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왕국 세렝게티 국립공원
일생에 한 번쯤 드넓은 초원과 동물들이 뛰노는 아프리카로 가야겠다 생각해왔다. 아프리카의 동물 대 이동 지도를 보며 날을 고르다가 세렝게티에 동물들이 머무른다는 3월로 결정! 회사를 다니면서 비교적 떳떳하게 약 2주의 장기휴가를 낼 수 있는 이벤트는 아무래도 허니문이라 이때 맞춰 결혼했다. 나와 신랑의 결혼 날짜는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이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 식품회사에 다니며 동물 애호가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기에 주위에서는 참 ‘너다운 결정’이다 라고들 했다.
아프리카의 빅 파이브 –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를 다 봤다는 점에서 탄자니아 세렝게티 방문을 3월로 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가 했던 세렝게티 3박 4일 투어는 이틀하고 반나절은 세렝게티에서, 나머지 반나절은 이 투어의 시작점이 됐던 아루샤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이루어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미리 연락해 두었던 사파리 투어 회사에서 신혼부부라고 특별히 배려해줘 둘이서 차 한 대를 빌려 전속 가이드와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 탄자니아 세렝게티로 사파리 투어를 하려면 기점 도시인 아루샤로 가야 한다. 아루샤 공항은 경비행기와 국내 비행기 몇 대만 받는 소규모 국내 공항이어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의 줄리어스 니에레 국제공항을 거쳐 이동하거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으로 가서 아루샤로 차로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해야 했다. 숙소에 미리 요청해 킬리만자로 공항까지 기사가 픽업을 왔다. 복잡하고 덥고 약간은 무서웠던 다르에스살람과 달리, 탁 트인 풍경과 끝내주는 날씨에 차 안에서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던 와중에 픽업 차량에서 우리의 귀를 붙잡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애프터스쿨의 DIVA, 의외의 한국 노래였다. 운전기사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라고 일부러 틀어준 것이다. 2008년 신입사원 시절, 딸리는 가창력에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운다고 노래방에서 내 18번이었는데. 이 노래를 탄자니아 사파리 허니문 여행 도중 들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추억 조각들이 끼워 맞아질 때 더 흥미로운 것이다.
본격적인 3박 4일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의 전날 밤을 위해 선택한 롯지는 탁월했다. 울창한 숲 속에 투숙객들마다 별도의 오두막으로 이루어진 롯지는 외부의 경관뿐 아니라 실내도 멋졌다. 작지만 수영장도 있었다. 아침에 4일간 우리를 책임져 줄 가이드 겸 운전사 릭손이 숙소로 픽업을 왔다. 이른 아침 7시에 시작하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다. 아루샤에서 세렝게티 국립공원까지 거의 반나절을 차로 이동했다. 오전 내내 큰 변화 없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비포장도로라 승차감이 나빴음에도 노곤해져 차에서 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창 졸다가 거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릭손이 우리를 깨웠다. “저기 하이에나가 있다.” 얼룩말이나 톰슨가젤, 임팔라 등의 초식동물들은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초반부터 하이에나 같은 육식동물을 보기란 어려워 귀한 관찰 대상이었다. 하이에나는 엄청 배고픈 상황이었던지 우리에게 존재를 드러낸 후 톰슨가젤 무리로 달려가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사냥 광경은 현실감을 되찾는 한방이었다. 하이에나는 유독 느린 톰슨가젤을 하나 잡아먹기 시작했다. 놀라서 가슴 떨려하며 시선은 고정. 가차 없이 불쌍한 톰슨가젤을 물어뜯어먹는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보는 내 배가 물어 뜯기는 듯 다 아픈 것 같다. 하이에나는 사냥감을 뼈째로 씹어 먹기 때문에 치악력이 악어보다도 세다고 한다. 사실 이번에 사파리 투어로 보고 듣기 전까지는 하이에나 하면, 사자가 먹다 남은 사냥감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죽은 동물의 뼈에 붙은 살 쪼가리나 처리하는 잔반 처리반(?)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달리는 속도가 사람보다도 느린 몇 안 되는 동물이라는데 잽싸게 사냥하고 식사를 하는 모습이라니 기대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앞발이 길고 뒷발이 짧아 사람보다 느리다고는 하지만 우사인 볼트 정도 세계 선수급과 하이에나를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거 아닌가? 나처럼 느린 편에 속하는 사람과 배고픈 하이에나라면… 차창 밖에 놓인 게 톰슨가젤이 아니고 나라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니 오싹 소름이 돋는다. 코 앞에서 죽게 된 불쌍한 톰슨가젤에 대한 연민과 잔혹한 하이에나에게 두려움을 번갈아 느꼈다. 반면, 간간이 식사 중인 하이에나에게 ‘나도 한입만’ 하고 들러붙는 자칼을 경계하고 내쫓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먹히고 먹는 광경. 이 드넓은 초원의 일상, 자연의 섭리임에 마음을 다독였다.
투어 초반에 워낙 강렬했던 사냥 장면을 보게 된 탓에, 이후의 세렝게티에서의 3일은 대체적으로 평온했다. 포식자들은 야행성이라 낮에는 주로 낮잠을 자고 늘어져있는 탓에 더 그러한 것 같다. 바위 위에 자고 있는 사자를 관찰하기 위해 사파리 차량이 가까이 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심지어 생존을 위해 예민함이 발달된 초식동물들 조차 차가 지나가면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기만 할 뿐 잘 도망가지 않는다. 관찰하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조용히 보고 가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잘 지켜지고 있는 아름다운 약속이다.
세렝게티에서의 3일을 마치고 마지막 날, 기점이 되는 아루샤로 향하는 길에는 응고롱고로 분화구가 있다. 첫날은 응고롱고로 휴게소에만 들러 잠깐 쉬고 마지막 날에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투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안의 야생 동물들은 연중 시기에 따라 이동을 한다. 반면 응고롱고로 분화구 안은 화산이 폭발한 뒤 푹 꺼진 세계 최대의 칼데라 지형으로 냉면 접시 같은 곳에 동물들이 이동하지 않고 모여 살고 있다. 광활한 평원을 가진 세렝게티와 달리 응고롱고로 분화구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니, 울타리 없는 동물원 안에 들어온 듯하다.
사파리 투어 도중 랜드크루저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열린 천장을 통해 차 안에 서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아프리카의 자연 풍경을 만끽한 해방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텐트에서 매일 아침 새소리로 잠을 깨어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일어나 숙소로 찾아온 반가운 기린 가족을 통해 느낀 행복감은 우리 부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