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폐허가 남기고 간 사유.
사극 드라마 작품을 준비하다 낙마를 당했다. 얼마 안 있으면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 낙마를 당했을 때의 허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공허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두려움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왼쪽 무릎인대가 찢어져 봉합수술을 진행했고, 오른쪽 발목은 골절로 통깁스를 감았다. 그 밖에도 온몸에는 타박상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두 다리를 다친 상태에서 통원치료를 다니는 지금, 무수한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현재 나이 35살, 내게 존재했던 시간의 역사를 되짚어 보기 시작했고, 그 삶이 남긴 추억과 타인과의 관계 속 감정들, 내가 추구했던 가치들에 관한 인식의 확장을 시도했다. 사고를 당하고 나니 가장 먼저 떠오른 삶의 유한성에 관한 고민이 떠오르며, 내가 추구했던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번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삶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마음가짐은 매 순간 떠나가는 시간의 유한성 속에서 삶을 온전히 인식하며 살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만의 기준을 가지려 노력하고, 자기본위적 방향을 잡고 살고 싶었다. 타인의 욕망에 사로잡히는 삶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내면의 소리를 쫓아가는 시도를 추구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생산성의 극대화만이 완전함이라 불리는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전해져 오는 이 커다란 억압은 나라는 존재가 가진 인간의 비어짐을, 매끄러운 세상 속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나의 육체와 정신의 흔들림을 더 크게 뒤흔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립된 시간 속에서 공허와 외로움이 나의 감정의 주변에 쌓이고 머물렀다. 하지만 어느새 가진 그 결핍의 빈 공간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틈의 공간으로 남아 여전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그리움을 만들었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어머니가 어머니라 불리기 이전의 소녀였을 때 그 시기의 어머니는 얼마나 찬란히 빛나고 또한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삶을 끌어안는 해맑은 웃음은 어디서 시작되었고, 이 고된 삶이라는 세상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머니의 웃음이 순간 지금의 나에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지방에서 서울로 2시간을 운전해 올라와 나를 간호해 주셨고, 떠나기 전에는 내가 가여우신지 나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그때 나는 내게 느껴지는 물리적 고통보다 어머니께서 나를 딱하게 여기시는 그 고통을 느끼게 해 드린 불효가 느껴져 죄송함 속에서 고개 숙여 눈물만 흘렸다. 화려함과 완전해 보이는 이 매끄러운 표면의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매끄럽지 못함을 가진 존재라 자꾸 예상치 못하게 미끄러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끝없는 미끄러짐을 경험한 덕택에 나는 이전의 나였으면 잊고 살았을 그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 시간들에 머물렀던 누군가에 관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겹겹이 겹쳐진 삶의 여러 감정의 파동을 느끼게 된다. 내가 다치고 난 후 나를 위해 연락을 해준 무수히 많은 사람들, 그들이 나에게 건넨 따뜻한 위로와 행위들. 나는 그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만약에 이 사건을 나에게 일어난 지진이라 비유하고, 이런 생각으로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지진이 일어났다 치고, 그 지진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러면 지금 일어난 이 지진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지진을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해도 과연 이 지진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지진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삶을 또 아무렇지 않게 살아갔을까? 결국 일어날 지진은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내게 일어난 지진과 같은 이 사건처럼, 현재의 누군가에게 혹은 앞으로의 누군가에게 일어날 지진과 같은 사건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해도 나는 이 지진에 대해서 한 번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지진의 끝에는 인간의 ‘죽음’ 또한 포함되어 있으니까. 인간이 언젠가 늙고 죽는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을 어렸을 때는 믿지 않았지만, 대학교에서 우연히 철학 수업을 듣고 난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사실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잠에서 깨거나, 어떠한 순간에 몇 번이고 다시 멈추지 못했던 그날의 성난 말을 떠올린다. 떨어지기 싫어 그 목을 부여잡고 달리던 나는 공포감에 몸부림치고 있다. 그때 그 말은 왜 그렇게 화가 나서 미친 듯이 질주했을까? 그때 나는 몇 번이고 말을 멈추려고 시도했고, 말에게 울먹이며 멈춰달라고 다급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느낀 말은 자유로운 몸짓으로 더 빠른 속도를 내며 광기의 질주를 일으켰다. 들판이 아닌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말은 더 이상 인간에게 길들여진, 자유를 잃어버린 말이 아니었다. 그 순간 자유를 향한 말의 피 끓는 열정이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순간 ‘만약 죽는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이제 그 말의 목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고 그 공포는 이제 어떠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순간의 행위가 되어 더 이상의 공포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말에서 떨어져 처절한 고통을 느꼈을 때 나는 두려움과 고통에 휩싸여 한동안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바로 살아있다는 울음을 내뱉고 있는 일종의 고통 속의 환희였다. 당연하게 여겨온 그 살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병원으로 이송되면서도 고통 속에서 환희를 느꼈다.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도 어느 때는 삶을 증오하고 허무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제는 당연함이 아닌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머리가 먼저 떨어졌다면?, 만약 허리가? 발목이 조금만 더 강하게 부러졌다면? 수술을 받기 전 병원의 한 간호사 아주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천운이시네요. 만약 더 다쳤으면 진짜 큰일 났어요.” 그 언어가 갖는 울림이 나에게 실제로 느껴져 실로 안도했다.
다행히 지금은 치료를 잘 받고 있다. 왼쪽 다리는 이제 실밥을 뽑았다. 오른쪽 발목의 통증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타박상의 흔적들도 많이 옅어지며 치유되고 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사실이 인간의 육체에도 자연의 이치처럼 작용하는 것 같아서 신기할 뿐이다. 다치고 난 후에 한동안 휠체어를 타다, 목발을 짚고 또 한 발로 세상을 짚으며 느끼는 그 부조화 속의 세상이, 이 아쉬움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온전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진실로 안도하며, 훗날 이 기억을 망각하는 바보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서 나의 감정의 빈 공간을 남겨놓고 그 빈 공간의 여백을 한 자씩 글로써 적어본다. 마지막에 와서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적어보며 삶에 대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다시 한번 정립해보고자 한다.
‘나는 시간을 있는 힘껏 잡아늘이고 싶고 아무 조건 없이 나 자신이 되고 싶다.’ - 페르난도 페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