근심 한 가지 가지고 산다'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것을 찾아 균형 맞추는 지혜로운 당신. '뭐 한 번 훔쳐다 먹은 적 없고, 시장에서도 10원 한 번 안 떼어먹었고, 지금까지도 저 사람이 밥 한 번 사면 나도 밥 한 번 사거든' 한평생 올곧고, 정직하게 살아온 당신이기에 죽음이 안 무서울 수 있는 것일까요?


열아홉 칠월 스무하루 날. 세 명의 친구들과의 가출(심지어 1차 시도는 실패해서 두들겨 맞고, 2차 시도에 성공하며)로 시작된 서울 살이. 처음에는 어리숙했기에 모든 것이 쉽지 않았고, 결혼 후에는 '내가 나가면 우리 애들 고아원도 못 가고, 천상 길에 내버리겠다. 안 된다. 이제는 내가 산다' 마음 먹었지만 뜻대로, 뜻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던 일들에 만만하지 않던 생()이었지요.


'선택의 순간마다 정직(正直)하고자,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행동해온 삶은 이토록 빛나보이는구나'


당신이 곰곰이, 기꺼이 내어주신 이야기를 들으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 살아낸 시간으로 제게 본보기를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할머니를 엄청 예뻐하셔서 오빠들이 질투했나 봐요'


  '할머니, 때때로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계속 같이 있다가 '아주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다 들었어요. 어쩌면 아버지께서도 사는 동안 그토록 예뻐하고, 사랑했던 할머니이니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어요'


  '항상 함께했던 건 할머니였는데.. 그 말(임종을 못 보면 자식이 아니다)은 너무하네요.. 저 같았으면 정말 정말 속상했을 것 같아요..'


  제가 넌지시 건네는 말들마다 '맞다, 맞다', '그렇네!', '그런 가 보네!', '그런 거 같다!' 답해주시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당신의 '지금'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지, 아마 당신은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바라본 저만큼은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특히 공감해주시던 말이 있었지요.


'아버지께 그토록 사랑 받아본 할머니셔서 자식들에게도, 손주들에게도 그렇게 사랑을 주실 수 있었나봐요'


물론 사랑을 주는데 있어 받아온 경험이 항상 닮아있거나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허나 당신 삶에서만큼은 받은 사랑과 주는 사랑이 꽤나 상관이 있어보였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 딸 먹여야지' 잘 익은 홍시를 고르고 골라 따던 마음. 논 갈러 갈 때면 '으쌰!' 지게 위에 딸을 앉히고 걸어가던 마음. 떨어진 밤 중에서도 예쁜 밤을 골라 '구워서 우리 딸 까줘야지' 주머니에 담고, 소죽을 쑤며 살짝 짜개질만큼 맛있게 구워 아들들 몰래 까주던 마음. 그 마음들을 오롯이 받은 당신이었지요.


만날 수 있다면 백 번이고 만나고 싶고, 시간 지나 얼굴은 희미해졌지만 사랑받던 순간과 추억만큼은 간직하고 있다던 당신의 기억, 그 속의 아버지. 어느 누가 무어라 말한들 저는 이 둘이 만날 수 있다 믿으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떨어져있던 사이 그토록 고생하며 나이 들었어도.. 분명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끌어안고, 그간 어찌 지냈는지 잘 익은 홍시와 노릇하게 짜개진 밤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리라 그려봅니다. 어느 날 생긋이 웃으며 꼿꼿하게 마주한 시간의 바깥에서 분명 그럴 수 있으리라 가만히 미소를 머금어봅니다.




  남편을 '남편'이 아니라 '○○ 할아버지'하며 딸, 아들, 손녀들 이름으로 번갈아 부르시는 걸 들으며 '당신의 가족들을 무척 사랑하시는구나' 느꼈습니다. 그런 당신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아보았기에 그들 역시 사랑을 줄 수 있는 씨앗을 품은 사람들이겠지요?


가끔 화가나기도, 가끔 서운하기도, 가끔 애통하기도 했을 테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받고, 주던 그 순간만큼은 당신의 기억처럼 한없이 간직되리라 생각합니다.


이토록 빛나고, 귀한 이야기를 제게 나누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이 당신의 씩씩한 목소리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함께 가출을 감행한, 코로나가 끝난 후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한 고향 친구와 하루 빨리 조우하여 행복한 순간으로 가득한 대화 나누시길 그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늘 당신과 따로 또 함께 하고픈 마음을 담아

  죽음을 그리는, 퍼플아티스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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