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포기했다. 내 삶을 포기한 것과도 같다. 지난 3월 중순, 탐조책방에서 인공새집 분양을 했다. 자칭 미래의 조류학자, 첫째에게 좋은 경험이다싶어 신청을 했고, 두 개를 받아왔다. 문제는 어디에 다느냐였다. 체력저하에 시달리던 초봄, 내 신경은 극에 달해있었다. 남편과 아이에게 그냥 맡겼다. 달고 온 위치는 영 성에 차지 않았다.
일단 아파트 탐조단이란 프로젝트에도 부합되지 않는 위치였다. 물론 이해는 간다. 하지만 체육관 쪽 길가에 단 둥지는 좀 너무했다싶었다. 다른 한쪽은 풀숲이 우거질 예정인 벼랑에 나무였다. 가는 꽃나무가 많은 단지다보니 둥지를 다는게 쉽지 않을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그렇다고 뱀이 자주 출몰하는 공원은 절대 안 된다. 그래서 그냥 뒀다. 맘에 안들었지만, 내가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뒀다.
그로부터 한달간 이틀에 한번꼴로 둥지를 확인했다. 둥지엔 변화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까치떼들이 모여있고, 멧비둘기떼들이 쉬는 곳이었다. 둘 사이엔 나름의 경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종종 말똥가리가 나타난다. 극성스러운 까치들이 말똥가리를 쫓아내는 광경도 종종 펼쳐진다. 인공둥지에 터를 잡는 새로 알려진 박새나 딱새, 참새 등이 과연 이곳에 둥지를 틀까. 여러 생각이 스쳤다.
4월 중순이 되니 야생화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풀숲 위에 설치한 인공둥지는 관찰 자체가 버거워졌다. 가시텀플을 피해 돌아서 가는 길이 있었는데 야생화가 피니 벌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꿀벌이라면 덜덜 떠는 아이들이 그 뒤로는 그 벼랑을 오르지 못했다. 벌이 있어 도저히 못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관찰은 나의 몫이었다. 문제는 4월에 학교와 유치원에선 다양한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 자원봉사도 시작했고, 첫째 생존수영도 참여봉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설상가상 4월 말엔 둘째 생일이었다. 이번엔 기필코 친구들을 파티에 초대하겠다고 벼르고 있던 둘째의 성화에 파티 준비도 했다. 친구도 모객하고, 거실을 풍선으로 꾸미고, 생일상은 대충 차렸다. 우리 아이까지 합쳐 7명. 엄마들까지 합치니 14명이었다. 파티는 급조된 것처럼 정신이 없었고, 나는 덕다운됐다.
모든 행사들이 정리가 되니(그 와중에 타로 강의도 들었다는) 벌들이 기승을 부린 이후, 이제 슬슬 가보려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 저 벼랑 중간에 달린 인공둥지에 올라가볼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달력을 보니 이럴 수가!!! 결국 장작 2주나 못가본 것이다. 어린이날 시댁에 갔다온 다음날, 공휴일엔 비가 왔고, 그 다음날엔 비가 오고. 아, 정말이자 저 벼랑에 왜 매단거야라고 욱! 하고 화가 났다. 결국 너무 늦게 5월 10일 오전, 인공둥지에 갔다.
그곳엔 박새어미인지 아비인지 모르겠지만(뱃쪽이 보이지 않으니) 박새가 알을 품고 있었다. 놀라웠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사실 인공둥지를 포기했다. 위치가 좋지 않았고, 갈 때마다 거미줄이 있거나 비를 피해 숨어있던 거미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스마트폰을 셀프모드로 바꾼 후, 둥지 위쪽을 열어 안으로 넣었따. 빈 바닥만 보였는데 박새가 보였다.
기적같은 생명이 움트는 현장을 발견한 것이다. 생명의 비밀을 엿본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진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새로운 생의 감각을 하나 더 얻은 기분이다. 이런거구나. 바라건대 바라지 않는 삶. 인공둥지를 포기했다. 그리고 한 동안 개인적인 내 삶도 포기했다. 포기한 후 남는건 절망 뿐이었는데 이렇게 박새부부가 내게 인생의 베일을 한꺼풀 벗겨주었다.
욕망이 과하면, 결국 그 목표는 이뤄지지 않지. 바랄 수록 멀어지는게 꿈이 아니던가. 결국 포기하고 현재에 충실했을 때 삶이 내게 다가와줬던 것처럼. 나 역시 몰라던 비밀이 아닌데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내가 하던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레귤러 프로그램을 잡지 못했다. 가족들의 병간호를 해야할 일들이 예기치 못하게 생겼다. 일이 잡히지 않은건 그 일이 내게 준 소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병간호를 오랜 한 것도 아니었지만, 결국 그 일을 다 했다. 들어오는 일은 홍보일이나 작은 인터넷 방송국에 납품하는 10만원 단가의 짧은 영상이었다. 잡스럽게 알바도 했다. 그 이후, 특집 프로그램의 10분짜리 영상을 맡았다.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방송 코너도 같이 맡았다. 작은 일일 수도 있다. 내 연차에 작가들이 지상파 다큐를 하거나 교양 정보프로그램 메인을 하고 있었을테니. 그런데 그냥 다 했다.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지나 나는 아침방송 메인작가가 됐던 기억이 있다. 거기까지 가는데 엄청난 실패와 좌절이 있었지만. 그 이후 다큐 메인도 하고, 본사 프로그램 메인 작가도 했다. 그때부터 내가 알던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다. 어떤 선배는 그런건 나처럼 경력 많은 작가가 잡고 해야하는데...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내가 그런 프로 메인까지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가. 그만둘 때도 아깝다며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다 부지럽다. 그때 나는 충만한 삶을 살지 못했니까.
과정이 어찌됐던 박새 가족을 만나 기쁘다. 삶이 이토록 충만할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이제 새끼들이 부하하고, 또 이소를 하면, 둥지를 정리해주면 좋다고 한다. 2차로 또 둥지에 알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새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이번엔 중간과정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아쉬운건 또 아쉬운대로 또 넘어가는 것.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어제는 비가 오고, 강풍이 몰아쳤다. 나는 그때 비를 피해 둥지에서 포란을 하고 있는 박새가족을 떠올렸다. 다행이다, 나의 둥지가 이들에게 삶의 가림막이 될 수 있었다는게. 삶의 시작이 되어줄 수 있었다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