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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훈 Jul 14. 2024

달리며 신경 끄기

나에게 집중하는 달리기


새해 들어 시작한 걷기가 오래가지 않았다. 약속, 피로, 날씨, 기분, 업무, 컨디션, 가족, 집안일 등으로 잠시의 걷기도 미루고 있다. 하지 않을 핑계는 참 쉽게 만들어진다.


보름 만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일주일에 3번, 30분 이상 걸으려 애썼다. 꾸준히 이어진 걷기는 30분을 훌쩍 넘기기도 했고 주말에는 1시간을 채웠다. 몸이 달아오르고 기름칠이라도 한 듯 관절이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면 느리지만 뛰기도 했다. 


그것도 뛰는 거냐고 물으면 할 말 없지만 나는 분명히 뛰었다. 걷는 속도로  뛰었다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이미지 설명] 2017년 1월 핸드폰 운동 앱에 기록된 걷기 로그 캡쳐화면. 평균 시속 5.4킬로. 총 운동시간 54분 34초. 5km 채 안 되는 4.91km. 바쁜 걸음으로 편하게 걷는 속도에 해당된다.


그렇게 5분을 뛰고,
다음날엔 6분 뛰고,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뛰는 시간과 거리를 늘려나갔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옆을 스쳐 지나가는 베테랑 러너를 따라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추월하는 러너를 보며 소싯적 생각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절로 욕심도 났다. 나도 한 때는 운동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스쳐간 러너들은 나를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끊임없이 시야의 러너를 관찰하며 신경 썼다. 심지어 몸매와 차림으로 연령대는 물론 직업까지 추측했다. 늘씬한 몸매에 멋진 러닝복과 러닝화를 장착하고 엄두 못 낼 스피드로 달리는 이를 보는 순간 나보다 남에게 집중했다. 


걷고 뛰다 보면 다른 러너뿐 아니라 오만가지 잡생각이 두더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타인과의 대화를 곱씹고 자책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일들을 떠 올리며 고개를 내미는 부정적인 생각에 마음을 뺏겨 버린다. 


하지만, 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고 다시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신기한 경험이다. 이러한 느낌은 느긋하게 걸을 때 보다 달리고 있을 때 더 많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몸이 새털처럼 가벼운 기분이 든다. 이게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인가? 


술이 빠진 저녁은 일 년에 열흘도 안 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기쁜 일, 언짢은 일, 약속, 축하와 위로가 필요한 자리, 어떤 때는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저녁 반찬을 보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술 없이 어떻게 먹냐?"며 단지 내 슈퍼로 달려가 술을 사 왔다. 


달리며 기분이 좋아지는 신기한 경험이 반복되며
술 대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종일 일이 꼬여 하루를 망친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공원으로 나섰다. 기분이 좋아질 것을 기대하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나를 관찰한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지면의 굴곡, 발목의 움직임, 무릎에 전달되는 하중, 들숨과 날숨, 머릿속부터 흘러내리는 땀,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달리기는 타인이 아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그렇게 걷기와 아주 느린 달리기를 지속하면서 주변에 신경을 끄고 나만의 속도와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달리기뿐 아니라 일상을 지속하는데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경 끄기 연습이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나만의 스피드와 페이스로 운동을 지속하며 신경 끄기 연습을 했다. 이러한 태도를 굳은살처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달려야겠다!



신경 끄고 꾸준함을 더하니
어느새 걷기보다 달리는 시간이 아주 조금씩 늘어갔고
결국 느리지만 나만의 페이스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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