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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Jan 29. 2020

경찰이 될 일은 없겠지만

내일 군대 갑니다

종로를 좋아한다. 아직 남아있는 옛 서울의 풍모이며, 이런저런 장소에 얽힌 옛 문인들의 일화, 그러면서도 너무 너절하지는 않게, 현대적으로 쭉쭉 뻗은 고층 빌딩들과의 조화는 확실히 나를 편안하게 한다. 이따금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종로로 향한다. 가능한 멀끔하게 차려입고, 종로3가 거리가 훤히 내 뵈는 카페로 들어간다. 그곳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점박이 같은 햇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춘기 시절, 더듬거리는 말투로 고백이라도 받은 것 같다.


내가 사는 부천과 종로는 같은 1호선이다. 편하게 갈 수는 있지만 가깝지 만은 않아서 많은 역들을 지나친다. 눈앞으로 미끄러지는 풍경들도 그야말로 다양하다. 안양천과 한강, 커다란 전신 거울 같은 63빌딩과 눈길조차 가지 않는 평범한 주택단지들까지. 다만 종로에 갔다 돌아오는 저녁이면 이들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로 슬쩍 모습을 감춘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노량진이다. 아마도 헐값에 좋은 해산물을 얻기 위한 소매상인들의 노력…이라기 보단,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는 고시생들의 열정이리라.


초등학생 때만 해도 장래희망 칸은 포부로 가득했다. 예컨대 대통령이나 연예인 같은. 머리가 조금 자란 중고생이 되면 이제 성적과 적성을 고려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공무원도 더러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저어…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제 자리인데요.”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여러 이들의 장래희망 칸을 한없이 앗아갔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명예보다는 안정성이 더욱 크게 다가온 탓이다. 일종의 현실적 쿠데타랄까. 이렇게 적고 있으니 제삼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펜대를 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도 한 때 공무원을 꿈꾼 적 있다.


어릴 적부터 내가 동경하던 직업군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작가고 다른 하나는 경찰이다. 뭐, 결국 어느 길에도 들지 않고 영화를 선택했지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재된 욕망은 닫히지 않은 삶의 틈새로 스멀스멀 삐져나왔다. 작가 쪽은 그나마 나았다.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해 “흥. 당신네 문예지는 표지가 마음에 안 들어요.”하며 청탁을 거절하는 유명 작가의 삶은 아니더라도, 글을 쓰며 산다는 건 (보시다시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 경찰은? 방법이 없었다. 정말 없을까? 그렇긴 한데…, 비슷하게나마 이룰 수는 있었다. 바로 의경이 되면 됐다.

공모전 촬영 당시 근무복을 입고 찍은 사진 (2015)

의경의 주요 역할은 치안업무 보조. 몹시 포괄적인 말이다. 그러니까 교통단속도 하고, 집회 및 시위를 관리하기도 하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방범순찰을 도는 등, 보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부대마다 다르지만 경찰서 정문을 지키거나 미귀가자 수색에도 동원된다. 말 그대로 경찰관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군부대가 아닌 경찰서(혹은 기동단)에서 생활하고, 군복이 아닌 제복을 입으며, 총이 아닌 방패와 경광봉을 든다. 20대에 있어 군대가 어차피 통과해야 할 길고 어두운 터널이라면, 한때 경찰이 꿈이었던 나에게 의경은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소위 ‘꿀’이라는 인식과 함께 의무경찰 폐지 수순이 겹쳐 경쟁률은 하늘을 치솟았다. n수는 기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의경 시험은 적성과 체력, 더불어 운까지 따라주어야 한다. 근소한 차이로 연거푸 시험에 떨어지던 나는, 바닥을 보며 정상을 오르는 등산가의 심정으로 시험에 임했다. 2018년 12월을 시작으로 총 다섯 번의 시험 끝에 (정말 다행히도!) 합격통보를 받았다. 발표 당시 나는 통영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이로 말할 수 없이 벅찬 감정에 경찰서가 보일 때마다 히죽히죽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입대를 며칠 남기지 않은 요즘, 마냥 싱글벙글할 리는 만무하다. 당연하다. 멀쩡한 두발을 자르고, 의복은 개성을 잃으며, 생활은 철저히 통제된다. 하루를 기점으로 자율성이 완벽히 부재되는 것이다. 이를 환대할 수 있는 이는 몇 없지 않을까. 아쉽게도 나는 그 몇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고, 한풀이를 하고, 다시 술을 마실 뿐이었다. 표시해둔 날짜가 다가올수록 숫자는 강한 압력과 함께 나를 짓눌러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가슴 안에 건조한 모래 몇 포대, 어지럽게 뜯어진 것만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오랜 인연들을 하나둘씩 만났다. 종강을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입대 직전에 해야 할 일을 노트에 열거하는 것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부터,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까지. 그중 제일은 아무래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오래전부터 보자고 했으나 끝내 못 본 이들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만난 이들도 적지 않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하나같이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 덕분에 오늘날까지 무탈하게 건너왔다는 생각마저 든다.

의경 근무복을 입고 찍은 고등학교 졸업사진 (2017)

하루는 약속이 취소됐다. 숙취가 심해 아무래도 못 볼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약속이 취소된 건 괜찮지만, 준비하고 밖으로 나온 게 허사가 돼버렸다. 친구를 불러낼까,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문득 종로에 가고 싶어 졌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날씨는 흐릿했고 주말도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열차에 몸을 싣고, 익히 아는 풍경들을 지나쳐 단골 카페에 들어갔다. 창밖으로는 회색 빛깔에 칙칙하고 어두운 종로 거리가 보였다. 기억 속 모습대로 사람들은 바쁘게 활보하고, 버스는 제시간에 왔다가 떠났으며, 네온사인은 어지럽게 번쩍거렸다.


아무래도 나는 이 익숙한 풍경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풍경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데 집착을 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을, 그저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다. 혼재된 도시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들어 처연해졌다. 혹자가 호르무즈로 파병을 가거나 시한부를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청승을 떠는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이런 기억이 하나하나 모여, 앞으로의 나를 무탈하게 할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는 걸 경험적으로 나는 알고 있다.


라떼를 한 잔 마시고 카페를 나섰다.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살피다 나오니 거리에는 밤이 짙게 깔려있었다. 서둘러 역으로 들어가 인천행 열차에 오른다. 덜컹덜컹 흔들리며 가다 보니 어느새 노량진이다. 생각해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하는 게 고시생들 뿐만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종로 거리를 거닐다 보면, 형광 점퍼를 입은 수많은 의경들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밤낮으로 힘쓰고 있다. 몇 달만 지나면 나도 저들 사이에 이름 없이 편입될 것이다. 밝게 빛나는 노량진이 그날따라 더욱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입대 후를 생각하며 그린 자화상 포돌이 (2019)

내일이면 훈련소에 입소한다. 4주간에 군사교육과 3주간에 집체교육을 받은 후, 배정받은 근무지로 배치될 것이다. 이따금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영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필히 경찰이 되었을 거라고. 비록 경찰이 될 일은 없겠지만, 의경으로 생활하는 1년 반 동안은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복무할 요량이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 청록색 제복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은. 만약 길에서 알 없는 안경을 쓴 의경을 마주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아래의 말 중 하나를 골라 건네주시기를. 1) 확실한 주식 정보. 2) 금주의 복권 번호. 3) “수고가 많으세요!” 선택은 자유롭게. 한창 복무 중일 나를 위해, 자판으로 건넬 수 있는 마지막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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