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동산에서' 김수영, 이강혁 님 인터뷰
‘카페 동산에서’는 양양군 현남면 동산해변에 있다. 양양에 흔하지 않은 플랫화이트를 파는 카페를 찾다 알게 된 곳이다. 2년 전 크리스마스 다음날 ‘카페 동산에서’를 방문했다. 키가 아주 큰 사장님이 혼자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스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는데, 플랫화이트를 아이스로는 팔지 않는다고 하셨다. 남편과 함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사장님께서 슈톨렌 한 조각을 가져다주셨다. 아주 짧은 방문이었고 제대로 대화도 해보지 않았지만, 본인만의 고집이 있는 가게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시작했는데 여기는 또 캐릭터가 정말 달랐다! 알고 보니 본인을 알바라고 지칭하는 아내가 운영하는데, 재기 발랄하고 솔직한 모습에서 씩씩한 에너지를 느꼈다. 바리스타인 남편 이강혁 님이 ‘카페 동산에서’를 운영하고, 아내 김수영 님은 UX/UI 기획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카페 브랜딩, 디자인 작업과 SNS 운영을 맡고 있었다.
올해 초 회사 업무로 로고를 디자인할 사람을 찾다가 수영 님을 떠올렸다. 결과적으로 함께 일을 하진 못했지만 업무 미팅으로 만나 대화를 하면서 앞으로도 인연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수영 님이 타지에서 일을 하고 있어 주말부부로 지내던 두 사람은 얼마 전부터 양양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중심이 단단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즐거운지 새삼 깨달았다. 특히 배우자이자 각자의 분야에서 커리어를 이어 온 사람에 대해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고, 아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수영님이 양양으로 완전히 이주하신 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김수영: 한 달 정도 됐어요. 주말 부부를 한 건 3년 정도예요. 원래는 영원히 주말 부부 할 줄 알았어요.
이강혁: 생각보다 빨리 끝난 거죠.
김수영: 예상보다 빨리 제가 양양으로 왔어요. 원래는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때 양양에 완전히 오게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두 분께서는 지금 사십 대 초반이시니까 ‘파이어족’을 계획하신 거네요.
김수영: 네. 그런데 막상 양양을 오가면서 지내보니까 여기서도 일을 할 수 있더라고요. 코로나19 상황과 좀 맞물리긴 했어요. 재택근무가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 되니까 저는 오히려 덕을 본 거죠. 회사에서도 사업장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이 줄어드니까 일만 잘 된다면 재택을 막을 이유가 없죠.
코로나로 인해 일종의 테스트를 해볼 수 있었네요.
김수영: 회사에서 저희 직원 한 분이 코로나19에 걸려서 사무실이 폐쇄된 적이 있었어요. 50여 명이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죠. 프로젝트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사업비가 남았어요. 회식비, 팀 식비 등을 쓰지 않으니까. 남은 사업비로 마지막에 양고기를 사주더라고요. (웃음)
강혁 님은 양양에 오기 전부터 커피 일을 하신 건가요?
이강혁: 네, 서울에서 10년 정도 했어요.
양양행을 결정할 당시에 서울을 떠나는 게 중요했던 건가요? 아니면 양양의 매력을 느껴서 여기에 온 건가요?
이강혁: 두 개가 합쳐진 것 같아요. 원래 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서핑을 시작하게 됐어요. 카페 일의 특성상 일주일에 평일 하루 쉬는데, 스케줄을 조정해서 서핑하러 왔어요. 아침에 카페 오픈을 하고 밤에 내려와서 차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파도가 있으면 서핑하고 그날 밤이나 다음 날 아침에 출근 시간 맞춰서 서울로 돌아가고. 그렇게 몇 번을 오가다 보니까 나중에는 서핑보다 그냥 양양에 오는 게 좋은 거예요.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으셨어요?
이강혁: 평생 서울에만 있었으니까 바쁘게 살아야 하고 약간 타이트하게 살아야 하는데, 양양 오는 길에 올림픽대로를 딱 벗어나는 순간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고 초록색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는 게 좋더라고요. 당시 번아웃이 조금 오기도 했고, 이제 어떻게 하나 싶던 차에 여기서 만난 형이 카페를 할 건데 같이 하자고 하길래 겸사겸사 왔어요.
그게 언제인가요?
이강혁: 2017년이네요. 그 형이 카페는 처음 해보는 거라 제가 카페에서 오래 일했으니까 매니저 역할을 한 거죠. 그때 아내를 만났고요.
두 분은 결혼을 하고 양양에 함께 온 게 아니군요.
김수영: 따로따로 와서 만났어요. 저는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에서 다 살아보려고 했어요. 제주도에도 한 2주 정도 계절별로 가보고 여기저기 막 헤매고 다녔죠. 외국에서 살고 싶었는데 당장은 어려운 상황이니까 양양에서 일단 살다가 발리로 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남편을 한 번 만나보라고 소개를 받아서, 사귀다가 여기에 주저앉은 거죠. (웃음)
발리에 못 가고. (웃음)
김수영: 네, 그래서 계획이 바뀌었죠. 원래 저는 40대에 은퇴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더 이상 일하지 않는 게 목표였어요. 계속 혼자 지냈으니까 40살에 다 정리하고 발리에서 살아볼까 생각했죠. 서핑이 좋아서 가고 싶었던 거라 그거 빼고는 꼭 발리여야 할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결혼도 인생에 정해진 계획은 아니었던 건가요?
김수영: 결혼 생활이 저랑 안 맞다고 생각해서 남편을 소개받을 때도 결혼할 마음이 없었어요.
소개팅도 얼른 해치워야 할 일로 생각했죠. 만나보라고 하니까 “빨리 번호 줘봐, 만나고 치우게.” 이랬는데 결혼까지 한 거죠. 남편이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저는 반대로 되게 심한 스타일이거든요. 서로 반대인 점이 잘 맞아서 같이 살다 보니 지금 발리가 아니고 여기에 와 있네요.
올해 초 수영 님에 만났을 때 앞으로 카페 자리를 현남면 북분리로 옮기고, 그곳에서 양양에서 UX/UI 기획자를 양성하는 교육 사업을 함께 하는 걸 구상 중이었는데 진행은 얼마나 되었나요?
김수영: 몇 달 사이에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이나 방향은 그대로예요. 그런데 지원금이나 투자를 받는 문제가 쉽지 않았죠.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다 보니 계속 사업계획서를 수정했어요. 지원금을 주는 기관의 성격에 맞춰서 수정하다 보니 오히려 계획이 없는 계획이 돼버린 거예요. 그냥 엉망진창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투자에 관심을 가지신 분을 만났어요. 이전까지는 투자하고 싶다는 분들은 일부러 안 만났어요. 제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8월 말에 양양으로 완전히 와서 이제 방향을 좀 다시 잡고 시작해야겠다 생각해서 만났죠. 그분은 제가 구상하는 게 되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에 공감하시는데 지역을 양양이 아닌 곳으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이게 필요한 일이 맞다는 걸 확인했지만,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요.
카페를 옮기시는 것도 비슷한 시기인가요?
김수영: 내년쯤이면 짓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 사업에 필요한 기반을 만들고, 남편도 로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해요. 북분리도 사연이 진짜 많아요. 땅을 누가 사겠다고 해서 팔려고 했더니 계약하기 전날 안 산다고 해서 취소되고. (웃음) 일단 제 계획은 내년부터 준비해서 내후년 봄부터는 거기서 카페와 교육 사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카페 동산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는 작은 카페예요. 단순히 생각하면 바닷가, 커피, 카페는 로망의 결합체잖아요. 처음에 생각하셨던 거랑 실제로 운영하시면서 겪은 현실이 많이 다르지 않았나요?
이강혁: 일단 저는 엄청 만족을 하고 있어요. 금전적인 부분은 솔직히 서울에서 하는 거랑 비교가 안 돼요. 돈이 목적이면 여기서 안 하는 게 맞죠. 돈을 많이 벌려면 진짜 바닷가 앞에 통창을 크게 낸 카페를 해야 해요. 저도 서울에서는 바쁘게 살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제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양양에 와서 살다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손님에게 기계처럼 인사하고 커피를 만들었어요. 여기서는 단골손님이 오기 시작하면서 손님과 할 수 있는 대화가 있고 그게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외국에서 잠깐 일을 할 때도 그걸 경험했어요.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서 좋았다가 한국에 와서 엄청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잊고 살다가 양양에 와서 다시 경험한 거죠. 여기서는 스트레스 받고 힘들 때 밖에 나가면 바로 바다니까 공기도 다르고 좋죠. 저는 엄청 만족하고 살아요. 덕분에 아내가 고생하고 있지만.
김수영: 돈은 제가 열심히 벌고 있어요.
이강혁: 아내가 지원해줬기 때문에 저도 이렇게 만족하면서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엄청 만족하는데 아무래도 저 혼자 있다 보니 아내가 초반에는 걱정을 했어요. 하루 종일 카페에 혼자 있고 말할 사람도 없으니까. 근데 생각보다 되게 바쁘거든요.
혼자니까 할 일이 엄청 많죠.
이강혁: 낮에는 영업해야 하잖아요. 손님이 오든 안 오든 카페를 지키고 있어야 하고, 카페 영업이 끝나면 로스팅을 하죠. 주변에 납품을 하는데 입소문을 내주셔서 한두 군데씩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로스팅이라는 게 한두 번을 해도 한, 두 시간에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생각보다 되게 바쁘고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었죠.
서울에 살면서 양양에 다니실 때보다 서핑을 더 못하시겠어요.
이강혁: 저는 이제 아예 못 해요. 누가 물어보면 안 한다고 해요.
김수영: 남편은 진짜로 안 해요. 보드도 있는데 물에 아예 안 들어가요.
이강혁: 가끔 물에 들어가고 싶은데 가게 문 닫고는 못 가겠더라고요. 제 성격이기도 하고, 만약 제가 정말 서핑을 좋아했으면 그게 우선이었을 텐데 아무래도 저는 서핑보다는 카페가 우선이라서. 점점 안 하다 보니까 멀어지게 되고. 그런데 서핑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잘 지낼 수 있으니까 좋아요.
카페는 남들 쉴 때 더 바쁘잖아요. 휴무일이나 휴식 시간을 잘 지키지 않으면 지치기 쉽겠어요.
김수영: 저희는 카페에 너무 메여 있지 않으려고 해요. 갑자기 쉬게 되면 인스타그램에 오늘 쉰다고 올려요.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되게 미안한 일이긴 한데, 우리가 여기서 왜 사는지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할 건 아니니까요. 문 닫았다고 낮은 평점 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신경 안 쓰려고 해요. 양양을 선택한 건 나를 헤치면서 까지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고 생각해서였어요. 나가서 밥 먹고 싶은데 손님이 올까 봐 못 나가는 게 싫은 거예요. 물론 남편은 처음에는 되게 싫어했거든요. 카페를 지키는 게 몸에 배어 있었으니까.
이강혁: 7~8년 동안 명절에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서울에서도 시내에 있는 매장에서 일하다 보니까. 완전히 몸에 배어서 고객과 약속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죠. 어떻게 보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제가 쉬고 싶으면 쉬려고 해요. 원두 거래처에 납품하는 것만 잘 맞춰주고요. 저희가 계약을 할 때, 거래처에도 미리 양해를 구해요. “1년에 한 달 정도 여행을 가야 합니다, 그걸 감안하지 않으시면 죄송하지만 납품은 못 합니다.”라고 해요.
관광지에서 카페를 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앞으로 여기서 계속 카페를, 커피를 업으로 해 나간다고 할 때 어쩔 수 없는 어떤 한계를 느끼실 때도 있나요?
이강혁: 커피가 기호식품이라서 철저히 ‘맛있다’가 장사의 기준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저는 커피를 만들 때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라서 맛을 포기를 못해요. 물론 맛있기도 하고 예쁘기도 한 매장들도 많긴 한데 저는 예쁨에 대한 욕망이 없어요. 저한테는 크게 의미가 없는 거죠. 그래서 가끔 고민을 하긴 해요. 그럼 아내가 옆에서 웃어요.
못 하는 거 고민하지 말라고.
김수영: 안 되면 되는 거 하면 되니까.
수영 님은 심미성이 중요한 일을 하시잖아요. ‘이걸 조금만 개선하거나 신경 쓰면 될 텐데’라는 생각도 하실 것 같은데요.
김수영: 엄청 많이 하죠. 하지만 결국에 제가 남편에게 기대하는 게 돈을 많이 버는 카페가 아니니까요. 화려한 시그니처 메뉴가 있거나 유명한 메뉴 하나가 잘 나와서 장사가 엄청 잘 되는 걸 기대하지 않거든요. 저는 그냥 남편이 좋아하는 거 하면서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남편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저는 잘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거든요. 억대 연봉이 아니라도 둘이 사는 데는 문제없을 정도로 벌고 있어요. 둘 다 돈 버는 일에 메이면 힘들겠죠. 계속 돈 얘기만 하게 될 테고 결국 서로 충돌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럴 거면 왜 양양에 온 거지? 저희가 밤에 나가서 별 보고 파도 소리 듣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오늘 날씨 되게 좋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오늘 메뉴가 어쩌고 매출이 어쩌고 이런 얘기하기가 싫은 거예요. 초반에는 제가 좀 했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자 아이디어도 내고. 근데 여기는 결국 남편이 혼자 하는 매장이고 몸이 하나잖아요. 아메리카노 열 잔도 혼자 만드느라 바쁜데 시그니처 메뉴라고 막 토치 쓰고 이러면 쉽지 않죠. 거기다 로스팅을 하니까. 저는 케이크 메뉴도 줄이고 디저트도 하지 말자고 해요. 그냥 제가 먹고 싶은 거나 해달라고. (웃음)
이강혁: 여름 성수기에 케이크를 아예 못 만들어요. 손님이 세 배 정도 되거든요. 게다가 원두 납품도 하니까 여름에는 진짜 장사를 못할 정도로 콩을 볶거든요. 그러면 손님들이 가끔 짜증을 내요. 케이크 먹으러 왔는데 케이크가 없다고. 서울에서는 “죄송합니다.”라고 했을 텐데, 여기서는 서비스 정신이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빵집이 아니라 커피집이라서 빵 없습니다.”라고 해요. 저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손님은 왕이라고 교육을 받았어요. 대기업에서 일을 했으니까 CS 교육을 세뇌당하듯이 받았어요. 손님이 기분 나쁜 채로 매장에 와도 웃으면서 나갈 수 있는 서비스를 하라고 교육을 받아요. 맨날 그 말을 듣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돼요. 여기 와서는 많이 달라졌죠.
그래도 무방비 상태에서 손님의 불만을 들을 때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는 있지 않나요?
김수영: 있긴 있죠. “왜 운영을 그런 식으로 하냐”, “나라면 그렇게 안 하겠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커피를 마시러 와서 왜 조언이나 충고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강혁: 쉬워서 그래요. 접근성이 너무 쉽고 누가 봐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김수영: 이 업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카페가 너무 쉬운 일이잖아요. 그리고 이 나라 전체에서 카페가 너무 고급화돼 있는 거예요. 커피가 뭔지는 안 중요하고 인테리어, 조경, 문, 창문 이런 게 엄청나잖아요. 사실 사람들은 그 분위기를 마시러 가는 거고요. 저도 그래요. 유명한 카페 가는 거 좋아해요. 하지만 사람들 기준이 너무 높은 수준에 있으니까, 저희 같은 카페를 보면 ‘얘네는 왜 이렇게 안 하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장인 쪽이라서 맛있는 커피를 주는 카페를 하고 싶은 거지 예쁜 카페를 하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이강혁: 물론 일부러 찾아오셨는데 원하는 케이크를 못 드리면 미안할 때도 있어요. 죄송하긴 한데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으니까요. 매장과 원두 납품 중에 포기를 해야 하는데 원두 납품이 저한테는 더 우선이니까요.
김수영: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아봤으니까 가능해요. 그렇게 사는 게 나를 어떻게 해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저는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잘하면서 지내길 바라거든요. 저희 부부가 한 번도 안 싸웠어요. 흔히 넘지 말아야 할 선 같은 걸 지킨다고 얘기를 하는데 저희는 애초에 그 선에 가지 않는 편이에요. 서로가 서로를 괴롭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대부분 싸우면 상처 주는 말을 하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데가 여기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걸 하자고 생각해요.
아까 얘기한 “안 되면 되는 거 하자”나 지금 얘기한 “각자 잘하는 걸 하자”가 닮은 의미인데, 좋은 생각이네요.
김수영: 저희는 성향이 진짜 반대거든요. 저는 양양에 있어도 진짜 바빠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어디서 누가 뭐 한다고 그러면 가서 막 물어보고.
이강혁: 아내가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오니까 좀 쉬면 좋을 것 같은데 계속 뭘 하려고 하니까, 한 번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게 해 봤거든요. 그랬더니 사람이 기운이 없어요, 진짜. 축 쳐져서 아픈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니고 짜증이 난 것도 아닌데 사람이 힘이 없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안 되겠다’ 싶었죠.
김수영: 저는 세상에 궁금한 게 많은 편이거든요.
이강혁: 생각이 끊이지 않아요. 항상 물음표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항상 그게 왜 궁금하냐고 물어봐요.
김수영: 몰라, 그냥 궁금해.
관계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 두 분이 밸런스를 맞추면 되는 거죠.
이강혁: 저도 제 일에서는 엄청 궁금한 게 많아요. 제가 유일하게 예민해지는 때가 새로운 콩이 들어와서 로스팅을 할 때거든요. 아내가 5년 가까이 제 옆에 있었으니까 설명을 해줘도 아직 잘 몰라요.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온도 1도 단위로 맛이 달라져버리니까 예민해지죠. 비싼 콩을 쓰면 1kg에 10만 원, 15만 원짜리인데 로스팅을 잘못하면 그냥 버려야 하거든요. 무한정 살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예민하게 해야 하니까 그럴 때는 저를 잘 놔두죠.
김수영: 내버려 두면 혼자 확 예민해졌다가 또 괜찮아져요.
이강혁: 아내도 일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힘들 때가 있는데, 지켜보면서 놔두면 혼자 풀더라고요.
김수영: 그럴 때 바다에 뛰어들어갔다가 오죠.
아내가 일을 하면서 주말부부를 하면 어떤 분들은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살고 서로가 용인할 수 있으면 되지 않나 싶거든요. 어느 한쪽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해요.
김수영: 맞아요.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네가 고생한다’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막상 저는 제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기서, 남편이 다 흡수해주는 거예요. 일하면서 엄청 날이 서 있다가도 주말에 여기에 와서 이 사람을 만나면 뭔가 스펀지에 들어간 것 같은 안정감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저는 여기가 날카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한테는 이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오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니까요.
수영님이 에너지가 많고 궁금한 게 많아도 그걸 굳이 배우자한테 함께 해달라고 하거나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요?
김수영: 여기는 혼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게 많이 있잖아요. 오토바이 타러 나가도 되고 서핑하러 가도 되고.
이강혁: 서로 원하는 걸 과하게 막지 않아요. 저는 흔히 아내들이 제일 쓸데없는 취미라고 생각한다는 피규어도 좋아하거든요. 인터넷에서 보면, “피규어를 새로 샀는데 이걸 어떻게 숨겨서 집에 갖고 들어가야 하나요?” “아내한테 허락받고 하나 샀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제 아내는 뭐라고 하지 않거든요.
김수영: 불건전한 취미가 아니잖아요.
이강혁: 집안 경제를 흔드는 수준에서 하면 문제가 있는 거지만 그런 게 아니고 본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서로 원하는 걸 하려고 하니까.
혹시 자녀 계획이 있나요? 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양양에서 지금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혹시 두 분에게도 아이가 생기면 지금처럼 밸런스를 맞추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깨질 수 있잖아요. 그때도 이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시나요?
김수영: 남편은 아이에 대한 선택권은 여자한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는 아이를 낳게 되면 서울로 돌아갈 거예요. 아직 아이가 없는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제 친구들이랑 이야기해보면 양양에서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초등학교까지는 여기서 키워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은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도시에서 다니지 않다가 갑자기 도시의 대학으로 가면 문화 충격 같은 게 있을 거잖아요.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기를 시골에서만 보내는 게 맞나? 저는 자식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경험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만약 공부에 흥미가 없다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더욱더 서울로 가야 하는 거죠. 양양의 큰 문제가 젊은 사람이 와서 할 일이 없잖아요. 처음에는 양양으로 와도 결국 강릉이나 속초로 빠져나가게 되는 상황이고. 양양에서 진행하는 지원 프로그램도 다 좋은데, 귀농해서 농사짓는 것 위주니까요.
귀촌을 한 사람이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할 때 막막하죠.
김수영: 여기서 뭔가 새로운 걸 한다고 하면, “그게 뭐야? 왜 해?” 이런 반응이잖아요.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수가 굉장히 한정적일 거니까. 그런데 서울로 가면 여기 있는 거 다 팔아서 가도 보증금도 안 나와요. 그러면 내가 기껏 서울에 가서 걔한테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뭘 해주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하고, 60살까지 일하면 아이가 겨우 스무 살이고, 걔가 서른이 되면 제 무릎 관절은 온전치 않겠죠. (웃음)
이강혁: 서울에서 일할 때 채용 인터뷰를 하러 온 지방에서 오는 어린 친구들이 있어요. “뭐 하러 커피를 서울까지 와서 배우냐, 동네에 없냐?”라고 묻거든요. 그러면 없대요. 그때 되게 충격을 받았어요. 서울은 널린 게 카페고 커피숍이고, 아무 데나 가도 배울 수가 있는데 그게 안 돼서 지방에서 와서 조그만 방에 살면서 배우고 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저도 양양에서 커피 교육을 해보고 싶어서 알아봤는데 일단 시설이 없고, 무엇보다 교통이 너무 안 좋아요.
자기 차가 없고 운전을 못 하면 제약이 많죠.
이강혁: 만약 제가 여기에 학원을 차린다고 해도 학생들은 자기 차가 없으니까 오기가 되게 힘들어요. 읍내에서 하지 않는 이상 힘들겠더라고요.
양양은 아무래도 학생은 물론이고 2, 30대 청년들이 서울이나 큰 도시에 비해 경험할 수 있는 게 부족하죠. 그래서인지 세간에서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과 이곳의 청년들은 많이 달라 보여요.
이강혁: 다들 심성은 착한데 아무래도 경험치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 가질 수 있는 직업의 수나 환경이 한정적이다 보니 자기 밥그릇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해요. 서울에서는 뭔가를 해보다가 안 되면, 이게 아니네, 그럼 이렇게 해볼까 하는 식으로 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는 돌아갈 길이 없으니까. 일자리가 너무 제한적이고 이거 아니면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거죠.
김수영: 저희가 북분리에서 하려는 사업도 양양에 필요한 교육으로 사람과 일자리를 만들고 싶은 건데 이걸 민간에서만 하기가 어렵잖아요. 일단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양양은 땅값이 너무 올라버렸고. 양양에 계시는 분도 취지에 공감을 하는데 본인이 그걸 승인해서 추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고, 굳이 일을 만들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보니 시작하기 어렵죠. 사업비가 만약에 100억이 든다고 할 때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너네가 30억 갖고 와 봐 하는 식이면 움직일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공간을 짓는다고 할 때 적당한 공간을 지으면 사람들이 안 와요. 저는 제대로 짓거나 아니면 정말 마음대로 짓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군에서 직접 하는 건 공간뿐 아니라 커리큘럼도 굉장히 공공스러운 느낌이 강할 수밖에 없죠. 저도 사업을 추진해보려다 주저하게 되고 일도 바빠서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하는데, 좀 명확해졌어요. 누구한테 뭘 기대하고 의지할 수 없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게. 가다가 실패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움직이지 않으면 이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죠.
김수영: 제가 이번에 UX/UI 기획 일을 할 사람을 찾는데, 쉽지 않아요. 기획자가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추천을 받았어요. 서울에서 일을 하다 그만두고 양양에서 서핑하는 친구거든요. 여기서 살고 싶어 하는데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상황인 거예요. 그런데 양양 바다에서 서핑을 하면서 강릉에서 지원하는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고 있어요. 양양을 오랫동안 다녀간 사람도 결국 먹고사는 걱정이랑 만나니까 양양을 포기하고 강릉으로 가는 거 보고, 이게 현실이구나 싶더라고요. 양양에서 일자리 구하는 사람들은 진짜 답답한 거죠. 서울에서 날고 기는 회사 다니다가 서핑이 너무 좋아서 그만두고 내려오면 일할 곳이 없어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요. 좋은 머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는 청년들이 갈 곳이 없고 활용할 길이 없거든요. 그게 너무 답답한 거예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9월 한 달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에라이, 모르겠다. 놀자!’ 싶어서 내내 놀았어요.
요즘 강혁 님이 여성회관에서 핸드 드립 강의하시잖아요. 어떠세요?
이강혁: 수강생 분들이 열정적이세요. 그래도 수업에 100% 참여는 힘드시더라고요. 다들 하는 일들이 많으셔서 중간에 나가시기도 하고.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더니 전화가 와서 잠깐 나갔다 와야 한다고 가셔서는 안 돌아오세요. 처음에는 ‘수업이 재미없나? 너무 어려운가?’ 걱정도 했어요. 수업 수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첫 수업을 하고 나서 ‘아, 이 분들은 어르신이구나. 그럼 어려운 계산, 숫자 빼고 재미있게 하자’ 싶더라고요. 전체 수강생 중에 60% 정도밖에 안 오시지만, 원래 100% 참석하는 경우는 없대요. 어떤 분은 격주로 오시고 어떤 분은 한 시간만 듣고 가셔야 하고. 그래도 재미있어요. 기회가 되면 계속하고 싶은 욕심이 나요.
일 외에는 양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김수영: 서핑을 하긴 하는데 일주일 한 번 바다에 들어가는 정도예요. 딱히 뭘 하질 않아요. 남편은 계속 콩 볶고, 저는 계속 컴퓨터 하고. 굳이 뭘 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좀 나다니는 편이거든요. 오토바이 타고 옆 동네에 있는 친구 가게 갔다 오거나. 놀만큼 놀아서 더 이상 놀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이강혁: 서울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뭘 해야 할 것만 같았어요. 안 하면 뒤쳐지는 느낌이고. 남들이 어디 가봤다고 하면 나도 가봐야 할 것 같은 게 있잖아요. 저도 새로 생긴 커피숍에는 일부러 가보는 편이었어요. 어디에 생두가 새로 들어왔다더라, 특이한 거 한다더라 하면 가보는 거죠. 외국 나가도 제일 먼저 체크하는 게 카페였으니까요.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갔을 때 제일 아쉬워하는 게 흔히 문화생활이라고 말하는 것들인데 두 분에 별로 아쉬움이 없으신 거네요.
김수영: 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TV도 안 봐요.
이강혁: 영화를 보고 싶으면 시간 내서 가면 되긴 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게 없어서 못 견디겠어 이런 느낌이 없어요. 여기서는 뭘 배우려면 차 타고 나가야 하잖아요. 왕복 1시간 반은 걸리고. 운동을 배우고 싶어도 서울에서는 여러 군데에서 하나를 선택하는데 여기는 있는 곳에서 그냥 해야 하죠.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살 수 없어요. 화려하게 사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못 버티는데, 저희는 그런 성향이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저희도 서울에서는 그렇게 바쁘게 살았어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살 수 있을지 저희도 양양에 오기 전에는 몰랐던 거죠. 그냥 둘이서 별이나 보면서도 시간을 보내요.
김수영: 저는 여기서 우울증 걸릴 줄 알았어요. 엄청 활동적이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뭘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생 생각했고, 그래서 더 그렇게 살았는데 막상 여기 와서 보니까 저는 굉장히 게으른 사람인 거예요. 아침에 10시에 일어나도 괜찮고 행복해, 밤에 늦게 자도 괜찮아. 그런데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고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틀에 딱 가둬놓고 살았더라고요.
이강혁: 안 겪어봤으면 평생 몰랐을 삶이었을 거예요. “왜 젊은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라는 말도 가끔 듣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있어요. 저희도 고민을 하긴 했어요.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할까? 서울에 다시 갈까? 그런데 앞으로 한 10년, 15년은 더 있을 수 있겠다 싶어요.
처음 이곳에서의 삶을 선택할 때는 100% 확신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었지만 살아가면서 확신이 더 커지는 거네요.
이강혁: 예전에는 미련의 여지를 좀 남겨두긴 했었죠. 서울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게 무슨 일을 진행할 때도 10% 정도 빼놓은 느낌이 있었는데 그 비율이 점점 주는 것 같아요.
다시 선택할 기회가 온다면, 지금보다 더 빨리 혹은 더 늦게 서울을 떠날 생각인가요?
김수영: 저는 충동적으로 올 것 같아요. 인생 자체가 계획적으로 안 살아지는 것 같아요. 그냥 타이밍에 맞춰서 움직일 것 같아요.
이강혁: 저도요. 양양에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일이나 마음, 이 모든 것이 강원도로 흐르는 느낌이었거든요. 계산해서 사는 게 안 되더라고요. 저는 제가 25살에 결혼할 줄 알았어요.
김수영: 내가 구해줬다. (웃음)
세상에서 말하는 적령기가 아닐 때, 결혼이 인생에서 중요한 미션이 아닐 때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게 있더라고요.
김수영: 돈을 얼마 벌고, 집안 배경이 어떻고 이런 걸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만나봐도 되겠다 싶은 사람을 만난 거죠.
이강혁: 둘 다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지 않았거든요. 1년만 빨리 만났어도 결혼 안 했을 거라고 서로 얘기해요. 그 타이밍에 서로 뭔가 큰 교감을 했기 때문에 의도치 않았지만 결혼을 한 거죠.
김수영: 난 의도했어. 일단 좀 더 살아봐야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