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3 마지막날, 반배정 받고 아이는 울었다
첫째 방학식날이었다. 끝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소식이 없어 전화를 걸어봤다. 아이는 반친구들과 몇 반으로 배정되었는지 확인 중에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엄마 나 망했어. ooo만 같은 반이야"
반에서 여자아이 한 명만 같은 반이라고 했다. 두루두루 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던 아이에겐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하민이도 다른 반이고, 다 다른 반이야."
아이의 슬픔이 어느정도 깊은지 그땐 잘 몰랐다. 나는 도서관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먹고 싶다먼 떡볶이를 해줬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했고, 빨래를 돌렸다. 아이가 잠깐 팽이 돌리기를 하자고 해서 잠깐 했다. 그리고 둘째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둘째와 첫째는 싸우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디폼 블럭으로 국기도 만들었다. 첫재는 책을 읽었고, 안방에 가서 공을 가지고 놀았다.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메뉴는 어제 사온 고기였다. 양념된 한우너비아니를 듬뿍 먹고 놀았다. 간간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4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을 뿐. 매번 같은 하루였다.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이제 첫째는 내일부터 본격 방학에 들어가고, 더이상 3학년 5반이 아니라는 것일뿐.
그러다 둘째와 써우기 시작했고. 더큰 싸움이 될 것 같아 말렸다. 나는 빨래더미를 빨래걸이에 널고 난 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안방에 누워있으니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둘째가 메모리게임을 하자고 했을 떄였다. 둘째와 첫째가 또 싸웠다. 메모리게임을 할 때 그림 위치를 알려주지 말라는 경고를 몇번했던 둘째. 첫째는 계속 여기 여기 손짓을 했다. 둘이 싸우는걸 떼어놓고 게임을 이었다. 그때였다 아이가 울었다.
"세상이 텅빈 것같아, 아무 것도 재밌지않아"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지금 3학년 반친구들과 선생님이 너무 좋은데 헤어지는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친한 친구라도 같은 반이 되었다면 위안이 되었을텐데 그도 아니니 아이는 슬펐던 모양이다.
"지금 너무 좋은데..."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나의 어린 시절을. 나는 어땠을까.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정미가 떠올랐다. 우리는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학기 마지막날 같은 반 아이들을 호명에서 앞으로 불러세웠다. 그때 정미가 내 팔뚝을 잡았다. 그때 느낌이 참 부드럽고 따뜻했다. 정미가 먼저 내민 손에 나는 새학년이 된다는 긴장, 불안, 초조의 감정이 누그러졌던 기억이 난다. 3학년 땐 정미 집에 가서 자주 놀았고, 우리는 중학생이 되어 3년 내내 몰려다녔다.
하지만 나도 첫째처럼 슬펐던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학교(당시엔) 졸업식 날이었다. 나는 무심히 사진을 찍고, 짜장면을 먹으러 갔었다. 길가다 지나치는 아이들과 인사를 했고, 어느 중학교에 배정됐는지 물었다. 그런 하루를 보냈다. 별일 없었던 하루. 그런데 밤이 되자 울컥울컥 뭔가가 내 안에서 쏟아지려고 했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든척을 했다.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없이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엄마 아빠는 매일 일하느나 바빴고, 큰언니는 직장에 다녔고, 오빠는 예비고3이었다. 둘째언니는 친구들과 노느라, 집안일 도와주느라 바빴다. 나는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식구가 많아 나는 엄마 옆에 따로 요를 깔고 잤었다. 피곤한 엄마는 쓰러졌고, 나는 울었다. 계속 울었다. 변화의 시점, 진짜 이젠 어린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울컥울컥 쏟아진 눈물 덕에 이불이 촉촉했다.
나는 첫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진 몰랐지만. 그때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었을까. 어떤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됐을까. 잘 모르겠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년 단위로 벌어지고, 그러다 초등 - 중등-고등까지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감정이 소용돌이칠지 상상을 해보렴, 이런 말은 할 수 없다. 그저 나는 엄마도 슬프다, 엄마가 가장 슬펐던 때는 초등학교 졸업식날이었어, 그때는 정말 슬프더라.
아이가 듣는지 마는지 알길이 없었다. 다만 슬펐다. 아이의 슬픔이 내게 전이가 되니 내 감정도 격했지만, 다시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랬구나, 그만큼 00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다녔다는 증거네."
아이는 방학이 싫다고 했다. 그만큼 아이는 학교에 가는 걸 좋아했다. 문득 아이의 진로를 생각하며 공부에 대한 고민을 했던 나를 떠올렸다. 사실 아이가 학교를 좋아해서 잘 다니는 것만해도 충분하다고. 첫째의 장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매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와서 다행이야. 안그러면 저어새도 못봤잖아. 그덕에 타동네로 이사가는게 힘들 것 같다. 이 동네가 너무 좋고, 친한 친구가 형 때문에 이사갈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집근처 고등학교에서 이번에 서울대간 형이 나왔다고, 그래서 자기네도 이사 안갈것 같다고 했단다. 새로 조성된 신택지기구의 맹점이 교육인데, 얼마안된 집근처 고등학교를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고민보다 앞서 아이의 심리적인 상태를 근거로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게 중요한거라 생각한다. 4학년이 되어도 지금처럼 학교가 좋다고, 방학보다 학교가는게 더 좋다고 아이 입에서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