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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Mar 21. 2021

경찰관의 옷장

<제21회 경찰문화대전> 산문 부문 출품작

예전부터 몹시 궁금한 곳이 있다. 소설가의 책장, 건축가의 서랍, 그리고 경찰관의 옷장. 잠깐, 경찰관의 옷장? 맞다. 경찰관의 옷장. 조사로 연결됐지만 서로 잘 조응하지 않는 두 단어. 이 호기심에 대한 기원을 설명하려면, 몇 달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난 여름날의 일이다. 따가운 햇볕이 기승을 부리는 6월의 오후였다. 약속 장소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나는 할 일 없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늘에 서 있어도 바닥에 반사된 열기는 짓궂게 나를 괴롭혔다. 카페에 가 있을까, 서점을 구경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경찰박물관이 떠올랐다. 내가 있던 곳은 마침 서대문이었고 찾아보니 거리도 멀지 않았다.


  30분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경찰박물관은 총 6층으로 되어 있었다. 안내도를 보니 ‘소개의 장’과 ‘체험관’, ‘경찰의 종류’를 비롯하여 경찰을 이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가 집약되어 있었다. 전시는 5층에서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관람하는 구성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도착했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았을 , 예상대로 나는 절반도  관람하지 못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나의 시선이 강렬하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5층은 ‘역사의 으로 경찰의 역사를 소개하는 구간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신기한 전시품이 가득했다. 조선 시대부터 시작한 전시는 치안국 시대와 치안본부 시대를 지나 지금의 경찰청 시대로 이어졌다. 당대의 모습을 반영한 사진과 물건들이 늦가을, 금빛을 머금은 보리밭처럼 풍성했다. 특히 내가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제복의 변천이었다.

  

  창설 이래 경찰은 총 8벌의 옷을 갈아입었다. 시대가 변할수록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덜어냈고, 시각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정모는 야구모자로 대체되었고, 외근 경찰관의 넥타이는 약식으로 바뀌었으며, 옷감은 기능 소재를 사용해 활동성과 편의성을 높였다.

  

  가까운 변화는 2016년이었다. 10년 동안 시민을 보호하던 아이보리색 근무복은 청록색 근무복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었다. 새로 도입된 색은 신뢰와 보호, 청렴과 치유를 상징했다. 근무모와 소매에는 태극 사괘 무늬를 집어넣어 대한민국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했다. 이는 현재 내가 의무경찰로 복무하며 착용하는 것과도 같은 의상이다. 하루에도 몇 번을 입고 벗지만, 이런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박물관에 다녀온 이후로 근무복을 입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럼 경찰관들은 바뀐 근무복을 전부 가지고 있을까? 연차가 쌓인 경찰관일수록 근무복의 변화를 자주 거쳤을 것이며, 함께 생활한 시간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옷 한 벌 한 벌에 담긴 추억도 응당 많을 것이 분명했다. 중앙경찰학교(혹은 경찰대학) 시절부터 초임지의 첫 출근, 함께 일하게 된 사수의 모습까지. 이제는 닳아버린 근무복을 꺼내 보면 이러한 기억이 묵직하게 끌려올 것이다.


  비록 더는 입을 일이 없겠지만, 근무복을 버린다는 것은 지난 경찰 생활의 추억을 지우는 일처럼 느껴져, 나라면 쉽게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옷장에는 오래전에 입었던 근무복이 가지런히 즐비할 것이고, 저마다 고유의 향수(鄕愁)가 켜켜이 묻은 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제복을 입은 지도 약 8개월이 지났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영화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스물두 살 청년이 아니라, 시민을 돕고 국가 중요시설을 지키는 영락없는 한 명의 의무경찰이 보인다. 가슴에 있는 표장과 좌측 어깨에 붙은 참수리 마크가 그 역할의 무게를 실감하게 했다.


  계절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곳에는 물론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뒤섞여있다. 하지만, 막상 과거를 회상할 때 떠오르는 기억은 대부분 좋은 쪽이다. "경찰 아저씨다! 충성!" 하면서 인사를 하던 아이, 고생한다며 삶은 계란과 초코우유를 챙겨주던 시민, 당연하게 도와준 일에 당연하지 않다는 듯 고마움을 표하던 노신사까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 안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울림이 드넓게 퍼져나간다.


  신병 시절, 내일이면 사회인이 되는 선임에게 전역하는 기분을 물어본 적 있다.

  “저는 끝이 안 보입니다···. 정말 너무 좋지 않으십니까?”

  “말이라고 해? 겁나 좋지. 겁나 좋은데···, 뭔가 시원섭섭해. 약간 졸업하는 것 같아.”

  시원섭섭하다.

  당시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당연한 말이다. 이십 년 가까이 도움을 요청하는 익명의 시민에서 하루아침에 도움을 주는 제복인이 되어있었다. 길을 찾지 못하면 사람들은 바쁘게 나를 찾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총알처럼 달려와 도움을 갈구했다.


  하루하루가 적응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들 때면 언제나 녹초가 되었다. 감았던 눈을 뜨면 전역하는 날이 되어있으라고 매일매일 바랐을 뿐이다. 빳빳하게 날 선 근무복이 경직된 나를 은유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다. 막힘없이 찾고 있는 장소를 설명해주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가 있으면 밝은 표정으로 먼저 다가간다.


  선임이 내게 해주었던 말도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너무 많은 기억이 쌓여버렸다. 근무복 곳곳에 터져있는 실밥과 헤져버린 소매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 제복을 벗는 날이 오면, 나 역시 홀가분한 마음과 함께 적적한 마음이 뒤따르겠지. 벌써부터 이렇게 생각하는 건 시기상조이지만,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이런 막연한 예감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나조차도 기억의 무게에 얽매이는 마당에 수년, 수십 년을 근무한 경찰관들은 오죽할까. 그들도 힘든 날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들을 지탱해준 버팀목은 역시 가슴 따뜻해지는 기억이다. 경찰관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사명감을 상기시켜주는 기억. 시민이 건넨 사소한 호의가, 현장에서 느낀 묵직한 울림이, 힘들었던 많은 기억을 덮고 현재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경찰관에게 근무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다. 보이지 않은 노고를 목도한 유일한 목격자이고, 시대의 뒤안길을 자처해 걸어온 산증인이며, 흔한 일상이 일상일 수 있게 해주는 늠름한 조력자이다. 역할을 마친 옷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제복은 항상 그렇게 존재해왔다. 마치 지우지 않은 플레이리스트의 노래처럼 빛바랜 추억이, 한때의 감정이, 억세게 농축된 시간이, 경찰관의 옷장에는 담겨있다.


  “삐빅. 삐빅. 삐빅.”


  오전 7시, 알람 소리가 울렸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가지런히 침상을 정돈하고 단정하게 머리를 손질했다. 그리고 관물함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사복을 꺼내 입었다. 첫 휴가 날의 아침이었다.

  길었던 여름의 기세는 한풀 꺾여있었다. 깨질 것처럼 투명한 하늘과 바닥에 드러누운 바삭한 햇살. 기분 좋은 날이다. 나를 둘러싼 공기는 멀리서부터 날아온 가을의 기척을 머금은 채 싱그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제복의 무게는 잠시 내려놓고, 영화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스물두 살 청년으로 되돌아갈 시간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대낮부터 고주망태가 된 주취자를 상대하느라 녹초가 된 경찰관을 보았다. 입직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젊은 경찰관이었다. 내 추측이 정확하다면, 그의 옷장은 아직 휑하게 비어있을 것이다.

  한 30년쯤 지났을 때, 저 경찰관의 옷장에는 무슨 옷이 채워져 있을까. 어떤 모습이고, 어느 순간과 감정을 간직하고 있을까. 틀림없이 내가 경찰박물관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몇 배는 더 찬란하고, 감동적인 역사가 범람할 것이다. 그것이 나는 몹시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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