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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 Sep 07. 2024

이갈이 사면초가

 어릴 적부터 치과에 가면 이를 가시네요, 란 말을 듣고는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지만 몇 년 전 턱관절이 불편해지더니 나중엔 광어회 한 점을 씹기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치과를 여러 군데 돌았는데 진통제나 근육이완제 처방뿐이었고 크게 효과가 있지 않았다. 결국 찾고 찾아 턱관절 전문 치과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곳 선생님은 좀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갈이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근데 요즘엔 이갈이란 게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학설이 있어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뇌가 선택한 하나의 방어기제라는 거죠. 그래서 근육안정제와 신경안정제를 함께 처방해 드립니다. 스프린트를 낄 수도 있는데 이갈이를 안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장치가 대신 갈린다고 보시면 돼요. 그리고 그런 물리적 방법으로 이갈이를 막는 게 스트레스 해소 관점에서 보면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요. 주변 근육 이완을 위해 보톡스를 맞아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흔히 말하는 나쁜 습관이 없었다. 손톱을 물어뜯는다거나, 팔자걸음으로 걷는다거나, 짝다리를 짚는다거나, 다리를 떤다거나. 어릴 적부터 엄마가 그런 걸 많이 교정해주기도 했고 스스로도 바른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에 자제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나쁜 습관을 피하려고 한 노력이 이갈이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쁜 습관이 없는 게 나름의 자랑이었는데 그게 이갈이의 원인이 되다니. 역시나 세상에 완벽히 좋은 건 없는 걸까.


 턱관절 통증이 너무 심했기에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보톡스를 맞았다. 효과는 극적이었다. 맞자마자 통증이 잦아들었고 그날 통증 없이 저작운동을 할 수 있음에 놀라워하며 저녁을 먹은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보톡스를 맞았지만 그때만큼 턱관절 통증이 심하지 않았고 비용부담도 있기에 한동안 보톡스를 맞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번엔 작은 어금니가 시리기 시작했다. 막상 병원에 가서 크게 문제가 없다고 했고 선생님은 이를 악무는 습관 때문에 이에 미세한 금이 간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엔 시림의 강도가 세져 이러다 이가 다 갈려나갈 수도 있겠단 위기감이 들었다. 평균 50만 원이라는 스프린트를 해야겠다고 생각 후 알아보다 치기공 전문가가 만든다는 10만 원짜리 스프린트 상품을 알게 됐다. 본을 떠서 보내면 전문기공사가 그 치열에 맞춰 스프린트를 만들어 보내주는 상품이었다. 스프린트를 끼고 자고 일어나 보니 매끈했던 일부 부분이 거칠어져 있었다. 내 이갈이의 실존여부를 확실히 알게 된 순간이었다. 매번 이렇게 이가 갈렸겠구나 싶어서 좀 섬뜩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사용하며 이가 안 갈리고 있음을 기뻐하기 무섭게, 이번엔 올해 초 신경치료를 한 안쪽 어금니가 불편해졌다. 문제가 생겼구나 싶어 치과에 가며 혹시 몰라 스프린트를 챙겼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상은 문제가 없다며 스프린트를 보더니 이렇게 말랑말랑한 스프린트는 이갈이에 전혀 소용이 없다며 당장 그만 끼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너무 단호해 그걸 쓴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민망하게 치과를 나와 그날 저녁부터 다시 스프린트를 끼지 않고 자고 있는데 기분 탓인지 정말로 어금니가 아프지 않은 느낌이다. 물론 내 법랑질은 또 갈려나가겠지만.

 이갈이를 막고자 하니 큰 어금니가 아프고, 그냥 놔두려고 하니 작은 어금니가 시리다. 이갈이 자체를 막아볼까 하니 뇌의 스트레스 해소를 막는 거란다. 거의 사면초가다. 거기에 역설적이게도 이갈이가 생간 이유는 좋은 습관 만들기에 열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약복용, 보톡스, 스프린트를 거쳐 결국 다시 보톡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이는 평생 써야 하기에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결국 또 시간과 돈을 쓸 운명인가 보다. 모든 양에는 음이 있고, 모든 음에는 양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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