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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훈 Jul 09. 2024

걸어서 달리기

마라톤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일도 사람도 다 싫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있고 싶었다. 식사 후 한적한 곳을 찾았다. 인적 드문 복도 한 구석을 찾아냈다. 소화도 시킬 겸, 무엇보다 인간관계에 지쳐 홀로 점심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이어폰을 꽂고 복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무념무상!


위장과 머리를 비울 생각에 운동이라 생각하지 않고, 짧은 복도를 제자리 걷기와 느린 보행으로 어슬렁 거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싶어 시계를 보니 9분이 지났다. 더부룩한 속도 마음도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다음 날도 딱 이만큼 같은 곳에서 같은 움직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거의 매일 점심 식사 후 이렇게 보내다 보니 문득 이것도 운동이 되겠다 싶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조금씩 늘렸고 식후 1시까지의 시간을 인간 없는 복도에서 채워나갔다.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이었던가? 꾸준히 걷다 보니 뛰어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무릎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뛰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제자리 걷기로 시작했듯 뒤꿈치를 들고 제자리 뛰기와 종종걸음으로 좁은 복도를 느리게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급한 성격에 계단을 2칸씩 오르다 무릎 통증으로 며칠 씩 고생한 적이 많지만, 이렇게 천천히 뛰는 흉내를 내다보니 건물 복도를 벗어나 야외에서 달려 보고 싶어졌다.


퇴근 후 정말 오랜만에 운동복 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다. 살고 있는 아파트 뒤편 잡초로 무성한 공터가 있었다. 곧 학교가 들어선다고 했다. 핸드폰으로 거리를 재보니 260m 정도 됐다. 혼자 걷고 뛰는데 부족함 없는 거리다. 스카이 워크 위에 있는 듯 걷기, 제자리 뛰기 그리고 느리디 느린 뛰기를 반복했고 20분을 무사히 채울 수 있었다.


야외 운동 둘째 날, 욕심내지 않고 다시 20분을 채웠다. 살살 뛰다 보니 걸을 때 보다 더 빨리 몸이 더워지고 땀도 났다. 마침내 온전히 20분까지, 걷지 않고 아주 느리지만 뛰는 척하게 되었고 딱 1분씩 늘려 30분까지 운동시간을 늘렸다.



조금이라도 무릎이나 발목에 통증이나 불편감이 생기면 바로 걷기로 바꾸거나 운동을 중단하고 집으로 향했다. 욕심냈다가 큰코다치기 싫었다. 이전 한창때의 내가 아니다. 나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은 중년남성이다. 예전 젊었을 때 생각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정도까지 뛰는 시늉을 하게 된 것에 만족했다.


 다치면 다시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 한참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욕심을 버릴 수 있었다. 느리지만 뛰는 흉내를 내게 된 것에 만족하고 스스로 대견스러워 했다.


이렇게 열심히 지속하면 다른 러너처럼 나도 좀 더 빠르게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후 한 시간 뛸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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